'안전 후진국'의 되풀이 되는 비극

'안전 후진국'의 되풀이 되는 비극

2008.01.11. 오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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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40명의 희생자를 낸 이천 냉동창고 화재는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다시 한번 일깨워줬습니다.

화약고 같은 작업 현장에서 안전 규정은 무시됐고 관련 법규 역시 문제가 많았습니다.

왜 이렇게 피해가 컸고, 또 앞으로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를 이종구 기자가 중점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7일 오전 10시 50분.

이천 냉동창고에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당시 창고 안에 있던 근로자는 모두 57명.

바쁘게 돌아가던 일터는 순식간에 초토화됐고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40명이 희생됐습니다.

소방관 600여 명이 출동했지만 치명적인 유독가스 때문에 초기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터뷰:출동 소방관]
"'불이야'하고 삽시간에 건물 전체가 불바다로 변해 가지고…"

참사가 일어난 지 닷새째.

다시 찾은 사고 현장은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존자 진술과 경찰 조사 내용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불은 창고 지하 1층에서 시작됐습니다.

냉동창고 특성상 실내는 단열성은 좋지만 인화성이 강한 우레탄 폼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천장 주변엔 우레탄 폼 발포 작업때 생긴 기름증기가 가득 차 있던 상황.

냉동실에선 쓰다 남은 200ℓ 짜리 우레탄 폼 원료가 15통이나 발견됐습니다.

여기에다 시너와 LP가스통 같은 발화성 물질도 창고 곳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작업장은 화약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뷰:화재 참사 생존자]
"불길이 오는 것 같더니 공기가 빨려 들어갔어요."

화재 직전 창고에선 닷새 앞으로 다가온 영업 개시일에 맞춰 막바지 설비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하청업체에서 나온 인부들이 뒤섞여 한꺼번에 위험한 작업을 벌였습니다.

[인터뷰:현장 근로자]
"개장일이 얼마 안 남았었기 때문에 함께 다 집어 넣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사고가 일어날수 있죠. 너무 빨리 서두르니까, 우리가 굉장히 빨리 서두르라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안전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없었습니다.

공사비가 20억 원 이상인 사업장에서는 반드시 안전 책임자를 두도록 한 규정을 어긴 것입니다.

[인터뷰:김상봉, 경기 광주소방서]
"제대로 소방 교육을 안 받았다거나 작업하면서 어떤 안전 수칙을 안 지켰다든지 그런 게 있겠죠."

냉동창고의 시행사와 시공사, 감리 회사는 사실상 같은 회사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건축주인 '코리아냉동' 대표 공 모 씨는 시공사인 '코리아2000'의 대표도 맡고 있고, 또 건물 공사의 감리 업체는 '코리아2000'의 계열사인 '코리아2000 건축사무소'였습니다.

관리 감독이 허술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인터뷰:코리아 2000 관계자]
"지금 물어보지 마시고 나중에 공식적으로 말씀 드릴께요."

냉동 창고의 구조적 문제점도 참사의 원인이 됐습니다.

불이 난 지하 1층은 가로 길이만 무려 180m.

작업장 분류를 위해 칸막이를 미로처럼 복잡하게 쳐놓은 탓에 신속한 탈출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비상구는 1층으로 통하는 계단 한 곳과 외부로 이어지는 출입구 한 곳이 전부였습니다.

[인터뷰:김운형,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
"화재 시에 피난 통로로 연결시킬 수 있는 인공 조명이 명확하게 유도를 시켜줘야 하는데 없으니까 그런게 전혀 없으니까 자연빛을 보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겠죠."

냉동창고는 지난해 10월에도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도 관할 소방서는 사흘 뒤 소방시설 완공검사 필증을 내줬습니다.

서류 검토만 했을 뿐 현장 확인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인터뷰:소방서 관계자]
"저희 소방시설공사법에 일정 면적 이상이 되면 저희 소방 공무원이 완공 검사를 하지 않고 거기에 소방감리가 선정이 돼요."

공장이나 창고 같은 비상업용 건축물에 대해 비상구 설치를 의무로 규정하지 않은 소방법도 문제입니다.

[인터뷰:백동현, 경원전문대 소방시스템학과 교수]
"건축법상 냉동창고의 경우 비상구 수를 면적 대비 늘려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소방법상 재연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 사회의 낮은 안전 의식과 허술한 시스템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돼 왔습니다.

정답이 무엇인지 몇십년 째 알고 있으면서도 또 그 기간 동안 혹독한 대가를 치렀으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가야할 길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YTN 이종구[jongkuna@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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