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北에 철저하고 시급한 대응...中 동참해야"

한미일 "北에 철저하고 시급한 대응...中 동참해야"

2016.01.17. 오후 4:01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 김진무 /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앵커]
철저하고 포괄적인 대응을 통해서 실질적 조치를 취하자. 북한 4차 핵실험에 대해서 한미일 3국이 합의한 대북 제재 내용입니다.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한미일에 비해서 중국은 신중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요.

중국의 태도에 따라서 대북제재의 대응 수위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김진무 한국국방연구원 박사와 함께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북한 핵실험 이후에 주변 국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 국가의 외교적인 움직임이 아주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데요. 일단 앞서 말씀드렸듯이 한미일 3국이 대북제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한목소리로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 한번 들어보시고 다시 대화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안토니 블링큰 / 미 국무부 부장관 : 이번에도 확실한 제재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북한은 반드시 또 핵무기와 미사일 실험을 할 것입니다.]

[사이키 아키타카 /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 한미일 3국은 최대한 빨리 가장 강력한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앵커]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핵실험 관련해서 대북 제재가 있었습니다마는 이번에도 역시 조만간 예상이 됩니다마는 이번에는 좀더 새로운 차원에서 더 강력한 제재를 하자, 이런 합의의 틀인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는 과연 어떤 모양으로 대북 제재가 도출이 될지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인터뷰]
지금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2006년도 북한이 1차 핵실험한 이후로 미사일 쏘고 핵실험을 할 때마다 UN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 나와서 6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 제재 결의가 중국이나 러시아의 비협조적인 참여로 실질적으로 강력한 제재 하에 결의가 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러면 첫 번째는 제 생각에는 우선 기존의 제재안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되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얻는 부분이 첫 번째 핵심 과제가 될 것 같고요.

두 번째는 국제적인 고립이, 북한에게 고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거는 제 생각에는 북한의 인권결의안 문제를 인권 문제에 대한 압박을 더 강화하는 그런 문제가 될 것이고 가장 중요한 거는 그러면 이번에 어떤 새로운 제재안이 나올 거냐, 이런 문제인데요.

사실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미국 하원에서 세컨더리 보이콧. 북한하고 거래하는 제3기업에 대해서 제재를 하는 겁니다.

[앵커]
안보리하고는 별도로 미국의 단독 제재가 되겠군요?

[인터뷰]
네, 단독 제재 결의안을 미국 하원에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정부 명령으로 나온 건 아니기 때문에, 하원 결의안으로 나온 겁니다. 그다음에 중국이 주는 원유를 중단한다든가 또 북한이 지금 여러 곳에서 외화를 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세계 식당이 나가있는...

[앵커]
인력 수출을 하고 있죠.

[인터뷰]
네, 인력 수출 문제 그다음에 석탄 이런 지하자원을 팔아먹는 것. 여러 가지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외화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문제. 또 기존의 금융제재를 더 강화하는 문제. 여러 가지 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을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말씀드린 그런 대부분이 북한이 지금 대중국, 대러시아 경제 의존이 거의 100%입니다. 90%가 넘었으니까요.

그러면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을 해야만 된다,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결국 중국과 협상 결과에 따라서 안이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봅니다.

[앵커]
지금 방금 말씀하신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제재. 과거 방코델타아시아 비대위 방식으로 해서 북한 최고 통치자, 지금 김정은의 통치자금, 돈줄을 조이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예상이 나오고 있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중국의 입장과는 별도로 미국이 좀더 강력하게 취할 수 있는 것인가요?

[인터뷰]
그런데 과거와 달라진 게 2005년도에 방코델타아시아 금융제재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거기서 혼이 났죠. 그래서 북한의 대외거래를 은행거래를 중국안으로 다 옮겼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도에 핵실험을 하고 나서 중국이 다시 금융제재를 걸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지금 북한이 하는 행태는 북유럽쪽이나 제3국으로 옮기고 그다음에 전반적인 거래를 현금화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제재의 효과가 그렇게 과거처럼 강력하지 않다는 거죠.

[앵커]
비대위 제재보다는 반감될 것이다?

[인터뷰]
반감보다는 훨씬 더 효과가 적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앵커]
역시 문제는 대북 제재에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지난주에도 한중간 당국자 회담이 있지 않았습니까? 중국이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는 분명히 참가를 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과연 강력한 제재에 동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 한발 여전히 물러나 있는 느낌을 주고 있어요.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유,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인터뷰]
우리가 간단하게 중국의 대북한 대한반도 정책에 대해서, 기조에 대해서 얘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3개의 단어로 되는데 부전, 불란, 무핵입니다. 이게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불란. 북한이 불안정해지면 안 된다. 그다음에 세 번째, 그 두 개 다음에 오는 우선순위가 무핵입니다.

이런 우선순위, 중국이 갖고 있는 우선순위를 고려해 볼 때 중국이 북한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제재안을 만들어내고 실행할 수 있겠느냐. 항상 거기에 회의감이 있는 거거든요.

또 한 가지는 지금 미국이 재균형 정책으로 아시아쪽으로 강하게 걸고 있고, 최근에 미국이 경제가 회복이 되면서 과거 2008년도 이후에 약해졌던 패권국가 위상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번에 위안부 협상 타결로 인해서 한일이 가까워졌단 말이죠.

이렇게 되면 한미일 공조 체제가 굉장히 강화되는 그런 국면에 와 있거든요. 중국 입장에서는 고민이 큰 거죠. 그러니까 이런 한미일 공조 체제가 강화되면서 중국을 포위한다는 그런 전략이 강화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북중러라는 북방 3각체제, 그중에 북한이 들어있는 거죠.

그것을 과연 불안정하게 만들 정도로 제재를 해서 자기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하겠느냐. 또 이런 국제적 책임의 메카니즘도 거기에 고려가 되어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앵커]
여전히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전략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인터뷰]
현실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지난주에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이 있었습니다마는 거기에서는 북한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이 점에 비춰봤을 때 오바마 행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에 북핵 실험과 관련해서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서 어떤 구체적인 액션을 취할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든 것 아니냐, 이런 시각도 나오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터뷰]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을 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나서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너희 때문에 핵실험을 했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북핵 언급을 하게 되면 나 때문에 핵실험을 했다는 부분을 인정해 주는 부분도 있거든요.

그리고 마땅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북한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그게 미국이 그동안에 전략적 인내라는 일종의 무시 전략으로 왔던 부분이 마땅한 대안이 없고 또 북한과 협상을 통해서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부분이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내 전략적 인내로 끌고 왔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 현시점에 와서도 그 상황은 크게 변함이 없습니다. 단지 중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북한핵을 어떻게 해서든 포기시키는 그런 방향이 미국으로서는 가장 적합한 방향이기 때문에 한미일 공조 체제를 강화해서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앵커]
주제를 바꿔서요, 북한에서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3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실은 최룡해의 복귀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요.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중국의 문제 그리고 대중관계하고도 여러 가지 연결지어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최룡해 복귀 시기와 관련해서 참 묘하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숨지고, 북한 4차 핵실험 직후거든요. 그리고 최룡해 비서가 사실 김정은 다음에, 북한의 2인자로서 권력 실세였고.

지금은 강등이 됐었습니다마는 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지냈던 사람이 이렇게 후퇴를 했다가 3개월이라는 단기간 만에 복귀하는 일이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하거든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터뷰]
지금 현재 북한 내에 최룡해만한, 한 축이죠. 그러니까 북한 정권은 로열패밀리들이 있고, 그다음에 그 밑에 빨치산 그다음에 과거부터 오는 고위 당군간부층, 그다음에 6.25 전사자 그룹, 이런 정권을 지탱하는 큰 그룹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 빨치산그룹이거든요. 최룡해는 최룡해 아버지, 최현이라는 인물과 김일성과의 관계를 보면 최룡해라는 큰 정권을 지지하는 인물이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거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대중국 외교를 위해서 필요하다. 지금 장성택 처형 이후에 북한 내에서 중국 내에 많은 지인을 갖고 있고 또 중국과의 협상을 할 수 있는 얼굴마담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래서 최룡해가 2013년도 3차 핵실험을 했을 때도 특사로 갔었고 작년도 중국 전승절 때도 특사로 갔었단 말이죠. 그 이유가 뭐냐하면 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위원장을 십 몇 년을 했어요.

그때 중국에 공청단이라고 후진타오가 공청단 출신입니다. 공청단이라는 중국에서 굉장히 큰 세력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청년동맹이죠. 이쪽도 청년동맹이고. 과거에 오랫동안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최룡해 자신이 중국에 많은 지인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정을 해 볼 수 있거든요.

그런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당 대 당 관계이지만 어떤 인적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룡해를 다시 기용을 해서 대중국 특사로 보낼 가능성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복귀하자마자 청년동맹에 가서 연설을 했단 말이죠. 이 부분은 최룡해의 특기죠.

[앵커]
청년동맹의 정신적 지주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여기서 김정은 시대의 대내 정책을 볼 수가 있습니다. 김정은 시대의 대내 정책은 지금 김정은이 자기가 중시하는 게 청년 중시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북한에는 장마당 세대가 있거든요.

지금 한 20대, 30대 중반 이하가 장마당 세대인데 어릴 때부터 장마당에서 놀았어요. 장사를 하면서. 이건 수령도 모르고 자본주의체제밖에 모르는 거예요, 시장 경제밖에.

지금은 김정은 입장에서는 그들과 같이 자기 정권을 끌고 가야 되는데 이들을 어떻게든 지지세력 또 그다음에 자기에 대한 충성을 끌어내야 되는데 얘네들이 장마당세대라 천방지축이란 말이죠. 청년중시가 그렇게 해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최룡해한테 그 임무를 준 거죠. 아주 중요한 임무라고 봅니다.

[앵커]
이렇게 북한의 대중관계와 관련해서 앞으로 역할이 주목되는 최룡해 당비서인데 이렇게 오랜만에 등장을 하다 보니까 최룡해의 모습을 보고 때아닌 건강 이상설도 돌고 있다고 하거든요. 북한의 핵심 엘리트층의 변동이 워낙 심하다 보니까 복귀할 때마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번 그래픽 보겠습니다. 지난 15일 최룡해가 청년중앙예술선전대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입니다.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에 비해서 지나치게 가늘어진 모습이 포착이 됐는데요. 좌우에 앉은 사람들과 비교해 봐도 다리의 굵기가 현저히 얇아 보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 달 가까이 숙청설이 돌다가 최근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앙상한 다리가 눈에 띄었다. 건강이상설부터 좌천됐을 때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최룡해가 혁명화 교육을 받으러 명령을 받고 갔을 때는 그 해당 지역에서는 최룡해가 곧 복귀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혁명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간부들은 최룡해를 가혹하게 대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노동을 했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거예요.

[앵커]
언제 복귀할지 모르니까요?

[인터뷰]
그런데 언제든지 올라가면 최고위간부가 되니까. 그렇지만 김정은에게 매일 반성문을 썼을 겁니다. 그 스트레스가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을 거라고 보고요. 그다음에 최룡해가 두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총정치국장에서 내려와서 당정비서를 내 줄 때.

[앵커]
황병서한테 자리를 내줬었죠.

[인터뷰]
그때 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은 김정은 시대의 엘리트의 위기는 처형이냐 아니냐, 두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얼마나 심적인 스트레스가 컸겠습니까?

이번에 혁명화 교육할 때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라는 가정을 안 할 수가 없겠죠. 한 순간에 처형되고 건성건성 박수쳤다가 처형되고 졸았다고 처형되는 상황 아닙니까? 그런 부분에서 아마 최룡해가 심적 고통이 아주 컸을 거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2인자도 저렇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게 북한 권력의 실상이 아닌가 싶은데. 지금까지 대북제재 움직임 그리고 북한의 최룡해 당비서의 복귀 문제, 김진무 한국국방연구원 박사와 함께 얘기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