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삶과 시' 알리는 일본인,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

디지털 코리안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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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2. 오후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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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야나기하라 야스코 / 시인 윤동주 연구가]
"안녕하세요. 야나기하라 야스코라고 합니다. 저는 윤동주 시인의 골수팬이고 여러 가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 '속죄' (贖罪), 일본인이기에 할 수 있는 것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과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릿쿄대에서 추모식을 열거나 윤동주 시인의 일본에 있던 시절의 조사 같은 것도 하고 있습니다. 꽤 오래전, 20년도 더 전의 일이라서 세세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 아마도 이바라키 노리코라는 일본의 시인이 썼던 에세이 같은 걸 보고 윤동주를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때 윤동주 시인이 대학교 선배였다는 것, 물론 짧은 기간이었지만요. 릿쿄대에 있다가 그다음에 도시샤대(교토)로 옮겨갔다는 것을 에세이를 통해 알게 돼서 제가 학교 다닐 때보다 20년 정도 전에 윤동주가 같은 책상이나 의자를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옥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일본인으로서밖에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없을까? 생각했어요. 속죄라고나 할까요? 그런 기분으로요. 근데 한국분들이 일본 시절의 윤동주를 조사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어요. 윤동주 시인은 원고에 반드시 서명을 남겼기 때문에 그것도 여기에 쓰여 있어서 고서점을 돌아다니거나 그런 것도 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에 의해서 옥사한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을 일본인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윤동주의 시가 훌륭하다는 점과 함께 역사의 진실을 알릴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 왜 윤동주인가?

윤동주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요? 일본에서도 정말 많은 사람이 추도식에도 참석하고 있는데 혼자 시를 읽고 있다면서 처음 추도식에 온다는 사람도 꽤 많이 계세요. 숨은 팬이랄까? 그런 분들도 어떤 부분에서, 왜 윤동주에게 끌렸을까? 생각해봤는데요. 저 자신이 윤동주에게 끌린 이유도 사실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윤동주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서 철학을 공부했다, 철학을 했다는 것은 돌아보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은 일인지, 무엇이 아름다운 일인지,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은 항상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시를 썼다고 생각해요. 그것 하나와 또 윤동주 시인이 키르케고르(*덴마크 철학자)를 탐독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키르케고르는 실존주의, '실존'적인 생각을 먼저 했던 분이에요. 실존이라는 것은 위에서부터의 권력이나 이데올로기 그런, 위에서부터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윤동주 시인도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을 시를 읽을 때마다 느낍니다. 윤동주 시인은 원래 한반도 출생인데, 중국 쪽으로 이민 간 사람(재중동포)의 자손인데요.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그러니까 고향이, 자기 존재의 정착지라고 저는 곧잘 표현하는데요.

정착하는 장소가 결국 한반도도 아니고 물론 중국도 아니었고, 역사적으로 간도는 어려운 곳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자기 존재의 정착지는 자신, 윤동주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찾았다고 문익환 선생님도 말씀하셔서 저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됐어요. 그러니까 키르케고르를 읽고 납득갔다고 할까요? 실존주의라는 것은 지금 민주주의와도 연결되는데요. 주권자 한 명, 한 명이 출발이라는 생각이죠.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는 옛것이 되지 않아요. 불변성도 갖고 실존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시대도 뛰어넘고 언어의 장벽도 국경도 물론 뛰어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보통 한국이나 일본에서 말씀하시는 게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시인이라고 말씀들 하세요. 부모로부터 전해진 청아한 사상을 가진 분이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윤동주 시인의 시가, 청아한, 청명한 서정을 뿜어낸다고 할까요? 그 기원이 됐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시대가 달라도 기분 좋게, 평안을 얻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도 그 부분에 끌렸던 게 아닐까 싶어요. 이바라키 노리코 씨는 얼굴에서부터 시작됐다고도 했지만요. 그분도 멋지셨지만요.

<3> 릿쿄 재학시절, 윤동주가 썼던 '쉽게 쓰여진 시'. 하지만 '윤동주 흔적 찾기'는 쉽지 않았다

시집을 굉장히 많이 샀어요. 처음 읽었던 게 책을 펴서 '서시'였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신경 써서 읽었던 것은 릿쿄대 재학시절 쓴 시였어요. '쉽게 쓰여진 시'를 읽었던 것 같아요. 때마침 그때 조사를 하고 있었어요. 릿쿄대 졸업생, 당시에는 아직 생존해계실 때라서 윤동주와 같은 시절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 150명 정도에게 편지를 써서 기억이 없으신지 물어보면서 조사를 했어요. 딱 1분께서 기억하고 있다고 하셨죠. 그 시기였어요. 그때 '쉽게 쓰여진 시'는 (릿쿄대) 수업의 모습, '노교수의 수업을 들으러 간다'는 부분이 있는데 그 노교수는 '우노 선생님'이라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거나 동양철학사 수업이었는데요. 동양철학사를 같이 들었던 분이 윤동주, 그러니까 '히라누마 씨'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계셔서 그 히라누마 씨에게 선생님을 소개해줬다거나 어디서 수업을 들었다거나 그런 걸 자세히 기억해주셨어요. 그래서 당시 시간표 같은 것도 입수했고요. 제가 수업을 들었던 똑같은 장소에서 공부했을 것이니까 그 시를 제일 먼저 만났다고 해야 할까요, 서시를 먼저 읽고 끌렸지만 역시 릿쿄대 시절 시가 더 끌렸죠. 인간으로서 윤동주는 굉장히 강한, 정신이 강하고 흔들리지 않지만, 허용이 큰 사람, 사람을 용서하거나 끌어안거나 그런 매력적인 사람이었구나 생각해요. 시대를 바꾸는 힘은 정치 같은 게 아니라 결국 문화, 한 명 한 명이 마음을 바꿔 가는, 주권자이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결국 문학이나, 문화잖아요. 그 큰 증거가 되는 것이 '욘사마(배용준)'라고 생각해요. 저는 욘사마 팬이라거나 그런 건 아닌데요. 욘사마 좋아하세요? 라고 누가 물어보면 아뇨 전 윤사마(윤동주)요. 라고 대답했지만. 제가 욘사마가 굉장하다고 생각한 것이 욘사마 팬이 실제로 윤동주 추도회를 도와준 분이 정말 많고 동일본 대지진 때 희생된 분들의 추도 행사라든지 하는 분 중에서도 욘사마로부터 한국, 조선의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갖고 그것을 알게 됐다고 하는 분도 꽤 많이 계세요. 굉장히 인기 절정이었던 시기는 물론 지나갔지만, 그 안에서도 욘사마에 끌려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거나 역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분들이 착실하게 남아있어요. 그러니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역시 문화의 힘이라고 봐요. 윤동주 시인이 당시에 말로 전하고 싶던 것들도 틀림없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4> 70년 넘게 윤동주에 빠진 일본인들, '윤동주의 삶과 시가 가진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