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의 독립을 모른척 할 수 없었습니다."

YTN Korea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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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6. 오후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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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상해 임정 요인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던 때.

김구 선생의 피신처를 제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 상하이 법대의 총장이던 추푸청이라는 중국인입니다.

[인터뷰: 추리천 / 추푸청 손녀]
"중국도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항일은 한중의 공동 목표였습니다. 당시 추푸청 선생은 항일 후원회 회장이었는데 철저한 항일 주의자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는 중국 인민을 대신해서 복수한 겁니다. 그래서 추푸청 선생은 위험을 무릅쓰고도 김구 선생님을 보호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던 해.

독립운동가의 정치적 망명을 돕고,

조선으로의 무기 반입과 군자금 전달을 직접 한 푸른 눈의 의인이 있습니다.

영국인 조지 쇼입니다.

[인터뷰: 캐서린 베틴슨 / 조지 쇼 후손]
"그는 자유 독립투사들이 회사 소유의 선박으로 임시정부와 연락할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한국에서 중국 안동시까지의 망명도 도왔죠. 일본인들에게 그는 '보이지 않는 적'이라고 불렸어요.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직접 만날 수도 없는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죠. 나중에 투옥됐을 때,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눈엣가시였어요. 그의 사업도 결국 더 이어갈 수 없게 만들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