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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경찰,법조,국회 출입기자(1994- ) 청와대 출입기자(2000) ‘백지연의 뉴스큐’ PD(2003) 미 플로리다 주립대 객원연구원(2004), 경영기획실 미디어전략팀(2005), 현재 밤 10-12시 YTN 투나잇 앵커

굿바이 DJ

  • 2003-02-2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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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이제 퇴임을 맞습니다. 김대통령의 임기 5년 중 3년을 곁에서 지켜본 저는 조금 감회가 특별합니다. 하물며 본인의 감회야 오죽하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은 완전히 상반된 두가지 정의가 가능합니다. 첫번째는 "참 복많은 인생"입니다. 일생 중 30여년간을 민주화 지도자로 인정받으며 살았습니다. 결국은 평생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마침내 21세기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까지 됐으니 개인으로서 더 이상의 영광이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 재직 중에는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의 주인공으로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월드컵 개최국 대통령으로 4강 신화를 앞마당에서 지켜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거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참 힘들고 불운한 인생"입니다. 생과 사의 문턱까지 갔던 절대절명의 죽을 고비를 네 번이나 넘겼습니다. 납치와 연금,투옥의 나날이 20년 이상 계속됐습니다. 고의성 짙은 교통사고로 30여년간 다리를 절게 됐습니다. 수십년간 뿌리깊은 반대세력의 음해와 공격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장남은 고문 후유증으로 지금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이고 차남과 삼남이 나란히 구속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과연 그의 일생은 행복한 일생입니까, 불행한 일생입니까. 잘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저는 그를 떠나 보내면서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몇가지 하고 싶습니다. 3년 동안 이 얘기를 못했던 것은 그가 아직 현직에 있었기 때문이고 제가 아직 청와대에 출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 얘기를 미루는 것은 저의 기자적 양심에 거리끼는 일인 것 같아 더 주저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사실 청와대에 출입하기 전까지 DJ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제가 정당에 출입할 때는 그가 정계를 떠나 있을 때였고 그가 정치에 복귀한 뒤에는 제가 주로 사회부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88학번인 저는 후보단일화 논쟁이 치열했던 87년 대선에서 비껴서 있었고 기자가 되기 전까지 호남지역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DJ의 이미지는 "매우 노회하고 독선적인 정치인"이라는 것 이상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지켜본 DJ는 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여리고 수줍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관이 확고하고 고집이 세지만 자기 고집을 무조건 강요하기보다는 설득하고 토론하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측근들에게도 하대를 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는 섬세한 결벽성이 있는가 하면 자기 철학과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관철시키는 추진력을 보이기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남의 말을 잘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젊은 시절의 그는 지금과는 또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는 80세에 가까운 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야당투사가 아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여유를 가진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가 좀더 유연하고 유머러스하고 쇼맨쉽도 갖춘 대통령까지도 돼주길 바랐지만 이미 80을 바라보는 그에게는 무리한 기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에 나갔을 때 DJ가 받는 대우는 제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선진국에 갈수록 그는 넬슨 만델라와 동격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 '20세기의 영웅'이었습니다. 현지 언론들은 그의 방문에 맞춰 DJ 일대기를 특집으로 제작하고 특집면을 만들었습니다. 에이펙이나 아셈처럼 세계 강대국들이 모두 참석하는 국제회의에서도 DJ는 거의 언제나 첫 번째의 발언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열린 아셈 때는 주최국인 덴마크의 라스무센 총리가 각국 정상들을 소개하면서 오직 DJ에게만 "excellent leadership, President Kim"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블레어와 시라크, 주롱지와 고이즈미 같은 쟁쟁한 인물들도 아무 수식어 없이 이름만 소개됐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DJ에 대한 특별대우는 국제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습니다.
DJ가 참석하는 기자회견이나 투자유치 설명회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일단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정상들간의 외교적 수사(修辭)는 늘 과장되게 마련이지만 DJ에 대한 것은 수사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김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도덕적 스승이자 길잡이다"(조스팽 프랑스 총리), "김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라우 독일 대통령)하는 식이었습니다.
현 정부에 다소 비판적이었던 한 선배 기자조차도 이런 모습을 보고는 "머리색 검고 얼굴 노란 황인종 중에서 백인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 사람은 중국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다. 오직 DJ 뿐이다"고 하더군요. 외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우리나라 대통령에 대한 이런 대접에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눈물을 글썽이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은 국내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동행한 30여명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누구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입니다. '대통령을 칭찬하는 기사는 낯뜨겁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국내의 뿌리깊은 반(反)DJ 정서를 눈치 보느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CEO인 그가 이런 'DJ 브랜드'를 갖고 있었으니 이것이 한국에 대한 투자유치와 IMF 극복, 그리고 우리나라의 외교적 위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네임밸류에 만족하지 않고 발로 뛰면서 한국 경제와 햇볕정책을 세일즈했습니다. 해외순방 때마다 저는 80에 가까운 DJ가 강행하는 빡빡한 일정에 먼저 넉다운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DJ의 공식일정은 전임 대통령들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유력 언론들이 자신의 국정이념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으니 직접 뛰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연설문은 밤을 새워가면서 직접 작성했고 지난해 2월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을 때는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DJ가 2001년말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정치 불개입을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정당에 출입하는 선배 기자들의 상당수도 "DJ는 어떤 식으로건 대선에 개입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옛날의 DJ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의 DJ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고 해외에서는 세계적인 위인으로 평가받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남은 욕심이 있다면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는 것뿐일 겁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성공하고 싶어했지만 그의 반대파들은 그를 여전히 특정 정파, 특정 지역의 수장으로만 간주하고 끊임없이 흠집을 내려고 했습니다. 몇몇 보수언론들의 노골적인 왜곡보도는 같은 기자입장에서 부끄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가치관과 이념을 달리하는데서 나오는 비판이 아니라 오직 DJ를 공격하기 위해서 사실 자체를 왜곡하고 호도하는 나쁜 보도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제 그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갑니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습니다. 다만 경제개혁과 남북협력,그리고 IT 육성이라는 그의 기본방향이 옳았다는데는 큰 반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실패가 너무나 극적으로 강조돼온 반면 성공에 대한 평가에는 지나치게 인색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공과(功過)는 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단지 저는 대한민국을 위해 바친 그의 열정과 진심만은 우리가 인정하고 그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대통령. 이제 좀 편안히 지내십시오."

저의 'cool한 정치' 칼럼도 이것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기대했던 것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이 칼럼란을 찾아주시고 읽어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되면 새로운 주제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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