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송몽규, 펜을 놓고 총을 들다 [열도의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송몽규, 펜을 놓고 총을 들다 [열도의 독립운동가들]

2020.03.10. 오후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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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 운동은 식민지 조선과 중국을 주요 무대로 이뤄진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 일본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그들의 행적을 찾아 나섭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열도 독립운동가들의 행적 찾기.
일본과 한국.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족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

■내레이션: 배우 박정민

⑤ 독립운동가 송몽규, 펜을 놓고 총을 들다 [열도의 독립운동가들]

교토대학교.

시인 윤동주의 사촌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송몽규 선생이 유학했던 학교입니다.

영화 <동주>를 통해 소개되면서 송몽규 선생은 최근 재조명받고 있는데요.

영광스럽게도 제가 영화 속에서 송몽규 선생 역할을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교토대학교 문서관에서 아주 귀중한 자료를 찾아냈습니다.

송몽규 선생의 입퇴학 관련 자료들입니다.

우선 선생이 유학 전에 다녔던 연희전문, 지금의 연세대학교로부터 받은 추천서가 남아 있습니다. 자필로 쓴 입학 서류에는 창씨 개명 때문에 ‘쿠니무라‘라는 일본어 발음표기가 적혀 있습니다.

송몽규와 운동주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은 1943년 7월.

그로부터 얼마 뒤 학교 측이 송몽규를 방학, 즉 퇴학 처리한다는 처분서 역시 남아 있었습니다.

송몽규는 결국 후쿠오카 감독에 수감되었다가 해방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옥사했습니다.

사촌인 윤동주 시인이 같은 형무소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뒤였습니다.

두 사람이 갇혔다가 사망한 후쿠오카 형무소는 지금 터만 남아 있고, 형무소는 인근 지역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민호 / 통일일보 서울지사장 : 우리나라에서 윤동주라고 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다 아는 사람 같은 친근한 이미지가 있는 반면에 같은 동료였던 송몽규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동주'라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송몽규란 존재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윤동주랑 송몽규가 고종사촌 지간 나이도 같았고 이 사람들이 같은 혐의로 사실 이 구치소 형무소에 2년 동안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이 구치소의 높은 담벼락의 높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윤동주와 송몽규가 이 근처에서 붙들려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PD : 사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런 구치소의 높은 벽만 봐도 그런 억울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일본에 유학 와서도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식민지 청년.

대학 입학 전부터 일찌감치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송몽규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미즈노 나오키 / 교토대학교 명예교수 : 윤동주 판결문을 보면 일본이 조선어를 금지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다고 비판한다든가, 민족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친구에게 말했다는 게 판결문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윤동주에 관해서는 문화적인 문제가 주된 용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송몽규 쪽은 그러한 문화적인 문제도 있지만 더 정치적인 발언이었죠. 예를 들어 "일본이 패전했을 때 우리는 앞장서야 한다"라는 걸 친구에게 말했다는 그런 정치적인 발언이 송몽규 판결에는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송몽규는 독립에 대해 적극적이고 윤동주는 물론 공명은 하지만 그것과 또 다른 문화의 문제를 중요시하고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둘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시 낭독 : 송몽규 '밤' : 밤 (夜) 고요히 침전된 어둠 만지울 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도 깊구나 홀로 밤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도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멀- 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일제의 한 복판에서 제국의 심장을 향해 저항했던 사람들.

무장 투쟁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만 열도의 독립운동가들은 분명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결과적으로 일본의 독립운동가들은 머리를 써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억울함을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할 것인가 했을 때 동지를 규합을 하고 어떻게 보면 시민 연대가 최선의 방법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의 옹호하는 지지자들과 연대를 하려고 했고 그런 면에서 한국의 운동가들이 굉장히 머리가 스마트했다고 할까요. 굉장히 현명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봅니다.]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족적은 일본 지식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츠카사키 마사유키 / 재일조선인 역사 연구 : 왜 독립을 지향했어야 하는지를 일본인이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해서는 독립운동가의 마음과 행동을 일본인으로서 파악하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즈노 나오키 / 교토대학교 명예교수 : 앞으로의 일본과 한국, 한국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는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은 해방된 조국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다짐입니다.

바로, 우리 후손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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