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독립을 외치다, 한인 여성의 독립운동 [대륙의 여성 독립투사들]

미국서 독립을 외치다, 한인 여성의 독립운동 [대륙의 여성 독립투사들]

2020.02.17. 오후 1:24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3.1 운동 100주년. 2019년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한 독립 유공자는 모두 만 5천여 명입니다. 그 가운데 여성 독립운동가의 수는 357명, 2.4%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독립 운동 자료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여성들의 흔적.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⑤ 미국서 독립을 외치다, 한인 여성의 독립운동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중앙 지역을 동포들은 이른바 중가주라고 부릅니다.

일제 강점기 미국으로 건너온 한인들이 광활한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했던 곳.

다뉴바, 그리고 리들리라는 소도시입니다.

[차만재 /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교수]
아마 이게 해외에 세워진 독립문으로서는 유일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이게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의 3분의 1 축소입니다.
-이곳에 지금 작은 한국이 있네요?
-그렇죠.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서 한국분들이 많이 모였거든요. 기금 모금에 참여하고 이런 이유로 여기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 독립문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우리가 판단했습니다.

여기서도 한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지원에 앞장 섰습니다.

다뉴바는 3.1 운동 직후인 1919년 5월 8일 대한여자애국단이 설립된 곳이기도 합니다.

[차만재 /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교수]
역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사모님 이혜련 여사, 혹은 안혜련 여사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서 바로 이 자리에서 1919년 5월 8일이니까 3.1 운동 일어나고 그 다음에 임시정부는 4월 13일 아니에요. 얼마 안돼 대한여자애국단이 창설되는 계기가 됐으니까 이곳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역사적인 곳입니다. 대대적인 항거 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결국 한민족이 아직도 살아있구나 하는 거를 상징한 것이거든. 여기서는 무국적자로 고생하면서 지내는데 국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우리도 무엇을 해야겠다는 절대적인 충격을 주는 행사였으니까. 거기서 여성들은 여성대로 해야 할 게 있지 않느냐. 특히나 여성이 할 수 있는, 사상자를 치유하고 남편들을 돕고 이런 걸 하자는 의미에서 애국단을 창설했죠.

대한여자애국단 역시 재미 동포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후원금으로 보냈습니다.

다뉴바에서 남쪽으로 3시간을 달려 LA로 향합니다.

우리나라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

때마침 이 지역 동포들이 모인 가운데 순국 선열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이혜련 선생의 막내 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필영 / 도산 안창호와 이혜련 선생의 막내 아들]
제 이름은 안필영입니다. 도산 안창호의 막내 아들입니다.

이미 아흔의 고령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또렷한데요.

[안필영 / 도산 안창호와 이혜련 선생의 막내 아들]
어머니는 가사노동을 하셨습니다. 가정집들을 청소하셨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허드렛일(잡역부)을 하셨는데 환자용 변기를 세척하거나 세탁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어머닌 항상 우리에게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또 반대로 어머니는 엄격한 분이셨습니다. 우린 모든 걸 절약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이곳 서방 세계에서 한인 사회가 좋은 평판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행동 양식을 실천해야 했습니다. 그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렇게 궁핍한 생활을 견뎌야 했던 그 시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 들었습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직후 이혜련 선생의 남편이자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이 중국 상하이에서 붙잡혔습니다.

[안필영 / 도산 안창호와 이혜련 선생의 막내 아들]
어머니와 제 사이에서의 슬픈 기억은. 1938년이었습니다. 2시 30분경 이른 새벽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벨이 울리고 어머니께서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우는 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라는 것을요. ‘필영아, 너는 아버지를 영영 볼 수 없단다’ 그리고 어머니는 흐느끼시며 저를 꽉 안아 주셨죠. 그게 어머니와 저 사이의 가장 슬픈 순간이었습니다.

3.1 운동은 일제에 억압받던 조선 방방곡곡을 만세의 함성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만세 운동의 여파는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미국의 한인들, 특히나 유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죠.

그들 역시 한국의 독립을 외치며 행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록 영상 속에 적지 않은 여성들이 보입니다.

우리는 이 분들이 누구인지, 기록이 남아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최정수 / 서재필 기념재단 회장]
이쪽 방이 미국에서의 3.1운동의 시작 지점입니다. First Korean Congress 또는 제1차 한인회의. 그 당시에 미국 본토에 천여 명이 있었는데 한국 사람이. 여기에 150명이 참여하셨거든요. 그러니까 대단한거죠. 저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는데 사진을 보고, 여자분들이 상당히 앞에 계세요. 제1차 한인회의 회의록을 보면 서(재필)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여기에 몇 명의 여성들이 참여했다고 말씀하세요.

태극기를 들고 당당하게 맨 앞줄에 서 있는 여성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김성호 / 서재필 기념재단 사무국장]
현재 이름이 밝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는, 그 당시 참여했던 독립 운동가는 미국 이름으로 노디 김, 한국 이름으로는 김혜숙 선생님. 나머지 한 분은 조앤 우. 그 분은 현재까지 한국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들 중 우리가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은 딱 두 분이었습니다.

한인 대회 당시 리틀 극장으로 불린 필라델피아 중심가의 소극장입니다.

바로 여기서 150여 명의 한인들이 사흘 동안 조국의 독립을 외치고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심옥주 / 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지금 눈이 비로 바뀌고 있는데요 그 당시에도 아마 이렇게 비가 내렸고 그들은 비를 맞으면서 태극기를 들고 세 시간여 거리를 행진 했을 겁니다.

이렇게라도 조국의 독립 염원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게 그들에겐 너무나 절실했을 겁니다.

뉴욕 한인교회.

지금은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중인데요.

바로 인근의 아이비리그 명문 컬럼비아 대학 한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 운동의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된 곳입니다.

[장철우 / 뉴욕 한인교회 목사]
1921년 어마어마한 3.1절 행사를 뉴욕 타운홀에서 시작을 하는데 1천 300여 명의 모임이 끝난 후에 우리가 이렇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헤어질 수 있느냐, 우리가 교회를 만들자. 교회를 만들어서 애국운동을 시작하자. 그래서 그해 석 달 후인 4월 18일 한인교회가 생겨나게 됩니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 교회가 생긴 거예요.

이들의 활동은 일제의 부당함과 한국의 독립이 절실하다는 것을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에 알리는 데 집중됐습니다.

여기서도 여성들의 활약은 도드라졌습니다.

[장철우 / 뉴욕 한인교회 목사]
1925년부터 35년 사이에 여성들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그 중에 뛰어난 분이 김마리아, 그리고 박인덕, 황에스더 이런 분들이 모였습니다. 그 분들이 오셔서 우리나라를 위한 독립운동의 모체를 우리가 만들자. 그래서 뉴욕 한인교회에서 그 분들을 중심으로 근화회라고 하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김마리아는 일본 동경 유학생으로 가서 2.8 동경 선언문을 치마폭에 숨기고 와서 3.1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전력이 있으신 분이 뉴욕에 1930년대에 오셔서 근화회를 만든 거예요. 근화회를 통해서 애국운동의 열기가 로스앤젤레스까지 퍼지면서 로스앤젤레스에 애국부인회가 생깁니다. 부인회가 생겨서 맹렬한 애국 운동이 미국에서 생겨나죠.

미주 지역 독립 운동 역사 곳곳에 짙은 족적을 남긴 여성들.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가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은 몇 분 되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 타국 땅에 있었다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죠.

3.1 운동 100주년,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

바야흐로 한 세기가 지났습니다.

잊히거나 평가받지 못한 여성 독립 운동가를 발굴하고 재조명해야 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