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지사 [대륙의 여성 독립투사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지사 [대륙의 여성 독립투사들]

2020.01.30. 오후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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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100주년. 2019년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한 독립 유공자는 모두 만 5천여 명입니다.
그 가운데 여성 독립운동가의 수는 357명, 2.4%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독립 운동 자료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여성들의 흔적.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지사

중국 동북 3성 가운데 하나인 랴오닝성.

우리가 흔히 만주 벌판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성도인 선양시에서 남쪽으로 2시간을 달려 항일 유적지를 찾아갑니다.

[녹취]
기사: 선생님! 베이산에 있는 항일투쟁기념비라는 곳을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나요?
촌민: 항일기념비…
기사: 베이산에 있는 거 말입니다.
촌민: 항일기념비가 어디 있더라? 잘 모르겠는데?
기사: 진짜요?
촌민: 항일기념비 어디 있는지...저쪽 마을이던가? 잘 모르겠는데.
촌민: 통허 하이난 중학 쪽이요.,
촌민: 통허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쉽지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근처에 항일 기념비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없네요.

이분 저분에게 물어물어 겨우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결국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서야 우리가 찾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황량하고 차가운 한겨울 만주 벌판에 외롭게 서 있는 기념비.

이 앞에서 우리는 일본군에 맞서 격렬한 항일 투쟁을 하다 해방을 10년 앞두고 숨을 거둔 한 여인의 흔적을 되짚어 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딱 한 장의 초상화만 남아 있지만, 윤희순 지사의 흔적은 랴오닝성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윤희순 지사가 항일 인재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세웠던 노학당이 있던 자리입니다.

윤 지사는 이곳에서 50여 명의 항일 투사를 길러냈습니다.

역시 단출한 기념비 하나가 이곳이 노학당이 있던 자리였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녹취:정정복 / 재중국동포, 노학당 유지비 관리인]
참말로 영웅이죠. 일본놈 때려 죽이려고 이렇게 했단 말이야. 3359 여기서 학교를 해서 항일 영웅, 제자들을 키워냈다는 말이야. 그런데 일본놈이 그때 알았단 말이야. 알아서 한 1년 있다가 노학당을 없애 버렸죠.

윤희순 지사의 꺾이지 않은 독립 의지가 100년의 세월을 넘어 여기 이렇게 서릿발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선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푸순시에도 윤희순 지사와 관련된 유적지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당시의 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녹취]
항일 투쟁할 때 1932년에 여기 윤희순 여사가 있었다는 역사 알아요?
정영걸(포가둔 주민) 나이가 너무 차서 모르겠는데...그 분 얘기도 오늘 처음 들어요.

[녹취: 전정혁 / 재중국 동포 역사학자]
1932년 9월 14일 요녕 민중 자위군과 항일대하고, 양세봉 장군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이 푸순으로 진군할 때/ 윤희순 여사께서 그 분들에게 밥도 해주고 웃도 빨아주고 그랬어요. 여기서.

윤희순 지사는 항일 인재 교육과 의병 지원만 했던 게 아닙니다.

직접 의병대를 이끌어 항일 투쟁에 나서기도 했죠.

우리는 푸순에서 윤희순 지사를 연구해 책으로 엮은 재중국 동포 역사학자를 만났습니다.

[인터뷰: 김양 / 재중국동포 역사학자]
윤희순은 조선독립단을 푸순 포가둔에서 건립했어요. 조선독립단은 다른 독립단과 같지 않습니다. 중국 사람도 있고 조선 사람도 있는, 180여 명이나 돼요. 항일은 혁명 투사만 하는 게 아니고 전 백성이 해야 한다, 해서 거기서 가족 부대를 만들었어요. 아주 독특하지요, 이게?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사격 연습을 하고 통신 연락도 하고 모금도 하고, 이런 일들을 했습니다. 이렇게 (윤희순은) 푸순에서 가장 빛나는 그의 독립 투쟁사를 엮었습니다.

그러나 윤 지사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아야 했습니다.

[인터뷰: 전정혁/ 재중국 동포 역사학자]
윤희순의 큰아들 유돈상이 여기서 일제의 경찰에게 체포돼서 고문을 받다가 그날 석방됐다가 가는 도중에 순국했어요.

윤 지사 역시 곧 아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1935년 8월 1일.

국권을 강탈당한 직후 중국으로 망명한 윤희순의 장장 25년에 걸쳐 계속된 항일 투쟁의 삶은 그렇게 마감됐습니다.

윤희순 의병가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있나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윤희순 지사가 작사한 '안사람 의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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