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걸작선] '그들도 우리처럼'

[한국영화 걸작선] '그들도 우리처럼'

2018.11.16. 오후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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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걸작선] '그들도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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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우리 사회에 대한 진지한 문제 의식을 가진, 이른바 사회파 감독들이 잇따라 등장했다고 이전 시간에 말씀 드린 바 있죠.

그 가운데 박광수 감독은 단연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노동운동이라는 화두를 멜로 드라마의 틀로 담아낸 수작인데요.

문성근, 심혜진이 주연한 '그들도 우리처럼'입니다.

강원도의 한 탄광촌에 태훈이 도착합니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수배돼 이곳에 몸을 숨기러 온 상황이죠.

여기저기 폐광된 탄광이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곳.

태훈은 일단 일자리를 알아 봅니다.

태훈: 사람 구하십니까?

이렇게 해서 연탄 공장에 취직한 태훈.

태훈: 하루에 이렇게 많이 만드니?
대식: 왜, 놀랐어요? 바쁠 때는 네 트럭도 빼고 그래요.

이런 와중에 태훈은 우연히 이 지역 다방에서 일하는 영숙을 만나게 됩니다.

영숙: 축하해요. 영업부장 님. 미스 송이에요.
심씨: 송양, 우리 영업부장한테 반한 모양이야.

한편, 연탄공장 사장의 아들인 성철은 늘 말썽을 피우고 다니는데요.

성철: 일 시킬 것 있으면 말하세요. 없으면 가겠습니다.
사장: 이리 와 앉아!
동생: 하는 짓거리 하고는.
사장: 아니? 저 놈이!
동생: 야, 너 뭐야! 네가 뭔데 때려!

성철의 괴롭힘에 시달리던 영숙은 어느덧 태훈에게 호감이 생깁니다.

영숙: 지금 다방에 전화해서 나 티켓 좀 끊어줄래요?

영숙은 잠시나마 태훈의 곁에서 눈물을 훔치며 위안을 얻죠.

영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밤중에 태훈의 숙소까지 찾아오는데요.

영숙: 내가 와서 잠도 못 자고 피곤하죠?
태훈: 아니요. 원래 잠이 없어요.
영숙: 내 직업은 마음에 안 들죠?
태훈: 제 직업은 마음에 들어요?
영숙: 하기야 탄돌이에 차순이면 그리 꿀릴 것도 없지.
영숙: 그럼 날 친구라고 생각해요?
태훈: 네.
영숙: 그럼 날 좋아하는 거예요?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연정을 서서히 쌓아가는데요.

이런 가운데 태훈은 함께 노동 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후배: 형이 쓴 팸플릿은 아직도 말이 좀 많아요.
태훈: 왜? 결국 패배한 건 민중이 아니라 지식인일 뿐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이 대사는 민중의 삶과 괴리된 지식인의 관념적 운동 방식에 대한 자기 반성을 드러내는 대목이죠.

태훈이 이곳에서 스스로 노동을 하며 민중의 삶을 배우는 것, 다방에서 일하는 영숙과 가까워 지는 것 역시 그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영숙을 폭행하는 성철과 몸싸움을 벌인 게 화근이 되죠.

경찰이 출동하는 바람에 수배 중인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위기에 처한 태훈.

태훈: 빨리 여기를 떠나야 됩니다.
영숙: 나도 같이 갈래요.

막장과도 같은 탄광촌에서 두 사람은 과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은 탄광촌 폐광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투쟁을 중간중간 보여주는데요.

파업을 무조건 불법으로 몰아붙였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대단히 진보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태훈과 영숙의 멜로 라인을 적절하게 배치하면서 운동권 영화의 계몽성과 딱딱함에서 가볍게 벗어나 있죠.

바로 그 점이 이 영화를 지식인의 성찰과 민중의 삶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극찬을 들은 이유입니다.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이었습니다.

글/구성/출연: 최광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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