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걸작선]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한국영화 걸작선]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2018.10.19. 오후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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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걸작선]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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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줄거리를 따라가기 쉽고, 해석하기 편한 영화가 인기도 얻기 마련입니다.

반면, 여러 갈래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는 작품은 평단의 찬사를 들을지언정 흥행에서는 푸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런 영화들은 후대의 창작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안겨주기도 하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도 그런 사례입니다.

제목이 아주 깁니다. 이장호 감독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입니다.

3년 전 아내를 잃은 순석은 죽은 아내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려고 강원도의 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그마저 쉽지가 않죠.

군인: 뭐야, 이게? 뼈 아니야? 뿌리고 빨리 올라 가쇼. 여긴 해 떨어지면 못 나오는 곳입니다.

휴전선이 가까운 이 지역의 풍경은 영화 내내 자주 등장하는데요.

분단이라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임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근처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던 순석에게 주인이 부탁을 하나 합니다.

식당 주인: 저 선생님을 월산 부근까지만 모셔다 드리오. 돈 10만 원 내놓겠대요.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는 한 노인과 그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간호사.

그러나 순석은 부탁을 거절합니다.

그러고는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사내들과 같은 여관에 머물게 되는데요.

내친 김에 화투판에 낀 순석.

그런데, 이들을 시중 들던 작부 가운데 한 명이 심장 마비로 숨지고 마는 사고가 벌어집니다.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 순석은 앞서 자신에게 부탁을 했던 노인과 간호사가 자꾸 눈에 밟히고, 그들을 찾아 나서기로 하는데요.

이런 와중에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긴 매춘부를 만나게 되죠.

하지만 그녀 역시 다음날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이 일련의 죽음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어쨌든, 결국 순석은 간호사를 찾아내는데요.

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미세스 최: 선생님 여기 오실 줄 알고 있었는데요. 옛날 점쟁이 말이 생각나기도 해서 기다렸죠./나이 서른에 물가에서 관 셋 짊어진 사람을 반드시 만난다. 그 사람이 전생에 네 남편이다.

영화는 끝내 관객들에게 해피 엔딩을 선사하지 않습니다.

순석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과, 여인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한 무속적 장면들이 교차하면서 영화는 일반적인 시간적 순서를 헤집어 놓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순석의 무의식을 통해, 분단이라는 현실을 상기시키는 한편, 운명의 굴레에 갇힌 인간의 보편적 비애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1980년대 가장 문제적 영화로 손꼽히는 작품,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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