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 선생 기념관 개관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 선생 기념관 개관

2019.04.01. 오후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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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 땅에서 거부가 됐지만, 그 돈을 조국 독립과 교육을 위해 쓴 독립운동가를 아십니까?

'시베리아의 난로'로 불린 최재형 선생입니다.

최재형 선생의 자택이 기념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강현정 PD가 전해드립니다.

[기사]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안 의사의 숨은 조력자는 러시아 동포 최재형 선생이었습니다.

함경도 땅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 연해주에서 거부가 된 최재형 선생은 조국 독립과 동포를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동의회', '권업회' 등 항일 조직을 만들어 수많은 애국지사를 지원했고, 1919년에는 임시정부 초대 재무 총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김 수 필 / 최재형 기념사업회 이사장(지난해 순국 98주기 추모식)]
"'중국에 김구 선생이 있고 미국에 독립운동가 이승만 대통령이 있고 러시아에는 최재형 선생이 있다.', 이렇게 세 분이 대륙별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라고 이렇게들 이야기하시는 분이 많아요."

최재형 선생이 1920년 일본군에 체포돼 순국하기 직전까지 살던 집이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기념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선생의 생애와 정신은 물론, 러시아 동포들의 항일 투쟁 역사까지 담겼습니다.

[인터뷰: 석 현 정 / 최재형 기념관 방문객]
"최재형 선생님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에 대해서 오늘 처음 아는 것들이 많습니다."

[인터뷰: 최 발렌틴 / 최재형 선생 손자]
"과거 구소련 때는 계급사회체제로 할아버지가 잊힌 존재였는데요. 지금은 한·러 양국이 할아버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감개무량할 일입니다. 지금 조국이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백 년이 지났을 때도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생전 최재형 선생은 학교 30여 개를 세울 만큼 교육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 정신을 받들어 최재형 기념관은 역사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될 계획입니다.

[인터뷰: 김 니콜라이 / 연해주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 회장]
"앞으로 우리는 최재형 기념관에 온 학생들이 연해주 영토의 역사를 공부하고, 연해주에서의 한국 항일독립운동역사뿐 아니라 극동지역, 연해주에서 한인들이 어떤 공헌을 했는지 알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한 우 성 /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고려인들이) 이제 한국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자랑스러운, 성공한 러시아 시민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한편으로는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정체성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한의 시기 조국에 따뜻한 난로를 자처한 최재형 선생.

그 숭고한 정신이 깃든 기념관이 한국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사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YTN WORLD 강현정입니다.

강현정(ytnworld@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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