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에게도 먹을 권리가 있다"…13년간 무료 급식하는 정신기 씨

"노숙자에게도 먹을 권리가 있다"…13년간 무료 급식하는 정신기 씨

2020.01.04. 오후 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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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낙농 강국으로 유명한 뉴질랜드.

하지만 OECD 국가 중 노숙자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노숙자를 위해 10년 이상 무료 급식을 해온 한인 가족이 있습니다.

함께 만나보시죠.

[기자]
뉴질랜드 제2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

여기에 바쁜 일상을 달리는 한 명의 한국인이 있습니다.

[정신기 / 크라이스트처치의 택시 운전사 : 제가 크라이스트처치로 온 이후로 택시 운전사 일을 시작했으니까…한 21년 되었네요. 하루에 보통 12시간 정도 일합니다. 그니까 한 6시부터 6시 정도까지. 많이 할 때는 14시간까지 할 때가 있고.]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친 정신기 씨가 무거운 박스를 들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각종 채소에 잔뜩 실린 감자까지.

음식을 받은 아이들은 묵묵히 감자를 씻고 깎기 시작합니다.

지금 뭘 만들고 있나요?

[정주리 / 정신기 씨 딸 : 감자 샐러드 할 감자를 깎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좀 귀찮고 감자를 매주 많이 까야 해서 힘들지만, 이제는 익숙하고 또 엄마 아빠를 도운 것이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사실 정신기 씨 가족은 10년 넘게 매주 금요일마다 감자를 깎는데요.

이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드는 데 이유가 있습니다.

[정신기 / 크라이스트처치의 택시 운전사 : 추운 겨울날 아침에 가게 앞에서 (노숙자가) 카드보드 깔고 자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얼어 죽은 거죠. 자연스럽게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이제 공원에 무작정 간 거죠.]

다음 날 정신기 씨가 도착한 곳은 시내 한복판의 라티머 광장.

13년 전, 한 노숙자가 죽음을 맞이한 이곳에서 정신기 씨는 혼자 무료 급식을 시작했습니다.

택시 운전사로 버는 돈 중 20만 원 이상을 주말마다 노숙자의 음식값으로 쓰고 있습니다.

[정신기 / 크라이스트처치 노숙인의 대부 : 힘들었던 때도 있죠. 여러 가지 문제, 경제적 문제도 그렇고 또 갈등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의문이 들기도 하고.]

감자 샐러드로 시작한 무료 급식.

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노숙자들의 배를 채웁니다.

정신기 씨의 뜻에 공감한 사람들이 각자 음식을 가져오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음식을 받는 입장이었던 노숙자도 급식을 도와줍니다.

[개리 무어스티키 / 노숙자·자원봉사자 : (10여 년 전에) 여기 라티머 광장에서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저희에게 다가오더니 음식이 있는데 먹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친구들이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처음 정신기 씨를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사람들을 도울 기술이 있어요. (정신기 씨처럼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바로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봉사자가 음식을 나눠주는 동안 정신기 씨는 공원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지켜봅니다.

노숙자와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정신기 씨가 만들어 온 이 공간이 노숙자에 대한 그의 태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신기 / 크라이스트처치 노숙인의 대부 : 어쨌든 그분들(노숙자)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고. 또 한 번 시작했으면 중간에 그만둘 일도 아니고.]

노숙자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고,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

노숙자가 굶어 죽지 않는 사회를 위해 정신기 씨와 그의 가족이 달려온 이유입니다.

[손현숙 / 정신기 씨 아내 : 제일 행복하죠. 특히 제가 한 걸 맛있다고 해주면 더 좋고. 뭐든지 힘이 들어야 행복도 오는 게 아닌가요? 정말 좋아요.]

[정신기 / 크라이스트처치 노숙인의 대부 : 노숙자 분들이 없으면 제일 좋겠지만, 어느 사회나 불우한 사람들이 있고. (앞으로도 이 일을 해 나가실 건가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다른 어려움은 있어도 이분들(노숙자) 보면 포기를 할 수 없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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