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무대에 '도전장' 내민 음악가들

유럽 무대에 '도전장' 내민 음악가들

2019.11.30. 오후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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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들이 잘 닦아놓은 길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음악인들이 있습니다.

안정보단 도전을 선택했고, 그 결과, 세계적인 음악가로 인정받고 있는데요.

그 주인공들 직접 만나보시죠.

[기자]
프랑스의 3대 관현악단 중 하나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정명훈 씨가 15년간 음악감독으로 활동해 국내에도 친숙한 악단입니다.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이 한창인데요.

오케스트라의 맨 앞줄, 지휘자 바로 옆에 있는 자리가 바이올린 연주자 박지윤 씨의 자리입니다.

박지윤 씨는 지난해 동양인 최초로 오케스트라의 종신 악장으로 임명됐죠.

[박지윤 /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 : (지난해 12월)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지윤 박, 박지윤 씨가 우리 오케스트라의 정단원(악장)이 되었다' 얘기를 했어요. 그때 정말 감동 받아서 울고 단원들도 너무 축하해주고 박수 쳐 주고. 그 순간은 정말 잊을 수가 없는 거 같아요.]

박지윤 씨는 뛰어난 연주 실력은 물론이고 지휘자와 단원 사이를 조율하는 리더십과 책임감까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코 프랑코 /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 단원들이 따르고 싶게 만드는 타고난 리더십을 지니고 있어요. 아주 중요한 점이죠. 제가 그녀에게 감탄하는 점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표현해내는 부분입니다.(박지윤 씨의 연주는)덧붙여지는 것 혹은 그 어떤 이야기 없이 음악 그 자체가 말하도록 두는 겁니다.]

네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박지윤 씨는 오래전부터 오케스트라 악장을 꿈꿨습니다.

지방에서 7년간 악장을 하며 실력과 경험을 쌓았고, 마침내 오디션 기회를 얻어 꿈을 이룰 수 있었죠.

[박지윤 /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 : 큰 오케스트라들은 사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 '저 사람이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 이런 마음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저희 오케스트라는 그렇지 않고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면서 제가 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끔 다들 그렇게 믿어줘서 저는 수습 기간을 굉장히 편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드디어 공연 당일! 관객석은 빼곡히 차있고 무대 위로 단원들이 자리합니다.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의 악장, 박지윤 씨를 단원들이 기립하며 맞이합니다.

곧 지휘자가 입장하고 연주가 시작됐는데요.

'기능적으로 가장 완벽한 오케스트라'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습니다.

[크리스틴 쥘리앙 /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관객 : 아주 좋았어요. 그녀가 연주할 때 악기와 하나인 듯했죠. 바이올린을 동행하는 것처럼요. 너무나 훌륭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클래식 전공자들이 단독으로 공연하는 솔리스트를 꿈꿀 때, 박지윤 씨는 다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오케스트라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남들과 다른 길, 그것은 새로운 도전이었죠.

[박지윤 /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 : 저는 젊은 학생들에게 모든 경험을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길을 접해보면 자기한테 정말 맞는 길을 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자신을 믿고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결과, 박지윤 씨는 동양인 최초 종신 악장이라는 이름으로 무대 위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습니다.

김소영 씨는 네덜란드에서 작곡가 누빔이란 이름도 활동 중인데요.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던 소영 씨는 장래가 촉망되던 건축가였죠.

하지만 서른 살 때, 인생의 항로를 180도 돌려놓는 선택을 합니다.

[김소영 / 작곡가 '누빔' : 제가 건축을 좋아했지만, 저에게 가장 적합한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진정한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때마침 제가 재즈에 심취하게 되었어요. 어차피 음악은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제 음악을, 제 색깔의 음악을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건축에서 음악으로 길을 바꾸게 되었죠.]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도, 음악을 시작하기에도 고민이 되는 나이 서른.

주위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소영 씨는 선택을 되돌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연주보단 작곡에 소질이 있단 걸 알게 됐는데요.

국제적인 상도 받으면서 명성을 얻을 무렵, 소영 씨는 다시 한 번 인생의 항로를 바꿉니다.

그녀의 나이, 마흔을 넘은 때였죠.

[김소영 / 작곡가 '누빔' : 처음의 열정을 회복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품게 됐습니다. 그래서 유학지를 찾던 중에 네덜란드가 저에게 가장 적합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고 과감하게 한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선 재즈 작곡을 했지만 네덜란드에선 클래식을 또 공부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요.

지난 11월에는 자신의 곡을 모아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가수가 아닌 작곡가가 콘서트를 한다는 건 이곳에서도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죠.

[빌버트 불싱크 / 담당 교수·작곡가 : '누빔' 소영의 음악은 시적이며 다양한 색깔을 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 다양한 학생들의 음악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클라스 드 프리스 / 작곡가 : 콘서트의 마지막 피아노 곡은 그녀의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곡이라 생각합니다. 그녀는 서양의 음악인 하모니를 이방인의 새로운 각도로 해석해서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한 새로운 길.

거기에 현지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동양인 여성.

이방인으로서 불리한 조건뿐이었지만 김소영 씨는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마침내 음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소영 씨의 말이 공허한 응원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김소영 / 작곡가 '누빔' : 다른 사람과 자신을 너무 비교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어떤 길이 가장 좋을지. 그리고 나이도 저는 별로 중요한 거 같지 않아요. 언제 시작하는지 이것도 중요한 거 같지 않고 사회적 편견도 잊어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최선을 다하면 모든 장벽은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서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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