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태어나다…스위스·호주 전통 악기

손끝에서 태어나다…스위스·호주 전통 악기

2019.11.16. 오후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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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악기는 섬세한 공예품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통악기를 만드는데 힘 쏟고 있는 악기 명장들의 이야기, 함께 만나보시죠!

[기자]
스위스 루체른의 필라투스 산!

기막힌 절경을 자랑하는 이곳에 작은 작업실 하나가 눈에 띕니다.

스위스의 전통 악기, 알펜호른을 만드는 장인 토비아스 베르치 씨가 있는 곳입니다.

[토비아스 베르치 / 알펜호른 악기 장인 : 예전에는 알펜호른을 직접 연주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알펜호른을 도둑맞았죠.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겁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알펜호른! 오로지 입과 공기로만 음을 조절합니다.

멀게는 10km까지 아름다운 알펜호른의 소리가 전달됩니다.

[토비아스 베르치 / 알펜호른 악기 장인 : 스위스에서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알펜호른을 접합니다. 어디서든 연주하죠. 원래 알펜호른은 통신 악기였어요. 이쪽 산에서 저쪽 산으로 신호를 보 낼때 사용했는데, 전화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단순해 보이지만 제작은 쉽지 않습니다.

주로 바이올린을 만들 때 쓰는 가문비 통나무를 잘라 속을 파서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간의 정성을 들이는 겁니다.

[토비아스 베르치 / 알펜호른 악기 장인 : 나무는 5년 동안 말립니다. 그 후에 이 정도 크기로 잘라서 다시 1년간 보관한 뒤에야 작업에 들어갈 수 있죠.]

그 후 작업에 걸리는 시간만 최소 80시간, 종류에 따라선 200시간도 넘게 걸립니다.

대부분 수작업이라 하루도 손이 성한 날이 없습니다.

10년 전엔 근육병 진단을 받아 통증은 물론이고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알펜호른만큼은 결코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토비아스 베르치 / 알펜호른 악기 장인 : 이 제작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열정이 있으니까 하는 것일 뿐, 부자가 될 수는 없어요. 내 손을 거치는 이 악기가 점점 더 좋아진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십대 때부터 알펜호른과 사랑에 빠진 베르치 씨.

이제는 자신의 삶이 곧 알펜호른이라 말합니다.

기계로 만드는 악기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손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온다고 강조합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

베르치 씨가 알펜호른 명장이 된 비결입니다.

[토비아스 베르치 / 알펜호른 악기 장인 : 우리에게는 여전히 좋은 수공업자들이 필요합니다. 그걸 장려하고 진흥해야 해요. 아무리 사회가 디지털화된다 해도 언제나 훌륭한 수공업자들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에 알펜호른이 있다면 호주엔 원주민들이 연주하던 전통 악기, 디저리두가 있습니다.

멜버른에 사는 마크 스미스 씨!

30년 가까이 IT 관련 일을 했던 그는 지난 1999년,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우연히 디저리두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마크 스미스 / 디저리두 악기 장인 : 4년 동안 침대에서 가만히 누워 지내야 했어요. 그 시간을 거친 뒤 음악인으로서 제 2의 자아를 찾게 됐죠. 생각해보면 저는 언제나 음악가였던 것 같아요. 제 딸이 우연히 디저리두로 저를 안내했고요. 수업을 받으며 악기를 익혔고 그렇게 빠져들게 됐죠.]

디저리두의 가장 큰 매력은 연주하는 방법도, 소리도 다양하다는 것.

보통 1m에서 1.5m 길이인데, 각각 다른 소리가 나옵니다.

[마크 스미스 / 디저리두 악기 장인 : 긴 건 낮은 A(라)까지 소리가 나고 가운데 있는 건 높은 F#(파#)까지 소리를 내죠. 보통 1미터당 G(솔)만큼 소리를 낼 수 있어요. 그래서 만약 2미터다 하면 한 옥타브 내려간 G(솔)까지 소리가 나죠. 그러니까 길수록 중저음을 내는 거예요.]

디저리두는 다채로운 저음이 매력적입니다.

디저리두에 빠져 호주 북부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는 스미스 씨.

그들의 역사와 문화, 음식을 배우면서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고 합니다.

[마크 스미스 / 디저리두 악기 장인 : 애버리진(호주 원어민)과 함께 디저리두 연주를 많이 했죠. 멜버른에 있는 헤머 홀(아트센터)에서 3천 명 관중에게 디저리두를 선보였고. 돈 캐스터 지역의 만 명 앞에서 크리스마스 캐럴 공연을 했죠. 디저리두는 저를 음악적으로 여러 곳에 안내해줬어요. 덕분에 정말 멋진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었죠.]

연주만으론 만족하지 못해 직접 제작에 나선 스미스 씨.

여전히 나무를 재료로 하는 전통적 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집 한쪽에는 통나무 더미들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마크 스미스 / 디저리두 악기 장인 : 집 밑이 나무들로 가득해요. 저는 이렇게 보존해서 천천히 건조합니다. 그래서 디저리두를 만들 때는 이미 건조된 상태기 때문에 악기가 쪼개질 일이 없죠.]

잘 건조 시킨 나무의 표면을 다듬고 속을 파서 악기를 완성합니다.

모든 과정은 수작업입니다.

[마크 스미스 / 디저리두 악기 장인 : 남아시아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넘어오는 디저리두는 공장에서 만듭니다. 그래서 나무 구멍이 일정하지 않죠. 큰 구멍도 있고 작은 구멍도 있어요. 어떤 생산 라인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악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나무 자체도 좋은 게 아니에요.]

일 년에 스무 개 정도만 제작할 만큼, 정성을 들여 전 세계로 판매되는 디저리두.

한때 불의의 사고로 절망의 끝에 섰던 스미스 씨.

하지만 이제는 전통 악기 디저리두와 함께 장인으로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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