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이어도

[한국영화걸작선] 이어도

2018.08.18. 오후 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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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의 많은 영화들이 전통적인 가치관과 근대화의 산물이 충돌하거나 뒤섞이는 풍경을 묘사했는데요.

오늘 한국영화 걸작선에서 소개해드릴 영화는 여기에 무속 신앙과 신화적 세계를 끌어들이면서 기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바로 김기영 감독의 1977년 작 '이어도'인데요.

독특한 형식미와 주제 의식을 보여준 수작입니다.

지금 만나 보시죠.

■ 이어도(1977, 김기영 감독)

한 호텔업체가 제주도에 '이어도'라는 이름의 관광호텔을 지을 목적으로 홍보 행사를 마련합니다.

언론사 기자들을 모아 놓고 배를 띄운 건데요.

회사 간부: 우리는 이 배를 전설의 섬, 이어도 찾기에 등장시킵니다. 우리의 행선지는 이어도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전설의 섬, 이어도.

그런데 한 남자가 갑자기 분개하고 나섭니다.

남석: 빨리 배를 돌리시오! 제주도민의 성역을 호텔업체가 흙 묻은 발로 짓밟는 것은 제주도민의 신앙을 모욕하는 것이야!

그는 바로 제주도 부근 파랑도 출신의 천남석.

행사를 기획한 우현은 그와 논쟁을 벌이는데요.

우현: 이어도 섬 찾기를 한다고 없는 전설의 섬이 나타날 리가 없잖아. 대중이란 감수성이 짙어서 방향만 잘 잡아준다면 곧잘 따라오거든.

그런데 이 날밤, 배 위에서 천남석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회사 간부: 한 사람이 증발했나 봐. 아무 데도 없어.

이 사건으로 우현은 살인 용의자로 몰리고 맙니다.

다행히 무죄로 풀려나긴 했지만, 우현은 천남석이 어디로,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천남석이 일하던 신문사 편집장과 함께 해녀들의 섬 파랑도를 찾게 되죠.

편집장: 이 섬은 남자가 없는 게 문제다. 여자는 딸을 낳으면 해녀를 만들지만, 아들을 낳으면 육지로 내쫓아 그곳에서 살게 한다. 이게 이 섬 풍속이야.

두 사람은 우선 이 섬의 무당을 찾아가는데요.

무당: 먼저 천남석의 집에 대대로 흐르는 무섭고 저주스러운 얘기를 아셔야겠습니다.

이제 영화는 본격적으로 천남석에게 얽힌 과거의 사연을 풀어 헤치기 시작합니다.

어부였던 남석의 아버지는 뱃일을 나갔다가 목숨을 잃고 마는데요.

남석 모: 내 남편을 돌려줘.

남석 모: 물귀신이 너희 아버지 잡아갔다!

이 섬에는 이어도 물귀신이 남자들을 잡아간다는 무속 신앙이 있었는데요.

겁을 먹은 남석은 섬을 떠나기로 결심하죠.

세월이 흐른 뒤, 남석은 다시 파랑도로 돌아옵니다.

춘길: 안 온다는 섬은 왜 왔어? 죽으러 왔냐?

남석은 친구 춘길과 함께 이 섬의 해녀들을 대상으로 돈 벌 궁리에 빠집니다.

이런 가운데 남석은 박 여인과 동거를 시작하는데요.

전복 양식을 시작하려는 남석은 박 여인에게 마을 여자들로부터 사업 자금을 구해오라고 시킵니다.

남석: 왜 돈을 못 구해. 역사 이래 이 섬으로서는 장래를 위한 큰 사업인데 한번 말해서 돈 꿔줄 사람이 어디 있어? 열 번 스무 번 물고 늘어지란 말이야.

이렇게 두 사람이 야심 차게 시작한 전복 양식 사업.

그러나 불운이 찾아옵니다.

연구원: 해녀들 보고에는 바닷속에 이변이 생겨서 죽은 물고기들이 떠다닌답니다 남석: 아니, 그럼. 이게 모두 그래서 죽었단 말입니까? 박 여인: 어떻게 된 거예요? 원인이 뭡니까? 연구원: 공해입니다.

영화 '이어도'는 이 대목에서 당시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환경 문제를 제기합니다.

아무튼 좌절에 빠진 천남석은 마을의 유일한 술집 여인에게 위안을 얻습니다.

천남석의 과거사를 추적하는 우현을 액자 삼아 영화는 베일에 쌓인 술집 여인의 정체에 얽힌 또 다른 미스터리를 전개합니다.

영화 '이어도'는 무속 신앙과 전설의 섬을 매개로 의문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세련된 이야기 구조를 선보입니다.

섬의 여성들을 원시적 생명력의 근원으로, 남성들의 물질적 욕망은 생명을 파괴하는 원인으로 상징화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독특하고 신비로운 미스터리 구조 속에 의미심장한 주제 의식을 품은 영화 '이어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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