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연속기획 - 재일동포 1세의 기록 ② 이병문

신년 연속기획 - 재일동포 1세의 기록 ② 이병문

2018.01.13. 오후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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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 고국을 떠난 이들은 일본에서 무엇을 지켜왔는가

식민지와 분단, 차별 그리고 굴곡진 삶

신년 연속 기획 재일동포 1세의 기록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후회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나는 일본에 와서 노동만 하고. 일본에 와서 너무 길게 살았다고 생각해요. 괜히.]

이병문
1935년 출생 (84세)
제주도 출신
21세 때 일본 시모노세키로 이주
아들과 함께 플라스틱 공장 경영

2화 투박한 손마디에 서린 회한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부산에서 학교 다녔는데 학교가 하코방(빈민촌의 허름한 집)이었어요. 본교는 해운대에 있었는데. 너무 추울 때는, 겨울에는 밖에 나와서 탁배기(막걸리)를 먹고 강의를 듣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제가 일곱 살 때 돌아가시고, 어버지가 열 한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형님이 저를 키워줬어요. 부산에서 대학교 다니다가 봄 방학에 일본으로 왔습니다. 일본에 구경하러 왔다가 그대로 고향에 돌아가지도 않고 일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오니까 살기가 좋았어요. 경기도 좋고. 취직할 데도, 일자리도 많이 있어서. 우리 친척 삼촌이 돈을 많이 버니까 사실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어요.]

1950년대 한반도가 전쟁으로 불모의 땅이 된 시절 일본은 전쟁 특수로 경제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재일동포는 예외였다.

전후, 재일동포에게 주어진 일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고철을 수집해서 배에 실어 야하타 제철소로 운반해 팔았습니다. 일이 없으니까. 우리 한국 사람은 음식점이나 그런 고철 사업, 일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험한 일. 지금도 똑같습니다. 오사카에는 동포가 많이 있으니까. 시모노세키의 삼촌이 고철 사업을 접어서 오사카로 왔습니다.]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어떤 일을 하셨어요? 처음에 (오사카로) 오셨을 때?) "인쇄 공장. 거기서 10년쯤 일을 했습니다.]

궤도에 오르던 인쇄업, 그러나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조금 (잘) 되었는데, (큰) 아들이 다섯 살쯤 되었을 때 기계 속에 손을 넣었다가 손가락이 잘렸습니다. 지금도 (손가락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계도 다 부숴버리고. 그래서 일도 안 하고, 한 10년 동안 건들건들 놀았어요.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그것 때문에 죄책감을 많이 느끼셨군요.) 네, 많이. 그래서 마누라가 일하고 나는 먹고.]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일을 작파하시고 10년 동안은 그냥?) 놀았습니다.]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다시 인쇄 기계를 잡지 않겠다고 하신 거예요?) 예.]

일본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후회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여기 와서 노동만 하고 일본 사람한테 놀림 받은 적이 많았습니다. 취직도 못 하고. 일본에 오지 않았으면 또 다른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동창생도 출세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돌아갔는데, 일본에 와서 너무 길게 살았다고 생각해요. 괜히. 자기가 선택했으니까 지금 후회해도 할 수 없습니다. 남은 여생을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후회해도…. (제주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지만, 자식한테는 그런 말은 (못 합니다). 자식들에게 제주도로 데려가 달라고 할 때는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한국 사람답게

이병문 할아버지 아들
이영지 / 재일동포 2세 / 46세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우리 동포 1세들이 고생 많이 해도 2, 3세들을 다 공부를 잘 시켰어요.]

[이병문 / 재일동포 1세 : (자녀가 일본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보통 1세 분들이 반대를 많이 하시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별로 반대 많이 안 하셨다고.) 반대는…. 해봤자 할 수 없는 일이죠. 귀화는 안 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귀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뿌리가 중요하지. (하지만)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지) 그건 모르겠어요. 자식들이 한국 사람답게, 일본 사람한테서 놀림 받지 않도록 언제나 한국을 잊지 말고 한국 사람답게 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몸은 일본에 있지만, 마음은 늘 고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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