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연속기획 - 재일동포 1세의 기록 ① 강경남

신년 연속기획 - 재일동포 1세의 기록 ① 강경남

2018.01.06. 오후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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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 고국을 떠난 이들은 일본에서 무엇을 지켜왔는가

식민지와 분단, 차별 그리고 굴곡진 삶

신년 연속 기획 재일동포 1세의 기록

강경남 1925년생 (94세) 경상남도 사천 출신

8세 때 일본 오사카로 이주 재일동포 밀집 지역 '우토로'에서 73년간 거주

[강경남 / 재일동포 1세 : 전쟁(태평양 전쟁) 끝나고 집에 가야 안 되나. 돌아가는 사람은 돌아가고 안 돌아간 사람은 안 돌아가고 여기 살고 논 있고 밭 있는 그런 데 가서 나물 뜯어 와서 먹고 그랬다. 그렇게 살았다.]

1화 우토로에서 살아온 70년

[강경남 / 재일동포 1세 : (여기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기억나세요?) 우리 아버지가 일본 먼저 오고, 그다음에는 우리 오빠가 오고, 그다음에는 우리 언니가 일본에 오고, 나하고 어머니하고만 남았어, 한국에. 남으니까 일본에 살던 여성이 조선에 갔다 온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우리를) 데리고 오라고 시켰더라고. 그렇게 해서 어머니하고 나하고 그 언니하고 (일본에) 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난 여덟 살. 여덟 살 때 왔기 때문에 아버지 얼굴도 못 봤습니다. 일본 와서는 아버지 얼굴 봤어. (아버지는 일본에 왜 오셨어요?) 왜 왔는지 몰라. 나 어렸을 때 가셨으니까.]

전쟁의 공포 속 우토로로 향한 길

[강경남 / 재일동포 1세 : (그때는) 일본 사람하고 미국 사람과 전쟁(태평양 전쟁)이 났어. 전쟁이 나니까 큰 고동(사이렌)이 울면 큰 비행기가 떠서 온다. 사람이 꼼짝하는 움직임이 있으면 (비행기에서) 폭탄을 던진다. 폭탄 던지면 집이 다 부서진다. 비행기가 온다고 고동이 불면 절대로 밖에 나가면 안 돼. 가만히 집 안에 들어앉아 있고. 우리 시아버지가 '우리가 여기(오사카) 있으면 죽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 촌으로 가자고 하더라고. 산도 있고, 그런 데 가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왔어. 서양 사람들이 교토에는 폭탄도 안 던지고 비행기도 안 뜨고 그런다고 하더라. 그래서 여기(우토로) 오니까 넓더라. '여기는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여기로 내려가라.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거기로 내려가라(고 하더라고). 거기에 총알이나 폭탄이나 그런 거 만드는 사람들, 다른 데서 남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함바(건설 현장의 식당)··· 아침에 저녁에 오면 밥 먹이고 재우고 아침에 또 밥 먹이고. 그런 거(무기) 만드는 데 또 보내고 그랬어. 그런 사람들이 사는 데였어.]

1940년대 일본군 비행장 건설 공사에 1,3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동원되었다

그들의 집단 합숙소가 있던 우토로는 전후 조선인 마을이 되었다

우토로에서의 척박한 삶

[강경남 / 재일동포 1세 : 전쟁 끝나고 집에 가야 안 되나. 돌아가는 사람은 돌아가고 안 돌아간 사람은 안 돌아가고 여기 살고. 논 있고 밭 있는 그런 데 가서 나물 뜯어 와서 먹고 그랬다. 그렇게 살았다. 전쟁 끝나고 나서는 일도 없고. 일본 사람들이 전쟁 때 총알이나 그런 거 만들었으니 고철을 수집하고 그랬어. 일본이 그것을 다 전쟁 때 사용했잖아.]

하지만 해방 후 우토로 한인에게는 기본적 거주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토지 소유권자가 우토로 마을을 매각해 주민들에게 퇴거를 강요했다

삶의 터전을 지키는 싸움

[강경남 / 재일동포 1세 : (우토로 마을을) 팔아버렸어. 여기 사는데. 팔아버렸으니까 며칠 지나고, 며칠인지 몇 개월인지 몰라. 그랬더니 (마을을) 산 사람이 '나가라'라고 하면서 왔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몰랐거든. 그러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잖아. 싸우잖아. (마을)입구가 있었잖아. 거기에 내가 누워 있었다. 누워 있는데 그 트럭이 내 옆에 와서 내리더라. 내려서 남자가 '어디 아프냐'고 하더라. 남자가. 그리고 '아줌마 여기서 뭐 하느냐, 왜 여기서 누워 있느냐'고 하니까 '왜 안으로 들어가느냐', '집 부수러 간다'고 하대. '집 부수러 안으로 들어간다면 나를 깔아 죽여라'고 했다. '깔아 죽이고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우토로에 희망이

"(우리는) 마이크로 방송하고. 그렇게 오사카도 가고 교토도 전부 다 가고. 나고야도 가고, 와카야마도. 많은 곳을 다녔다. 그 방송을 남성들이 듣고 여성들도 듣고 찾아와서 소리 들으러 왔어. '그건 안 된다'고 해서 재판도 하고. 재판할 때도 모두가 응원해줬다."

우토로 재판 1989년 우토로를 매입한 토지소유권자가 주민들을 상대로 제기한 토지 양도 소송

2000년, 우토로 주민들은 재판에서 패소해 강제퇴거의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한일 시민들의 지원을 받아 주민들은 마을의 1/3을 매입했다

마을에는 주민들을 위한 공공주택이 건설 중이다

2020년이면 우토로 마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강경남 / 재일동포 1세 : 사람들이 (우토로에) 막 오더라. '아이고 할머니, TV서 봤다. 이런 것 봤다, 저런 것 봤다'고 하고. 차로 타고 스무 명도 오고 온갖 군데서 사람들이 다 왔어요. 사람들이 차비 써가며 와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차비 써서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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