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걸작선 '서울의 지붕 밑'

한국영화 걸작선 '서울의 지붕 밑'

2017.12.10. 오전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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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한국인의 얼굴을 대표하는 배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대체로 당대의 서민적 느낌을 담는 경우가 많죠.

오늘날 그 배우가, 이를테면 송강호나 황정민이라면, 1960년대에도 그런 배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앞서 잠깐 보신 영화 '서울의 지붕 밑'에서 주연을 맡은 김승호입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마부'를 비롯해 김승호는 숱한 영화를 통해 1960년대를 살아가는 서민의 얼굴을 탁월하게 연기했습니다.

이번 주 한국영화 걸작선에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한 편인 '서울의 지붕 밑'을 소개해드립니다.

지금 함께 만나보시죠.

서울의 지붕 위에 아침 해가 솟으면 오늘도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가 어깨를 겨누고 사는 이 골목 안에 서울의 희한한 꿈과 사랑과 웃음과 눈물이 살아서 숨결 짓는다.

주요 캐릭터를 일일이 소개하면서 영화 '서울의 지붕 밑'은 유쾌한 느낌으로 시작됩니다.

-김학규: 여보! 아니 당신은 왜 매일같이 남의 들창을 건너다봐?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이자 한의사이며, 동시에 장성한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는 한 집안의 가장 김학규가 소개됩니다.

-김학규: 얘, 그 발을 내려!

김학규에게는 한의원을 나눠 각각 사주 궁합을 보는 박주사와 복덕방을 하는 노몽현이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김학규: 아, 더워라. 날씨 덥다.

-박주사: 아, 이 삼복중에 더운 게 그렇게 희한한 일인가?

-김학규: 하도 손님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박주사: 손님은 왜 더위 탓인가? 운수소관이지.

-김학규: 이 녀석아, 그게 어찌 운수소관이야. 저놈의 최가 놈 때문이지. 내가 30년 동안 닦아온 터 자리를 저놈한테 빼앗겼단 말이지.

김학규는 바로 앞집에 개업한 양의사 최두열이 눈엣가시입니다.

게다가 호시탐탐 자신의 맏딸에게 추파를 던지는 거 같으니, 곱게 보일 리가 만무죠.

이윽고, 김학규는 불법 낙태 수술 혐의로 최두열을 경찰에 고발까지 하는데요.

하지만 그의 시기 어린 시도는 불발에 그치고 맙니다.

-최두열: 아유, 김 선생이시군요.

이거 참 귀한 손님이 웬일입니까?

-경찰: 아, 이 영감이 하도 허풍을 떨기에 왔었습니다. 영감, 다시 또 허위 고발을 했다간 그땐 영감을 묶어가겠소.

이렇게 김학규는 단단히 체면을 구기고 말죠.

대학을 졸업하고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한 아들 현구는 가족들 몰래 사귀던 동네 아가씨 점례가 임신하는 바람에 전전긍긍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학규는 현구에게 따로 혼처를 마련해주려는 중이죠.

-현구: 아버지, 돈 지금 주세요.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시간이 없어요.

-김학규: 얘, 너 오늘 그 색시 봤지? 어떻더냐? -현구: 좋더군요.

-김학규 처: 그럼 그리로 정혼하랴? -현구: 우선 취직을 해야죠.

약속한 사람을 만나야겠어요.

그런데, 딸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점례 어머니가 부리나케 이 집에 찾아 옵니다.

-점례 모: 당신 자제님이 내 딸을 버려 놨단 말이요.

-김학규: 뭐?

-점례 모: 그래, 멀쩡한 처녀 계집애를 아기까지 배게 해놓고서. 뭐? 오늘 선들을 보고 왔다고요?

이 사건으로 집안은 발칵 뒤집힙니다.

-김학규: 너 하필이면 술장수 딸을 건드려서 애비 얼굴에 똥칠을 하니?

-현구: 아니, 그 무슨 큰일이라고 이렇게 떠드세요? -김학규: 뭐?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어?

-현구: 아, 결혼해서 그 아이 낳고 살면 될 거 아니에요.

-김학규: 뭐? 그렇다고 술장수 딸과 결혼을 해? 결혼을 해?

-현구: 술장수 딸이면 어때요? 사람만 착실하고 서로 사랑하면 됐지. 결혼 못 할 게 뭐 있어요?

난 약방 집 아들 아니에요. 약방 집 아들이 뭐 그렇게 굉장한 거예요?

영화는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있는데요.

영화 초반의 내레이션이 말했듯,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가 갈등하는 1960년대 초의 상황을 가족 드라마의 틀로 상징하고 있죠.

전통 가옥과 양옥이 공존하는 거리 풍경, 한의사와 양의사가 옥신각신하는 상황도 그런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편, 김학규로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딸 현옥 역시 아버지 몰래 앞집 의사 최두열과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김학규: 야, 현옥아. 아니 여기는 여편네들 머리 지지러 오는 집인데 웬 남자 손님이냐?

-최두열: 안녕하십니까? -현옥: 아버지, 최 박사님께서 이 화분을 가져왔어요.

최두열에 대한 감정이 영 좋지 않은 김학규가 만약 이 둘의 관계를 알게 되면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떨어지겠죠.

영화 '서울의 지붕 밑'은 이 밖에도 김학규와 그의 친구들이 펼치는 에피소드를 통해 익살스러운 웃음을 제공하는데요.

김승호와 함께 호흡을 맞춘 허장강과 김희갑 역시 당대 최고의 배우들로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점례 어머니를 연기한 황정순, 점례 역의 도금봉, 현옥 역의 최은희 등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총출동해 풋풋한 서민 드라마를 합작하고 있죠.

그 모든 기라성 같은 배우들 가운데서도 주연을 맡은 김승호는, 문어체 대사가 주를 이루던 당대 영화의 분위기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개성 넘치는 대사체를 과시합니다.

그렇게 1960년대 서민의 표상이었던 배우 김승호는 안타깝게도 1968년, 50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배우 김승호의 저력을 증명하는 영화 '서울의 지붕 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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