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아픔 속 꽃핀 인연들

한국전쟁 아픔 속 꽃핀 인연들

2017.07.23. 오전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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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용사였던 빅터 데이 씨는 60여 년 전 봄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지난 1951년 4월 경기도 가평, 서울로 가는 길목에서 맞닥뜨린 중공군.

호주군이 속한 영연방 27여단은 다섯 배나 많은 중공군을 맞아 사흘 동안 백병전을 벌였습니다.

치열한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한국전 3년 동안 숨진 호주군 가운데 10분의 1은 이 전투에서 희생됐습니다.

[빅터 앨버트 데이 / 한국전 참전 용사 :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최선을 다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함께한 가평과 호주의 특별한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년 멜버른에 설립하기로 한 한국전 참전비를 가평 바위로 만드는 겁니다.

한국전 참전 기념비는 멜버른에는 처음입니다.

가평의 풀 한 포기, 조약돌 하나까지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는 참전용사들의 바람이 반영됐습니다.

[김성기 / 가평 군수 : 이분들이 고귀한 생명을 다해서 우리나라를 지켜줬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분들이 더 오래오래 사실 수 있도록 기원을 하는 바입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쌓은 전우애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를 잃은 아픔을 서로 위로하며 우정을 나눈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 1951년, 호주 여성 델마 힐리 씨는 한국전에 참전한 아들 빈센트를 잃었습니다.

아들의 마지막 쉼터는 연고도 없던 부산의 한 자락 땅.

힐리 씨는 아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뱃삯을 모아 부산행 여객선 삼등칸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 가슴 절절한 사연은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김창근 여사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가족을 잃은 아픔에 공감한 김 씨는 힐리 여사를 대신해 빈센트 병장의 무덤을 평생 돌보기로 합니다.

[그레이스 김 / 고 김창근 여사 손녀 : 친애하는 힐리 여사에게. 나는 당신의 아들과 같은 젊은이들의 희생에 대해 가슴 깊이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빈센트의 생일과 전사일을 나에게 알려주세요. 엄마인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의 묘지에 꽃다발을 둘게요.]

한국전쟁으로 맺어진 두 가족의 인연이 최근 조명받고 있습니다.

부산 여정을 담은 힐리 여사의 일기장을 지난해 그 손녀가 책으로 엮었는데, 사연에 감동한 시드니 한국문화원이 최근 전시회를 마련했습니다.

[안신영 / 시드니 한국문화원 원장 : 호주 군인의 희생도 일단 너무 안타까웠고 엄마의 절절한 사랑도 그랬고 김창근 여사라는 한국전쟁 미망인과의 특별한 우정도 놀라웠고요.]

[루이스 에반스 / '부산으로 가는 길' 저자 : 제 할머니, 제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서 이번 전시회를 보는 것이 자랑스럽고도 감격스럽습니다. 한국과 호주는 좋은 친구이고, 한국인과 호주인도 실로 좋은 친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공교롭게도 고 김창근 여사의 손녀 그레이스 씨도 현재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습니다.

전쟁의 아픔 속에서 피어난 우정은 이제 손녀들에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시회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8월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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