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벙커의 화려한 변신

스위스 벙커의 화려한 변신

2016.03.05. 오후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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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유럽 곳곳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사용된 낡은 군사시설이 방치되고 있는 사례가 많은데요, 최근 스위스에서는 이 중 하나인 벙커를 매입해 농업과 관광 등에 사용하려는 열기가 뜨겁다고 합니다.

버려진 벙커의 화려한 변신, 스위스 주봉희 리포터가 전해 드립니다.

[기자]
알프스에서 가장 웅장한 경관을 자랑하는 고타르트 고개, 이곳을 넘어가는 길목에 버려진 낡은 벙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계 1, 2차 대전을 치른 유럽에서는 버려진 벙커는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물입니다.

하지만 벙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뜻밖에도 실내에서는 버섯 농사가 한창입니다.

지난 2013년 국방부로부터 이 벙커를 매입한 알렉스 루시 씨는 이곳에서 매년 25톤의 표고버섯을 수확하고 있습니다.

[알렉스 루시 / 버섯 농장주 :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중에 산의 기후를 이용해 버섯 재배를 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습니다.]

작전을 짜던 회의실과 군용 공기 정화기 등, 옛 군사시설의 흔적만 없다면 이곳은 어느 현대식 시설물 못지않은 최적의 버섯 재배 작업장입니다.

동굴처럼 산 깊숙이 자리 잡은 벙커가 별도의 냉난방시스템 없이도 버섯 생육에 맞는 최적의 환경을 유지하기 때문인데요, 덕분에 버섯 재배에 드는 비용을 낮출 수 있어 해마다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알렉스 루시 / 버섯 농장주 : 산의 지열에 영향을 받아 벙커가 실내 온도를 15도로 유지합니다. 버섯 재배에 필요한 13도를 유지하면서 냉난방 시설 비용을 확 줄여 경제적입니다.]

현재 스위스 전역에 남겨진 벙커는 약 8천여 개, 세계 1, 2차 대전과냉전시대 동안 지어진 벙커들이 유럽 내 전쟁이 종식되면서 방치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군사시설로써 수명을 다한 벙커를 새로운 시설로 개조하는 아이디어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요, 호화로운 레스토랑과 호텔로 탈바꿈한 벙커에서 군용 보안 시스템을 장착한 금고로 변신한 벙커까지, 새로운 사업 장소로 다양하게 개조된 벙커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벙커를 매입하려는 사람들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미카엘 슈타우퍼 / 스위스 국방부 관계자 : 처음에 벙커 재활용에 대한 문의가 조금씩 오다가 이제는 해마다 수백 명이 연락해 옵니다. 문제는 대부분 벙커의 위치와 상태가 민간인이 활용하기에 허가가 날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데 있죠..]

대부분의 벙커들은 너무 낡아 개조하기 어렵거나 건축법상 민간사업에 쓰기 어려운 상태이다 보니 벙커 인수 경쟁이 만만치 않습니다.

알렉스 루시 씨 역시 무려 3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 벙커를 인수할 수 있었는데요, 벙커에서 버섯 재배가 성공하면 주 정부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다고 설득해 간신히 인수했다고 합니다.

[알렉스 루시 / 버섯 농장주 : 제가 살고 있는 시청과 함께 주 정부를 3년 동안 설득했습니다. 면담은 물론이고 편지까지 쓰면서 계속 설득했어요 3년 간의 노력 끝에 겨우 벙커를 매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게 지난 2013년입니다.]

스위스 사람들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기지로 떠오른 벙커, 한정된 벙커를 차지하기 위한 소리 없는 전투는 당분간 계속될 거 같습니다.

스위스, 에어스트펠트에서 YTN 월드 주봉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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