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시간제 일자리'

일과 삶의 균형…'시간제 일자리'

2014.04.04. 오후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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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정부가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취업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1980년대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한 네덜란드의 경우는 고용률을 높이고 경제 성장도 이룬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네덜란드 장혜경 리포터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장혜경 리포터!

한국에는 일반화 돼 있지 않아서 '시간제 일자리'가 좀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 겁니까?

[기자]

'시간제'로 일하는 암스테르담 붸머붸럴드 초등학교 교사 레이첼 씨를 제가 얼마 전 만나고 왔습니다.

레이첼 씨는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3일만 학교에 출근을 하고 있었는데요.

학교 근무 시간은 주당 16시간 입니다.

출근하는 날은 보통 오전에 두 딸의 등교 준비를 돕고 학교에 보낸 뒤 자신이 일하는 학교로 향합니다.

일하지 않는 평일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애완동물을 기르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 여유있는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레이첼 씨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주 5일 동안 출근하던 전일제 근로자였는데요.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남편의 권유로 시간제 근로를 택했다고 합니다.

[인터뷰:레이첼 반 다우븐, 시간제 초등학교 교사]
"만약 전일제 근무를 했다면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일을 제대로 못했을 것입니다. 집도 금방 더러워 질 것이고, 애완동물도 키우기 힘들죠.하지만 시간제 근무를 하기 때문에 학교 일과 집안 일 모두를 잘 할 수 있게 됐어요."

[앵커]

일하는 여성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네요.

그런데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들도 임금이나 각종 사회보장 면에서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나요?

[기자]

네덜란드에서는 시간제와 전일제 근로자가 동일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급여는 일한 시간만큼 가져가고요.

각종 보험 혜택이나 수당 등 그리고 근로 조건도 전일제 근로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근로 시간은 일주일에 15시간에서 30시간 이하로 정해져 있고 휴가는 근무 시간에 비례해 보장받고 있습니다.

또 본인이 원할 경우 언제든 시간제에서 전일제로, 또 전일제에서 시간제로의 전환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최저 임금은 우리 돈으로 약 만 삼천 원 정도인데요.

시간제 근로로 30년 이상 일한 뒤 퇴직하면 65세부터 최소 150만 원의 연금을 받게 됩니다.

[앵커]

시간제 근로가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인데 네덜란드에서는 취지에 맞게 정착돼 있네요.

이 제도가 뿌리내리게 된 사회적 배경은 어떤 건가요?

[기자]

지난 1980년대 초반 네덜란드는 높은 실업률과 낮은 고용률로 경제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시기에 네덜란드 노조와 기업,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나온 것이 '바세나르 협약'인데요.

노동계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경영계는 노동시간 단축과 시간제 일자리 보장을, 정부는 시간제 근로자 지원 확대를 약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뒤 1996년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실효성있게 정착된 것이죠.

지난 2012년 기준으로 네덜란드 전체 근로자 가운데 38%가 시간제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간제 일자리가 정착한 데는 회사에서의 관계를 '상하'가 아니라 '수평'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업들 역시 일하는 사람이 만족스럽고 행복해야 생산성도 높아진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헤르브란트 히린크, 전일제 근로자]
"바쁠 때는 오히려 어디서 일할 지 스스로 정할 수 있어요. 출퇴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컴퓨터만 있으면 일할 수 있죠. 일의 성과만 내면 되거든요."

[앵커]

일하는 사람의 만족을 중시하는 사회 풍토가 참 인상적입니다.

시간제 일자리 도입 이후 노동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났습니까?

[기자]

지난 1980년대 초 50%를 조금 웃돌던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시간제 일자리 도입 이후 껑충 뛰었습니다.

1994년 64%, 지난 2011년에는 75%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출산과 육아로 고민하던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졌는데요.

네덜란드 여성 취업자 가운데 시간제 근로자 비중은 60%로 한국보다 4배 이상 높습니다.

또 중·장년층 은퇴자들도 재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습니다.

장시간 일하기 힘든 노인들도 '베이비 시터' 등 시간제 일자리를 택해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앵커]

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시간제 일자리 93만 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요.

한국에서 시간제 일자리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기자]

네덜란드의 사례를 보면 시간제 일자리가 성공한 비결은 '고용 안정'과 '차별 철폐'에 있었다고 봅니다.

본인이 원하는 만큼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법과 제도로 동등하게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하고요.

이를 위해서는 시간제 근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존중하며 대화와 타협을 이어가는 겁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노·사·정 대화가 사회적 권위를 갖고있고, 논의 결과가 각종 정책에 반영되는데요.

이렇게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 부족할 경우 시간제 근로는 일자리를 쪼개 고용률 수치만 높이는 데 그칠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리머 크라머, 교직원 노동조합 위원]
"시간제 일자리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전일제 근로자와 동등한 근로법이 적용돼야 합니다. 일자리를 나누는 차원에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시간제 근로는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불러오는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앵커]

지난해 연말 중단됐던 노사정 대화가 지난달 국회에서 재개됐습니다.

시간제 일자리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진지한 논의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장혜경 리포터,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지금까지 네덜란드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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