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팝니다"…'동네 책방' 생존비결 [정지윤, 파리 리포터]

"문화를 팝니다"…'동네 책방' 생존비결 [정지윤, 파리 리포터]

2013.11.16. 오전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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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동네 어귀에서 마주치던 작은 책방들이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췄죠.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그늘 아래 지난 10년 동안 문을 닫은 중소형 서점이 1,700곳이 넘는데요.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이 작은 공간에 여전히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동네 책방의 생존 비결, 정지윤 리포터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정지윤 리포터!

프랑스에도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 서점들이 있을텐데요.

현지의 소규모 서점들은 이런 대형 업체의 저가 공세에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나요?

[기자]

프랑스에도 물론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서점이 있지만 소규모 책방이 받는 영향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프랑스 도서 시장에서도 온라인 매출 비중이 최근 몇 년새 크게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전체 매출의 17% 수준에 머물고 있어 40%대인 한국과는 차이가 큽니다.

한국의 소규모 서점 수는 지난 2000년 3천 4백여 개에서 지난해 절반 수준인 천 7백여 개로 크게 줄었는데요.

프랑스의 경우는 큰 변동 없이 지난 몇 년새 2천 5백여 곳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앵커]

소비자들이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 몰리는 이유가 싼 가격 그리고 무료 배송 같은 각종 서비스 때문일텐데요.

프랑스의 대형 업체들도 이런 영업 방식을 도입하고 있나요?

[기자]

프랑스 정부는 지난 1981년 당시 문화부장관이었던 자르 랑이 중심이 돼 과도한 도서 할인을 막는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새로 나온 책의 할인율을 최대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인데요.

싼 가격과 무료 배송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 때문에 소형 서점이 밀려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서점의 규모에 관계없이 '가격 경쟁'이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프랑스 의회는 온라인 서점의 무료 배송 서비스가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며 이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만장 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인터뷰:프랑수와 므나르, 동네 책방 손님]
"인터넷에는 서점에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책의 질감이나 색감, 책과의 거리, 서점 안에서의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어요. 이런 점이 서점을 찾는 이유죠."

[인터뷰:아네트 모지에, 동네 책방 손님]
"저는 서점 주인이 책 추천해주는 것을 좋아해요. 서점 주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생각을 교환할 수도 있거든요."

[앵커]

제도를 통해 가격 경쟁이 과열되는 것을 막고 있는 거군요.

그렇다면 서비스로 대형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프랑스의 동네 책방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기자]

프랑스의 동네 책방들은 이른바 그 지역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 서점에서는 신간도서가 나오면 저자를 초청해 독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는가 하면 독서 모임과 글쓰기 강연 등을 열고 있고요.

특정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는 전문 서점들도 도서 시장에 튼튼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고서적만 전문으로 팔거나, 예술 관련 책만 들여놓는 등 차별화 전략으로 고객을 불러모으는 것이죠.

또 작은 책방들은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러 들르거나 주민들이 얼굴을 마주하는 지역 공동체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자비에 카포다노, 동네 책방 주인]
"도시와 도시개발 관련 책을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정기적으로 토론회도 열고 있어요. 한 달에 3회 정도 도시와 도시개발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 지는 10년쯤 됐습니다."

[앵커]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중소 서점을 지원하는 제도도 있다면서요?

어떤 면에서 혜택을 주는 건가요?

[기자]

프랑스 정부는 경영이 어려워진 동네 책방에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등 문을 닫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만약 주인이 바뀌더라도 그 자리에서 계속 서점을 운영할도록 권장하는데요.

새로운 주인이 동네 책방을 인수할 경우 서점 내부 공사 비용을 지원해주거나 처음 3개월 동안은 월세를 내지 않도록 하는 등의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또 '우수 서점 인증제도'를 통해 서비스 질이 높고 책 재고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면 세금을 감면해 주기도 합니다.

이런 제도적 지원 뿐 아니라 동네 책방 주인들도 상생을 위한 교류에 적극적인데요.

중소 서점 전용 사이트를 만들어 손님이 찾는 책이 없을 경우 재고가 있는 다른 서점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앵커]

한국이었다면 업체 간의 자율 경쟁에 정부가 개입하는 부분을 놓고 논란이 일 법도 한데요.

프랑스 정부는 왜 중소 서점을 지원하고 있는 건가요?

[기자]

도서 가격 경쟁을 제한한 1981년 제정 법률에서 프랑스 정부는 그 취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서 정가제는 '국민에게 문화 평등의 기회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프랑스에서는 책을 단순히 상품이 아닌 문화 자체로 생각하는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죠.

또 문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도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당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문화와 예술, 교육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양한 관련 지원책들도 잇따라 내놨습니다.

[인터뷰:레니 오프티, 프랑스 서점 조합원]
"도서 정가제는 서점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 출판업계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큰 서점과 작은 서점 등 서점 규모와는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으로 유통 환경은 크게 변했는데요.

크고 편리한 것만 쫓아서는 알 수 없는, 생활 가까이 숨쉬는 문화의 가치를 프랑스 사람들은 지켜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지윤 리포터! 오늘 소식 감사합니다.

[기자]

지금까지 파리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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