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법제화 12년...네덜란드의 오늘

'존엄사' 법제화 12년...네덜란드의 오늘

2013.03.17. 오전 07:47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멘트]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 대해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

국내에서는 존엄사 관련 첫 판결이 나온 지난 2004년 이후 생명이냐, 선택이냐를 놓고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습니다.

12년 전 세계 최초로 존엄사를 법제화한 네덜란드는 어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런 결과를 이끌어 냈을까요?

잠시 후 네덜란드 리포터와 얘기나눠 보기로 하고, 먼저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를 둘러싼 논의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천 4년, 이른바 '보라매 병원 사건'이 존엄사와 관련한 첫 판결입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뗀 의사와 그 요청을 한 환자의 부인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5년이 지나 존엄사를 인정한 첫 재판 결과가 나옵니다.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환자 가족과 중단할 수 없다는 병원 측의 법적 분쟁에서 대법원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지난해 연말 논란을 거듭해 온 존엄사 법제화 논의를 본격적으로 재개했습니다.

말기 환자가 의사의 설명을 듣고 존엄사 여부를 직접 결정해 문서로 남기는 이른바 '사전의료의향서'가 전제돼야 한다는 데까지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위원회는 오는 5월쯤 논의를 마무리하고 권고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네덜란드 연결해 보겠습니다.

네덜란드도 세계 최초로 존엄사를 법제화 하기 전까지 찬반 양론이 거셌을텐데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결론에 이른겁니까?

[리포트]

지난 2천 2년 법 제정 이전에도 네덜란드에서는 존엄사가 불법적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살인죄로 기소될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강력한 처벌을 받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지난 70년대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사회운동이 시작됐기 때문인데요.

4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정부와 전문가, 국민들은 존엄사 인정 여부를 놓고 무수한 토론과 법적 검증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인식의 차이를 좁혀간 결과 지난 2천 2년 4월 존엄사 법안이 세계 최초로 시행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질문]

네덜란드에서 한 해 존엄사를 선택하는 말기 환자 수는 얼마나 되나요?

[답변]

지난 2010년 통계를 보면 전체 사망자 약 14만 명 가운데 2.3%인 3천 백여 명이 존엄사를 선택했습니다.

법제화 이후 이 비율은 매년 대체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런 삶 대신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한 말기 환자들은 담담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미국 CBS 기자 출신인 폐기종 말기 환자의 말을 들어보시죠.

[인터뷰:딕 반 덴 브링크, 존엄사 결정 말기 환자]
"담당 의사와 많은 상의 끝에 날짜를 정했어요. 제 생일로 만 63세가 되는 생일에 생을 마감할 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잠들게 될 겁니다."

[인터뷰:디아나 반 에크, 브링크 씨 동거인]
"나는 그가 외롭게 병마와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그래서 딕이 존엄사를 선택한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질문]

존엄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 풍조가 나타날 것을 우려하곤 합니다.

네덜란드는 제도 시행 이후 부작용이 없었나요?

[답변]

네덜란드는 공적 의료보험제도가 잘 돼 있어서 중증 질환자들의 경우 병원비 부담이 전혀 없고요.

연금 제도도 세계적으로 최상위 수준이기 때문에 생활고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존엄사는 엄격한 조건을 충족시킨 경우에 국한됩니다.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고 주치의가 아닌 다른 의사를 통해 이 판단에 대해 검증을 받는 등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쉽게 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제도로써 규제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뷰:안드리쓴 가정의학박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구하려고 노력합니다. 도저히 생명을 연장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조차 '그래, 그렇게 하자'라고 쉽게 판단할 수 없지요."

[질문]

'의사 표명이 불가능한 환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 역시 존엄사를 둘러싼 쟁점인데요.

네덜란드에서는 가족의 의사 표현으로도 존엄사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답변]

의식 불명 환자의 경우 미리 자신이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되면 존엄사를 선택하겠다는 서약서를 남겼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환자의 가족 등 대리인이 대신 존엄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금지돼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개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페트라 드 용, 네덜란드존엄사위원회 대표·의사]
"(존엄사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만 결정될 수 있는 사항입니다. 가족은 (결정 과정에서) 예외입니다. 단지 가족의 극심한 반대로 환자의 결정이 미온적일 경우에는 의사가 상당히 결정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죠."

[질문]

존엄사 뿐 아니라 동성결혼 합법화까지.

다른 나라에는 논쟁적인 문제들이 네덜란드에서 먼저 제기되고 또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배경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인생의 가장 큰 가치는 행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들의 권리나 행복 역시 똑같이 존중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현실을 감추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제도를 통해 문제를 풀자는 실용적인 사고 또한 국민 의식에 깔려있고요.

존엄사의 경우 이전에 불법적으로 시행되면서 발생했던 문제들이 법 제정을 통해 양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결국 정책의 중심이 사람이고,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을 실천하고 있는 나라가 네덜란드인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