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액션] '20년 전 신인왕' 이동국의 응원, "범근이가 타야죠"

[현장 리액션] '20년 전 신인왕' 이동국의 응원, "범근이가 타야죠"

2018.11.05. 오전 05:3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 [현장 리액션] '20년 전 신인왕' 이동국의 응원, "범근이가 타야죠"_이미지
AD
[인터풋볼=전주] 이현호 기자=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20년 전에 왕관(신인왕)을 써본 이동국(39)이 신인 골키퍼 송범근(21)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K리그 영플레이어상(신인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전북 현대의 송범근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1998시즌 K리그 신인왕을 받은 소속팀 선배 이동국은 "(송)범근이가 타야죠"라며 송범근에게 힘을 실었다.

K리그1의 절대 강자 전북 현대는 올 시즌 초반 큰 고민에 빠졌다. 기존 골키퍼들이 연이어 실수를 범하며 허탈한 실점을 내줬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K리그 30경기에 출전했던 홍정남은 올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첫 경기서 실망감을 남겼고, 세컨드 골키퍼 황병근은 지난 3월 인천 원정에서 안타까운 실수를 연발하며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결국 전북은 신인 송범근에게 골키퍼 장갑을 맡겼다. 프로 경험이 없던 송범근 역시 초반에는 큰 신뢰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과 최은성 골키퍼 코치의 지도 아래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마침내 1위 팀 전북의 No.1으로 자리매김했다.

송범근이 지키는 전북의 골문은 단단했다. 현재 전북은 리그 35경기를 치르면서 단 29실점만을 기록 중이다. 최소 실점 1위이며 이 부문 2위 경남(40실점)과의 격차가 매우 크다.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전북은 득실차 +44를 기록하며 완벽에 가까운 공수 밸런스에 힘입어 스플릿 라운드 전에 우승을 확정지었다.

우승팀 전북의 35경기 중 송범근은 27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프로 데뷔시즌에 전체 리그 경기의 77%에 선발로 나선 것이다. 골키퍼로서 매우 드문 케이스다. 이 27경기 중 클린시트(무실점 경기)를 무려 18번이나 달성했다. 골키퍼는 다른 포지션과 달리 공격포인트로 가치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송범근의 이 같은 클린시트 기록은 올 시즌 활약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다.

시즌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올 시즌 K리그 영플레이어상은 송범근이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4일 열린 울산과의 K리그1 35라운드에 앞서 "신인이 우승팀 주전 골키퍼를 하고 있는데..."라면서 "영플레이어상은 당연히 송범근이 받아야 한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최 감독은 "전북이 조기 우승하는데 송범근의 역할이 컸다. 많은 이들이 '전북은 골키퍼가 약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범근이가 일대일도 잘 막고, 그런 선방 덕분에 무실점 경기가 많았다"며 송범근의 영플레이어상 수상을 적극 어필했다.

경기 종료 후 송범근 본인도 조심스럽게 수상 욕심을 드러냈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송범근은 "신인으로서 첫 시즌에 18경기 무실점을 기록 중이다. 수상 욕심이 있다"면서 "솔직히 서운하다. 골을 먹으면 '골키퍼 탓'을 하지만, 무실점을 하면 골키퍼를 칭찬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전북이 보유한 '국대급' 수비 라인 김민재, 홍정호, 최보경, 이용, 최철순에 비해 자신에 대한 평가는 다소 아쉽다는 하소연이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송범근이 이 같은 말을 할 때, 그의 뒤로 수많은 스타들이 지나갔다. 전북은 이동국, 김신욱, 이용, 김민재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기 때문에 평소 경기를 마치면 취재진들은 이들에게 달려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취재진들은 이동국, 김민재가 아닌 송범근을 붙잡았다.

이 모습이 고참들에게는 신선했을까. 20년 전인 1998시즌 K리그 신인상을 받은 이동국은 송범근의 인터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걸어왔다. 그러더니 194cm 장신 송범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우리 범근이가 (영플레이어상) 타야죠"라는 말과 함께 취재진들의 눈을 마주봤다. 그의 눈빛에서 '내 새끼 잘 부탁드립니다'의 메시지가 느껴졌다.

바로 직전 시즌 영플레이어상을 받은 김민재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송범근이 취재진에 둘러싸인 걸 의미심장한 미소로 바라보며 그의 뒤를 천천히 지나갔다. 평소 장난기가 많은 김민재의 성격으로 볼 때 '어쭈 많이 컸네'라는 흐뭇한 눈빛이었다. 이동국, 김민재 외에도 여러 스타 선수들이 송범근의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처럼 송범근은 소속팀 감독과 선배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중 가장 큰 산은 팬들의 여론이다. 송범근은 지난여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의 골키퍼로 출전해 인지도를 높였다.

와일드카드로 발탁된 조현우(대구FC)와 번갈아가며 한국의 골문을 지켰지만, 송범근은 인도네시아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각 2골, 3골씩 실점했다. 조현우의 선방쇼에 비해 송범근의 실점 장면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때의 모습이 팬들에게는 큰 임팩트로 남았다.

하지만, K리그 영플레이어상은 아시안게임과 전혀 관련이 없다. 태극마크를 달고 맹활약을 펼치든, 벤치를 달구든, 오직 K리그에서의 활약도와 존재감만이 개인상에 영향을 준다. 또한, 송범근을 향한 '팀빨'이라는 비판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송범근과 같은 조건에서 전북의 골문을 지켰던 동료 골키퍼들도 전북 수비진의 도움을 받았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반면 송범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소속팀 덕분에 이득을 보는 선수들은 상당히 많다. 현재 K리그1 득점 1위 말컹(26골)은 경쟁자가 없는 경남FC에서 뛰기 때문에 이 같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 통산 501경기에 출전해 215골을 넣은 이동국 역시 전북의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기록이다. 이처럼 모든 선수들은 소속팀의 힘을 받기도 하고, 소속팀에 힘을 주기도 한다.

송범근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앞에는 전현직 국가대표 수비수들이 1차 방어선을 지키지만, 결국 최종 골문은 송범근이 지켰다. 덕분에 전북은 최저실점으로 우승컵을 품었다. 이미 연령별 대표팀과 대학리그에서 잠재성을 보여준 송범근이 1위팀 전북의 '선택'을 우승으로 보답한 것이다.

이제는 송범근의 몫이다. 남아있는 리그 3경기에서 더 빛나는 활약으로 여론을 뒤집어야 하고, K리그 최초로 골키퍼로서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하더라도 그 다음이 더 중요하다. 팬들은 지금보다 더 예리한 시선으로 송범근을 주시할 것이다. 내년에 나설 K리그와 ACL을 비롯해 장차 국가대표팀의 골문까지 노린다면, 송범근은 팬들의 색안경을 직접 벗겨야 한다. 신인 골키퍼 송범근의 당찬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진=윤경식 기자

Copyright ⓒ 인터풋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