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가족에 대한 적나라하고도 세심한 보고서...'세자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낫지 않은 상처가 있다. 잊으려, 덮으려 해도 튀어나와 삶을 어지럽힌다. 그 원인이 가족이라면 어떨까. 영화 '세 자매'(감독 이승원)는 끊어낼 수도, 이어가기도 힘든 가족, 오묘한 그 관계를 적나라하면서도 세심하게 살핀다.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첫째 희숙(김선영). 버릇없는 딸과 가정에 소홀한 남편에 제대로 된 한마디 못하고 괜찮은 척 살아왔는데, 웬걸 암이란다. 신도시 자가 아파트, 잘나가는 교수 남편, 번듯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둘째 미연(문소리)도 속에선 천불이 난다. 독실한 믿음을 가진 성가대 지휘자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던 그는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다.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 셋째 미옥(장윤주)은 술과 함께 하는 하루가 익숙하다.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세상 걱정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꾸 꼬여가는 인생에 좌절하고, 의붓아들과의 관계도 그를 고민하게 한다. 영화는 위태로운 세 자매가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한자리에 모이고, 말할 수 없는 기억의 매듭을 풀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어딘가 어긋난 듯한 세 자매의 모습은 아버지의 가정 폭력과 외도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승원 감독은 "가정 폭력과 외도가 큰 고민 없이 쉬이 소모됐다"라는 점에 아쉬움을 느끼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 단순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 문제를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문제의식은 영화를 날카롭게 관통한다.

영화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는 대물림의 과정을 세 자매의 일상 곳곳에 과감하게 담았다. 동시에 그저 하나의 소재로 단순하게 소비될 문제가 아님을 역설한다. 가족이라는 오묘한 관계에 대한 적나라하고도 섬세한 고찰로 이 메시지는 힘을 얻는다.

깔끔한 선택과 집중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억지스러운 화해, 무조건인 희생이 이 영화에는 없다. 유쾌하지만 때론 불편하게 다가올 정도로 지독하게 현실적인 한 가족의 모습만이 알맹이로 남았다. 마침내 회피하던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세 자매의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이자 새로운 가능성이다.

다만 쉼 없이 몰아치는 전개가 벅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적나라하고 솔직한 묘사가 이어져 관객 역시 감정 소모가 적지 않다. 사이다와는 거리가 먼, 해소되지 않은 갈등은 디렉터스컷을 기대케 하면서도,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이 작품의 신의 한 수는 캐스팅과 배우들의 열연이다. 영화 속 현실이 지독할 정도로 답답하게 느껴지는데 배우들의 힘이 크다.

문소리는 영화와 세 자매의 구심점이다. 미연의 이중적 면모를 탁월하게 소화하며 제 몫을 다하는 것은 물론, 독창적이고 개성 강한 세 자매 속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아우른다. 자신의 연기를 넘어 타인과의 조화를 맞추는 데서 그의 진가를 엿볼 수 있다.

김선영 역시 강렬하다. 실제 남편이자 연기적 동반자인 이승원 감독과 작업한 만큼, 익숙할 법도 한 생활 연기에서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인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진주 엄마를 예상했던 관객이라면 그의 선한 광기에 놀라게 된다. 여기에 실제로도 세 자매의 막내인 장윤주는 탈색에 민낯이라는 과감한 도전은 물론, 위화감 없는 연기로 활력을 더한다.

27일 개봉. 115분. 15세 관람가.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리틀빅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