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학] "전형성 탈피, 필생의 목적"...74세 윤여정의 전성기를 만든 건

[배우학] "전형성 탈피, 필생의 목적"...74세 윤여정의 전성기를 만든 건

2021.01.14. 오전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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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학] "전형성 탈피, 필생의 목적"...74세 윤여정의 전성기를 만든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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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능이 없다. 대신 감독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창의적 배우는 못 되지만 노예 근성은 있는 것 같다. 감독한테 나를 맡기고 '최선을 다하리라'는 마음으로 연기해왔다."

전 세계 영화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할리우드 진출작인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로 미국 각종 시상식에서 연기상 11관왕이라는 역사를 썼다. "그저 최선을 다하리라"고 말하는 대배우의 단단한 소신은 데뷔 55주년을 맞이해 또 한 번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배우학] "전형성 탈피, 필생의 목적"...74세 윤여정의 전성기를 만든 건

12일 배급사 판씨네마에 따르면, 윤여정은 ▲샌디에이고 ▲뮤직시티 ▲디스커싱필름 비평가협회에서 3개의 여우조연상을 연속으로 수상했다.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할머니 순자. 이민 온 딸과 사위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 아칸소에 온 인물로 영화의 가장 도전적인 장면을 이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순자가 어린 손자와 겪어내는 미묘한 일상의 갈등을, 윤여정은 관록 있는 연기로 손에 잡히게 표현해 몰입감을 더한다. 정이삭 감독은 순자에 대해 "겉으로는 고약한 말을 하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할머니"라고 표현하며 "윤여정 배우를 만나 할머니이되 한 인간으로서의 개성과 면모가 뚜렷한 인물로 태어났다"고 극찬했다.

이 작품으로 윤여정은 ▲LA ▲보스턴 ▲노스캐롤라이나 ▲오클라호마 ▲콜럼버스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비평가협회 ▲미국 여성 영화기자협회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까지 미국에서 연기상 11관왕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는 그를 '2020 최고 여배우 13인'에 지목하기도 했다.



[배우학] "전형성 탈피, 필생의 목적"...74세 윤여정의 전성기를 만든 건

윤여정의 이런 행보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오스카 후보로 거론되는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제치고 수상해서다. 윤여정이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된다면 이는 한국 배우 최초의 기록이 된다.

그간 성과는 전형성과는 거리가 먼, 도전적 행보의 결과다. 올해 일흔넷, 데뷔 55주년에 접어든 이 배우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작품의 규모, 배역의 경중에 상관없이 윤여정 만큼 다양한 작품과 배역을 거친 배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라고 그의 독보적 행보를 강조하기도 했다.

필모그래피가 말해준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가 얼굴을 알린 건 드라마 '장희빈'. 희빈 장씨 역할을 탁월하게 소화한 탓에 연기하면서 "돌에 맞은 적이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이후 스크린 데뷔작 '화녀'(감독 김기영)에서는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 역할로 또 한번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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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의 연기는 늘 으레 그럴 것이라는 편견을 깬다. '미나리' 속 순자를 만들어간 과정을 언급하며 그는 말했다. "어떤 역할을 할 때 전형성을 피하려고 한다. 그건 나의 필생의 목적이다." 같은 할머니라도 그가 하면 다르다. 공원에서 성매매하는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영화 '죽여주는 여자') 정많고 눈물 많은 제주도 해녀(영화 '계춘할망') 청부살인 집단의 대모(영화 '푸른 소금') 까지. 작품 안에서 그는 전형성을 깨고 반전을 준다. 기분 좋은 충격이다.

그 바탕에 살신성인이 있다. 윤여정과 함께 작업한 창작자 역시 입을 모아 말한다.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은 "시나리오를 다듬을 때 윤여정을 비롯한 한국 배우와 스태프가 매일 밤 숙소에서 회의했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대사로 다듬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라고 했다. 일흔이 넘는 나이, 영화를 위해 에어컨도 나오지 않은 방에서 동료 배우들과 합숙하며 촬영 기간을 견딜 정도로 그의 치열함은 남달랐다.

예능으로 대중과 만난 '윤식당'과 '윤스테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팔자에도 없는 밥장사를 하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레시피 공부, 재료 준비, 요리, 손님 응대와 반응 살피기까지 전 영역에서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던 그다. '윤식당' 당시 나영석 PD는 "장사가 안되면 좀 쉬며 놀 것 같은 풍경을 상상했는데 예상과 너무 달랐다"며 윤식당의 성공 요인으로 윤여정의 살신성인을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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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솔직하면서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입담에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광한다. 작품의 관전 포인트를 묻는 말에 "보시는 분들 마음대로 보면 된다"라고 재치있게 응수하는가 하면,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당시 "이병헌, 박정민이 너무 연기를 잘한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 그것밖에 못했더라. 제일 못 했다"라는 대배우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그 누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재능이 없다. 대신 감독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창의적인 배우는 못 되는 거 같다. 노예근성은 있는 것 같다. 연극영화과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니까 감독한테 나를 맡기고 '최선을 다하리라'는 마음으로 연기해왔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당시 인터뷰에서 윤여정만의 소신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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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의 글로벌한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다. '미나리'에 이어 애플TV의 한국 진출 첫 작품인 드라마 '파친코'에도 출연한다. 이 작품은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공개된다. 올해 '헤븐: 행복의 나라로'와 '미나리'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살신성인을 바탕으로 한 전형성 탈피.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사로잡은 윤여정의 비결인 셈이다. 오는 3월 예정된 오스카상 후보 발표에서 그가 쓸 또다른 역사에 기대감이 적지 않은 이유다.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판시네마, 후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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