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메이커] 배우→감독...정진영 "모난 돌 원했다, 관습·규칙 버려"

[Y메이커] 배우→감독...정진영 "모난 돌 원했다, 관습·규칙 버려"

2020.06.17.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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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 배우→감독...정진영 "모난 돌 원했다, 관습·규칙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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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는 신뢰와 정통의 보도 전문 채널 YTN의 차별화된 엔터뉴스 YTN STAR가 연재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메이커스를 취재한 인터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이때 창의적인 콘텐츠의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요를 창출하는 메이커스의 활약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주인공은 [기묘한 영화] 메이커, 감독으로 변신한 정진영입니다.

◇33년 차 배우의 도전

"모든 사람이 사는 게 다 영화 같아요. 별별 일이 다 생기죠. 인생이라는 게 묘하잖아요. 큰 결정이 예상하지 못한 계기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있어요."

베테랑 배우에서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신인 감독으로. 정진영은 자신의 상황을 별별 일이 다 생기는 인생에 비유했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은 '왕의 남자'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택시운전사'까지 4편의 천만영화부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풀잎들' 등 다양성영화를 비롯해 드라마, 연극까지 전방위적 활약을 펼쳐온 연기 경력 33년 차 배우 정진영이 오랜 기간 꿈꿔왔던 영화감독에 도전한 작품이다.

"개봉을 앞두고 초긴장 상태에요. 언론시사회 이후 온도 차가 있는 것 같은데, 감독님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창동 감독님은 본인의 말에 엄정한데, 굉장히 칭찬해줬더라고요. 기분 좋아서 맥주 한잔했습니다. 이창동 감독님이 '초록물고기'를 할 때 연출부 막내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교류가 많지는 않았거든요. 영화계에서만큼은 '그래도 정진영 헛짓거리지 안 했다'라는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것 같아서 긴장이 살짝 풀어졌어요."

[Y메이커] 배우→감독...정진영 "모난 돌 원했다, 관습·규칙 버려"

이창동 감독은 '사라진 시간'에 대해 "아주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정진영이 이렇게 놀라운 이야기꾼인 줄 처음 알았다"라고 호평했다. 이준익 감독은 "이런 영화적 체험은 해본 적 없을 것"이라고 김은희 작가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장재현 감독은 "몽롱한 꿈을 꾸고 난 듯한 기분이 드는 묘한 영화"라고 극찬했다.

◇"관습에 사로잡히지 말자"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뭐지?'라는 질문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나와 타인이 바라보고 규정하는 나. 그 속의 갈등을 생각했어요. 약한 인간의 슬픔과 외로움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영화는 장르를 규정지을 수 없다. 기존에 봐왔던 영화적 문법에서 벗어났다. 정진영 감독은 신인 감독의 패기로 낯설지만, 새롭고도 기묘한 영화의 탄생을 알렸다.

"'사라진 시간' 전에 썼던 시나리오가 있는데, 끝나고 깜짝 놀랐어요. 굉장히 관습적이더라고요. 저는 저 자신을 관습적이지 않은 걸 추구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영화를 다시 구상하면서는 관습이나 기존의 규칙은 전혀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죠. 관습을 버리는 게 아니라 검열당하지 말자. 장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시작부터 이상한 길로 가요. 이야기가 가다가 팍 튀고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가죠. 충무로 선수들에게 시나리오를 안 보여줬거든요. 여러 조언을 받을 텐데, 솔깃할 것 같아서였죠. 그러기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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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시스템을 벗어나"

17살 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정진용은 57살 때 그 꿈을 이루게 됐다. 정 감독은 4년 전부터 '사라진 시간'을 준비했다. 각본부터, 캐스팅, 후반 작업 등 첫 연출작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어릴 때 꿈을 꼭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연출부 막내를 하긴 했지만, 대부분을 배우로 살았거든요. 연기하면서 감독은 내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어마어마한 자본이 들고 책임도 져야 하거든요. 한 5년 전에 '화려한 유혹'이라는 드라마를 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해 제 아들이 고3이 됐는데, 다 키웠더라고요. 저한테 중요했던 가장으로서의 책무 이외의 것을 생각해보니 저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더라고요. 예술가는 창조를 위해 도전하고 외로움을 돌파해야 하는데, 어느새 저는 안전한 시스템 안에 들어갔더라고요. 대단한 스타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일을 해왔죠.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싶었고, 독립영화 등 작은 영화를 시작했죠."

그런 작업을 하던 와중 정진영은 한 독립영화 촬영을 일주일 앞두고 촬영이 무산됐다는 제작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간에 스케줄이 비면서 그는 "내가 써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연출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라면서 "만약 그때 스케줄이 펑크 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안 왔을 수도 있다"라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렇게 2017년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했다. 2018년 10월부터 촬영을 했고, 드디어 개봉까지 왔다.

[Y메이커] 배우→감독...정진영 "모난 돌 원했다, 관습·규칙 버려"

◇"조진웅, 용기를 줬다"

정진영은 '사라진 시간'을 독립영화로 제작하려고 했다. "황당하고 이상한 이야기"라서 상업적 승산이 없다고 봤다. 후배 제작자에게 폐 끼치지 않고 직접 책임지려고 했다. 그래서 영화사도 차렸다. 다니필름이 그것으로 정 감독이 대표이자 직원으로 있다. 그는 "적금한 2억 원으로 제작하려고 했다"라면서 그렇지 않았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무에게도 피드백을 받지 않았다. 규칙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모난 돌을 하고 싶었는데 (고쳐서)둥그런 돌이 된다면 그건 제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초고를 쓰자마자 (조)진웅이한테 보냈어요. 가뜩이나 조진웅을 원하는 영화도 많고, 조건이 열악해서 보낼까 말까 했는데, 안 주면 후회할 것 같았죠. '빨리 주고 빨리 거절당하자' 그게 진짜 제 마음이었어요. 매니지먼트를 통해서 보내야 했는데 급하니까 일단 보냈죠. 그런데 다음날 하겠다고 사무실에 왔더라고요. 제가 '선배라고 해서 억지로 하는 것 아니냐'라고 물었더니 '그런 식으로 일은 하지 않는다'라고 하더라고요. 초고를 막 끝낸 상황에서 주연한테 의견을 묻고 고치기도 해요. 그런데 진웅이가 저한테 '왜 고쳐요. 제건 토씨 하나 고치지 마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위안이 됐어요. 낯설고 이상한 작업을 하고 있고, 어떻게 보일까 걱정했는데 주연배우가 용기를 줬죠."

[Y메이커] 배우→감독...정진영 "모난 돌 원했다, 관습·규칙 버려"

조진웅 캐스팅 이후 제작자까지 순조롭게 찾았다. '대장 김창수' 뒤풀이에서 조진웅이 '사라진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지금의 제작사인 BA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가 그의 사무실을 찾아 책을 읽은 뒤 "제작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 정진영은 "후배들한테 폐 끼치기 싫다" "돈 벌려고 그런 거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장 대표는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다"라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실 전 제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훨씬 안정성 있게 하게 됐죠. 다만 몇 가지 제한을 뒀어요. 예산을 얼마 이상 올리지 말자고 했습니다. 예산이 커지면 애초에 하려던 것을 할 수 없는 이야기거든요. 그게 가능했던 건 조진웅을 비롯한 배우들이 차비만 받고 촬영을 했기 때문입니다. 배우들도, 후반 작업팀도 다들 시나리오를 좋아해 줬어요. 다들 믿고 도와줬는데, 영화에 대한 평가도 좋아야 해서 더욱 긴장되네요."

◇감독으로 해야 할 역할

정진영은 첫 연출에 대해 "처음이다 보니까 굉장히 긴장됐는데, 즐거웠다. 일은 힘든데, 너무너무 행복했다"라고 웃었다.

"배우한테는 감성이 중요하고 연출자에게 이성이 중요해요. 배우와 감독은 연주자와 지휘자의 관계 같더라고요. 배우는 예민해요. 감정으로 줄거리를 운반하는데, 저는 배우들을 믿어요. 그들은 그냥 현장에 오지 않거든요. 감정을 준비해서 와요. 다른 감정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틀린 감정은 아니에요.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가장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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