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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 "데뷔 46주년, 내 인생이 '아모르파티'더라"
Posted : 2020-06-11 09:30
 김연자 "데뷔 46주년, 내 인생이 '아모르파티'더라"
[Y메이커]는 신뢰와 정통의 보도 전문 채널 YTN의 차별화된 엔터뉴스 YTN STAR가 연재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메이커스를 취재한 인터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이때 창의적인 콘텐츠의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요를 창출하는 메이커스의 활약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주인공은 [트로트 신드롬] 메이커, 가수 김연자 입니다.

"46년을 돌아보니 내 인생이 '아모르파티'에요. 살아오면서 좋은 일만 있지 않았거든. 무너질 듯 슬픈 일도 많았는데 돌아보니 다 지금의 김연자를 위해 존재했던 것 같아요. 결국 찬란하게 꽃 피웠으니까. 이것 참, 우리 트로트와도 비슷하지 않아?(웃음)"

그의 트로트는 우리네 인생사와 닮았다. "간절히 원할 때는 더디고 마음을 비우니까 어느새 눈처럼 녹아들잖아"('블링블링')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아모르 파티') '척'하지 않은 '찐'한 목소리는 하루하루 치여 간과할 법한 인생의 진리를 직관적이고도 살뜰히 노래해 왔다. 쉴 틈 없는 일상에 그의 목소리가 주는 쉼표는 귀하다.

 김연자 "데뷔 46주년, 내 인생이 '아모르파티'더라"

'말해줘요'로 처음 마이크를 잡은 게 1974년, 그의 나이 14살이었다. 1981년 트로트 메들리 앨범 '노래의 꽃다발'로 스타덤에 올랐고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노래가 한국을 넘어 이웃 나라까지 강타했다. 그 계기로 일본에 진출해 국민 가수로 발돋움했다. 일본은 물론 쿠바, 브라질 등 세계 무대에서도 환영받았다. 특히 파리에선 한국 가수 최초로 단독 콘서트를 펼치며 한류 열풍의 초석을 다졌다.

그런 그에게 한국에 부는 트로트 붐은 더욱 각별할 듯싶었다. 마포구 상암동에서 최근 만난 김연자는 "정말 좋다. 솔직히 이 어려운 노래를 '단순하다' '간단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너무 아쉬웠다"라며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갖고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변주해온 덕분이다. 신드롬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히 지속했으면 좋겠다"라고 환하게 웃었다.

 김연자 "데뷔 46주년, 내 인생이 '아모르파티'더라"

◇ "가장 좋아하는 노래 '아모르파티', 원제목은 '연자쏭'이에요"
2013년에 발표한 ‘아모르파티'는 기념비적 곡이다. 중장년의 전유물었던 트로트가 EDM과 만나 젊은 층까지 품었다. "역주행한 노래잖아요. 아픈 손가락이었던 동생, 자식이 다시 사랑받는 듯한 느낌이랄까요?(웃음)" '내 나이가 어때서' '수은등' 등 무수한 히트곡을 보유한 그가 가장 애정하는 노래기도 하다.

‘아모르파티’는 '보고싶다' '애인있어요'의 작곡가 윤일상이 멜로디를 만들고 '합정역 5번 출구'의 작사가 이건우가 가사를 썼다. "윤일상 작곡가가 대단한 게 내 노래를 다 듣고 'EDM이 없네' 하더라고." 희로애락을 담은 가사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나이는 숫자, 마음은 진짜"라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일은 물론 슬픈 일도 많았거든요. 돌아보니 다 지금의 김연자를 위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전까지는 사랑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내 인생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죠. 그래서 원래 곡명이 '연자쏭'이었어요. 근데 우리 사장님이 너무 촌스럽다고 해서 '아모르파티'로 바꿨다니까.(웃음) 평생의 명곡을 만났지."

그에게 이 곡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노래를 부르면 그 순간만이라도 잊을 수 있잖아요. 여러분이 부르시면 여러분의 노래가 되는 거예요." 김연자가 말하는 '아모르파티'는 부르는 사람의 인생이다.

"'아모르파티' 부를 때는 저조차 감정을 하나도 안 넣어요. 그 노래 자체가 제 인생이고 부르는 사람들의 인생이거든. 그래서 사랑을 받는 거죠. '블링 블링'도 마찬가지예요. 이건우 선생님이 '인생찬가'라면서 이 두 곡을 줬어요. 자꾸 그쪽으로 몰고 가는데 난 좋아요. 하하."

 김연자 "데뷔 46주년, 내 인생이 '아모르파티'더라"

◇ "남자친구 덕에 슬럼프 극복, 곧 결혼 해야죠"
트로트와 함께 반백 년을 달려오며 부침도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 정상 가도를 달렸지만 이혼 후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고국에서는 바닥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주저앉지 않았던 건 결국 "좋은 사람" 덕분이었다.

"인생에서 힘들 때마다 좋은 사람, 인생의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아요. 일본에서 고생할 때 미야코 하루미라는 분을 만났고 그분이 준 곡으로 김연자라는 이름을 처음 알렸죠. 마찬가지로 20여 년 활동하고 귀국 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지금 소속사 대표가 길잡이를 해줬죠."

김연자는 현 소속사 대표인 남자친구와 7년째 공개 연애 중이다. "든든한 사람이에요. 서로가 첫눈에 반했죠." 그는 "인생에 찬스가 3번 온다고 하지 않나. 마지막이 이분인 것 같다"며 "곧 결혼해야죠"라고 수줍게 말했다.

"(남자친구와는)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에요. 제가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났죠. 같은 노래 학원에서 연습했거든요. 이후 각자 생활을 하면서 지내다 2008년에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만났어요. '인연이라면 만난다'라는 말이 맞아요. 배려심 깊고 든든하고 늘 고마운 사람이죠. 2019년 가을 이후에 뭔가 결정을 내야 한다고 말했었잖아요. 하도 사람들이 이야기해서 조만간 결혼해야죠."

 김연자 "데뷔 46주년, 내 인생이 '아모르파티'더라"

◇ "46년 이끈 건 8할이 도전"
올해로 데뷔 46주년. 그에게 원동력을 묻자 "도전"이라는 짧고 굵은 대답이 나왔다.

"가수 인생에서 8할은 새로움에 대한 시도였죠. 사실 '아모르파티' 받았을 때 패닉 그 자체였어요. 해보고 안 되면 그때 '죄송합니다' 하지, 해보지도 않고 물러서는 건 아니에요. '블링블링' 전에 곡이 하나 더 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더라고요. 그 곡은 가녹음까지 했는데 결국 못 냈어요. 그래도 시도하는 게 중요해요. 제게 도전이 없다면 가수 하지 말아야죠."

해외 공연에서 노래를 부를 때 현지어를 고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프랑스 공연에선 불어로, 베트남 공연에선 베트남어로 노래를 부른다. "선생님께 배워요. 포르투갈어는 아무리 배워도 정말 안되더라고." "대충하면 대충 나온다"는 야무진 뚝심이 지금의 김연자를 만들었다.

"노래를 소홀히 하면 저 자신이 피곤하다는 걸 알아서 그래요. 자신감은 연습한 만큼 나오거든. 대충하면 대충밖에 안 나와요. 음이 하나만 이상해도 귀에 거슬리거든요. 그래서 소홀히 못 하죠.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트롯신'들은 다들 마찬가지일걸?"

50주년을 바라보는 그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뭘까. 김연자는 "30대 때 필요한 게 뭔가 생각했는데, 다 이뤘더라고"라며 웃었다. 그저 즐기면서 노래하는 게 그가 말하는 '블링블링'한 인생이다.

"14살에 노래를 시작했어요. 빨리 시작한 만큼 빨리 꿈을 이뤘죠. 30대 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인데, 앞으로 좋아하는 노래 열심히 즐기면서 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쁨받으며 그렇게 행복하게요. 그게 '블링블링'한 인생이지!"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김연자 소속사,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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