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키디비 "블랙넛 소송 2년, 힘들었지만…피해 묵인 안된다 생각"(인터뷰①)

단독키디비 "블랙넛 소송 2년, 힘들었지만…피해 묵인 안된다 생각"(인터뷰①)

2020.01.04.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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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키디비 "블랙넛 소송 2년, 힘들었지만…피해 묵인 안된다 생각"(인터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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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래퍼가 앨범 수록곡 가사를 통해 B래퍼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콘서트에서는 B래퍼의 이름을 언급하며 성적 모욕감을 주는 퍼포먼스를 4차례 펼쳤다. 자제해달라는 B래퍼의 요청에도 A래퍼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모욕죄로 고소 당해 2년간의 재판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가 래퍼 키디비가 블랙넛을 고소한 형사사건의 개요다. A래퍼는 블랙넛, B래퍼는 키디비다. 블랙넛은 1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여 사건은 대법원까지 넘어갔다. 그리고 지난 12일 블랙넛에게 징역형 집행유예가 최종 확정됐다.

2017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꼬박 32개월이 걸렸다. Mnet '언프리티랩스타2'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주목받는 래퍼로 떠올랐던 키디비는 이 사건으로 심적 고통을 받으며 원치 않는 긴 공백기를 보냈다. 준우승 이후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었던 시점에 찾아온 공백기라 아쉬운 점도 있지만, 연예인들이 성희롱이나 명예훼손 등 많은 범죄의 표적이 되는 시기에 문화예술인으로서 보호받아야 하는 권리를 주장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도 1심에서는 키디비가 전부 승소했지만 블랙넛의 항소로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했던 형사소송이 마무리가 됐기에 키디비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테지만, 키디비는 그동안 법률대리인을 통해 소송 진행 상황만을 밝혔을 뿐 소송이 끝날 때까지 언론에 심경을 밝히는 것을 자제해왔다.

이 사건을 꾸준히 취재해온 YTN Star는 지난달 27일 오후 키디비를 직접 만났다. 형사소송이 마무리됐기에, 또 다친 마음을 다잡고 힘든 시간을 이겨내려 노력해왔기에, 이날 만난 그는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인터뷰 중간 가끔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지만, 아픔에서 많이 벗어난 모습이었다.

특히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한층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힘들었던 시간, 고마웠던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시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다시 왕성한 음악 활동을 재개하고 팬들과 마주할 날을 기다린다는 그는 그 누구보다 2020년이 기대되는 천상 뮤지션이었다.

그날의 인터뷰를 최대한 가감없이 공개한다.

[단독]키디비 "블랙넛 소송 2년, 힘들었지만…피해 묵인 안된다 생각"(인터뷰①)

◆ 2017년 5월ㅣ멈추지 않는 성적 모욕, 소송을 결심하다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이 소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법적 공방이 진행되는 동안 원치 않게 자신의 이름이 계속 기사에 오르내릴 수 있고, 소송이 길어진다면 길어지는 대로 활동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친분이 있지도 않은 이가 자신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가사를 쓰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행위를 좌시할 수 없었다. 회사 차원에서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 보루가 소송이었다. 2017년 5월 키디비는 블랙넛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YTN Star: 처음 소송을 제기했던 게 벌써 2년 전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키디비: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엔 솔직히 많이 힘들어서 음악 작업에도 집중을 잘 못하고, 저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최근에 소송이 끝나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감사한 분들을 많이 만나고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지면서 지낸 것 같아요.

YTN Star: 2017년에 제기한 소송이 최근에서야 끝났어요.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예상했었나요?

키디비: 상대방이 무죄를 주장하고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면서 시간이 길어져 많이 힘들었어요. 무죄를 주장하면서 저를 명백하게 지칭한게 아니었다, 하등의 욕설조차 없어 경멸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 가사가 노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서 죄가 아니다.. 예전에 '래뻐카'라는 프로그램에서 왜 괜찮다고 했냐며.. 그때 괜찮다고 했으니 그 이후 것도 죄가 아니라는 식으로 주장하더라구요. 전 괜찮다고 한 적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처음부터 강경하게 대응해야겠다는 것을 느꼈어요. 어찌됐든 상대방의 성적으로 모욕하는 가사, 성적인 퍼포먼스가 명백하였지만 항소와 상고가 계속되어 너무 길어져 많이 지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1심에서 선고되었던 판결이 확정됐어요. 항소와 상고를 거쳐서 달라진 게 없지만 마음의 짐을 안고, 계속 불안한 상태였죠. 형사소송이 끝나고 조금씩 예전 생활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YTN Star: 고소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키디비: 처음에 일단 기분이 많이 나빴죠. 저를 언급하면서 성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가사를 썼는데 이게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일인가 싶었어요. 사람들이 다 웃고 넘어가니까 저도 넘어가야 되나 싶기도 했지만 그다음에 또 저를 언급하고 그러는 걸 보니까 가만히 있다가는 죽을 때까지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피해를 묵인하면서 계속 당하는 거잖아요. 지금은 사회적으로 악플에도 강경하게 대응하고 많은 용기를 내는 시기지만 2017년 5월에는 도리어 제게 손가락질을 하던 시기였어요. 법률대리인이신 변호사님, 그 로펌 분들에게 커다란 도움과 많은 용기를 받았어요.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선생님들께도 많은 도움과 용기를 받았어요. 감사한 분들이 계셔서 견딜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저도 많은 활동을 통해 이렇게 받은 감사함을 타인에게 전하고 싶어요. 다행히도 2년 전보다 사회적으로도 문화예술인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갖춰져서, 앞으로는 더 많은 일에 큰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YTN Star: 1차 고소 이후에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총 4차례 진행된 공연 퍼포먼스에 대해 추가 고소를 했어요.

키디비: 네 1차 고소를 진행하며 알게 됐어요. 그분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관심도 없거든요. 저를 약자로 생각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잘못 선택한 거죠. 저는 분명 잘못된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큰 용기를 냈습니다.

YTN Star: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키디비: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훈련을 많이 했어요. 당연히 죄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판결이) 뒤집히면 어떡하지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까 계속 불안하더라고요. 억울한 면이 크니까 더 세게 내려졌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성희롱으로 인정이 돼서 그 행위가 성범죄라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성적 모욕’으로 명시가 되어 성범죄가 인정은 되었지만 성폭력법에 이런 행위를 강하게 처벌하는 내용이 없어 한편으론 아쉽기도 했어요.

[단독]키디비 "블랙넛 소송 2년, 힘들었지만…피해 묵인 안된다 생각"(인터뷰①)

◆ 2018년ㅣ소송 중반, 대인기피증·불안증 시달리기까지

상대 측이 항소를 거듭하면서 재판은 길어졌다. 길어지는 시간만큼 마음은 약해지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키디비는 2018년을 가장 힘들었던 '암흑기'로 기억한다. 음악 작업도 힘들었고, 사람들을 만나러 집 밖을 나가는 평범한 일상도 힘든 일이 돼버렸다.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불안증과 대인기피증도 심해졌다. 그렇게 2년 정도를 버텼다. 그 기간 동안 힘이 된 건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문득 그들의 존재를 깨닫고 힘을 냈다. 팬들이 보낸 DM도 많은 응원이 됐다고 말했다.


YTN Star: 1심, 2심, 3심을 거치면서 소송이 길어졌어요.

키디비: 소송 초반에 힘들었어요. 사실관계가 왜곡돼 허위사실로 악플도 많이 달렸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힘들어졌어요. 특히 작년엔 제일 많이 힘들었어요. 깊은 수렁에 계속 빠져있었죠.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힘도 없고, 그런 나 자신이 싫어서 극단적인 생각도 계속 들었어요. 영화와 책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 시기엔 볼 수가 없었어요. 뭘 봐도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이 됐으니까요. 2년 정도를 그렇게 지냈던 것 같아요.

YTN Star: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나요?

키디비: 생각의 회로를 돌리면 그 끝이 계속 극단적인 선택에 도달하는 것 같아서 아예 생각을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은 폐인처럼 지냈어요. 집 안에 틀어박혀 며칠 동안 누워만 있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어요. 다행히도 제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어요. 불안증, 대인기피증이 와서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고, 상태가 나빴을 때 일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때 친구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한 명도 돌아서지 않고 저를 기다려줬어요. 제 상태가 좋아지고 나니까 그제서야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위험하단 생각이 들어 약을 점차 줄였어요. 고마운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진짜 잘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앞으로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됐고요.

YTN Star: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키디비: 사실 완전히 회복됐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제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많이 바꾸면서 좋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원래 성향이 사람들에게 밝고 좋은 기운을 주면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더 노력하는 것도 있고요. 몇 년 만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음악도 듣지 않았는데 다시 음악을 듣게 됐고, 음악이 다시 좋아졌거든요.

YTN Star: 힘들었을 때 가장 응원이 됐던 메시지가 있나요?

키디비: 쉬는 동안 DM 받고 운 적이 몇 번 있어요. 제일 크게 기억에 남았던 메시지는 '누나, 앨범 안 내도 되고 활동 안 내도 되니까 행복하게만 있어요'란 메시지였어요. 사실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는 게 큰 부담이 됐었는데, 행복하게만 있어달라는 말이 너무 고맙고 감동적이었어요. 이렇게 좋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데 정말 열심히 살자고 마음을 다잡았죠.

YTN Star: 블랙넛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후 취재진에게 "힙합 음악 하는 분들이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수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키디비: 제가 힙합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사소하고 예쁜 마음을 가사로 푸는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일부 하드코어 한 랩을 하는 경우 거친 표현이나 사회를 비판하는 가사를 쓰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만만해 보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성적으로 모욕하는 거잖아요. 만약 표현의 자유라고 해서 내가 길을 가다가 누군가를 찔러놓고 '나는 표현한 건데?'라고 말하면 해결되는 문제인가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힙합에서 표현이 거칠거나 과격할 수 있어도 싫다는 사람 붙잡아놓고 수차례 성범죄를 저지르는 반인륜적인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독]키디비 "소송 끝나면 제일 하고 싶었던 것? 음악…단콘이 꿈"(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

YTN Star 강내리 기자 (nrk@ytnplus.co.kr)
[사진 = YTN Star 이준혁 PD (xellos9541@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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