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장혁 "종전에 없던 감성적 이방원, 창작하는 즐거움 컸다"

[Y터뷰] 장혁 "종전에 없던 감성적 이방원, 창작하는 즐거움 컸다"

2019.11.30.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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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장혁 "종전에 없던 감성적 이방원, 창작하는 즐거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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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태종 이방원'하면 이 배우의 얼굴이 떠오를 거 같다.

사극이 사랑하는 캐릭터 '이방원 클럽'에 배우 장혁(44)의 이름이 뜨겁게 새겨졌다. 수 많은 배우들이 이방원을 거쳐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장혁은 시청자의 뇌리에 또 한 번 이방원의 이름을 아로 새길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 조선 개국을 위해 힘 썼지만, 개국 공신록에서 이름이 빠지고 세자의 자리도 받지 못한 채 이성계(김영철 분)에게 버림 받은 이방원. 장혁은 욕망에 사로잡힌 ‘피의 군주’ 외적인 모습보다, 버려지고 버림 받은 자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기 위한 인간적인 내면을 가진 이방원만을 시청자들에게 각인 시키며 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이방원을 만날 수 있게 했다.

특히 장혁의 이방원 연기는 전작 속 자신이 연기한 이방원과 해석을 또 달리 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영화 '순수의 시대'에 이어 JTBC 드라마 '나의 나라'를 통해 또 한 번 이방원 역할을 맡았는데, 극 안에서 자신은 물론 전 작품의 그림자까지 모조리 지우는 열연을 선보였다.

모든 것을 쏟아 낸 듯한 연기를 펼친 그는 쉴 틈도 없이 바로 차기작 '보이는대로 말하라' 현장으로 넘어 간다. 쉬지 않고 연기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매 작품 '인생 캐릭터'라는 호평을 얻을 정도로 늘 발전하고 있는 장혁. "촬영 현장 가는 게 곧 재충전의 시간"이라며 웃는, 천생 연기자다.

[Y터뷰] 장혁 "종전에 없던 감성적 이방원, 창작하는 즐거움 컸다"

-'나의 나라'를 마친 소감은?
배우들에게 참 많이 할애해 준 작품이다. 그만큼 즐거웠고, 여러가지 감정이 든다. 올해 대부분 드라마가 사건이 중심이었다. 그러다 보면 배우에게 주어진 컷이 툭툭 지나가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루즈 할 정도로 많이 시간을 줬다. 그러다 보니까 여유를 가지고 펼칠 수 있었고, 감정의 밀도감을 더 깊이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하다.

-밀도 높은 감정을 가지고 다다른 엔딩신. 마침내 옥좌에 앉았을 때 만감이 교차했겠다.
그 결말을 향해 달려갔다. '나의 나라' 처음 제안 받았을 때, 감독님 말씀이 '이방원의 이야기로 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에 대해 저는 '이전에 알려진 야망과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이방원보다는 감성적인 이방원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에 옥좌에 앉았을 때 애처로워 보이는 이방원이었으면 좋겠다. 그것만 그려 질 수 있다면 하겠다'고 답을 했다. 감독님이 마지막에 약속을 지켜주셨다. 옥좌를 향해 가는 걸음에서 다른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면류관을 적장의 머리처럼 툭 던지고 '나는 너(옥좌)한테 제압 당하지 않는다. 단지 제압해서 앉을 뿐이다'라는 입장으로 다가갔는데, 막상 앉은 뒤에는 옥좌에 잡혀 버리는 거다. 그런 아이러니를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다.

-감성적인 이방원을 어떤 식으로 구축했나?
어떤 자세, 시선 처리, 인물과 거리감. 대본이 직접적이지만 행간의 여백이 많다. 명확해 보이는 대사 이면에 복합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서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아버지 이성계가 동생 방석을 옥좌에 앉힐 빌미를 쭉 읊을 때, 그 전에 방석을 귀엽게 바라보던 방원의 눈빛의 변화라든가. 그때 대사는 “이제 만족하십니까”지만 마음으로는 아버지가 이제 약해졌다는 안타까움과 방석을 죽일 수밖에 없다는 슬픔과 이로 인한 원망 등까지 생각하며 연기를 해야 하는 거다.

-요즘 사극 트렌드와는 달리, 오랜만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순수의 시대'에서 이방원을 처음 접했다. 역사 교과서에는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조선 왕조 실록이나 야사 등을 찾아보면서 시각이나 해석이 많더라. '순수의 시대'는 1차 왕자의 난을 다뤘지만 결국 사랑 얘기를 하고 있다. 그 배경 안에서는 이방원이란 인물의 각도가 그렇게 넓어질 수 없었고, 그에 대한 갈증이 있던 차에 '나의 나라를' 만나게 됐다. 트렌드를 따르느냐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내가 이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까', '다른 캐릭터들과 어떻게 부딪힐 수 있을까'를 봤다.

-감정적, 체력적으로 소모도 컸을 듯 한데.
힘든 것보다 창작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모든 캐릭터를 연기 하면서 그랬다. 단지 아는 만큼밖에 나를 못 던지니까, 나이가 조금 들면서 느끼는 건 '아, 내가 아직 많이 모르는구나'다.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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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와 배우의 창작 사이 균형점은 어떻게 찾았나.
그건 연출의 몫이다. 배우는 연출이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면 그 안에서 창조하는 거다. 사실 이방원은 안 죽잖나. 역사적으로 세종이 승계를 하는 건 알려져 있다. 근데 연기자에게는 '승계했다'라는 사실보다, '어떻게 승계했나'가 중요한 거 같다. 그 과정이 중요한 거다. '나의 나라' 또한 감독님이 그런 균 형을 잡아 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이방원을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신은?
매 장면이다. 모든 신에서 '여기서 돌까 아니면 저기서 돌까', '대면할까 아님 등질까', '칼을 가지고 갈까 부채를 가져갈까'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계산을 하고 고민하며 연기 했다.

-부채를 든 이방원도 새로웠다. 원래 대본에 있는 설정인지?
그냥 어디서 하나 갖고 왔다.(웃음) 부채의 그림은 김규리 씨가 그렸다. 규리 씨가 '미인도' 때부터 계속 민화를 그리고 있는데 '이방원 마음이 연상될 만한 게 있으면 좋겠다. 그림을 그려 줄 수 있나' 부탁했다. 보름달이 있고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을 서정적으로 그려달라 요청했다. 그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소품으로 쓰게 됐다.

-부채를 사용한 장면은 거의 애드리브였다고 볼 수 있나? 마지막엔 부채를 불태웠는데.
그렇다. 마지막에 부채를 태울 때도 '죽여라 모두'라는 대사를 하는데, 마음 속의 모든 것을 접은거다.

-아는 만큼 던진다고 했는데,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있을테다. 함께 호흡한 양세종, 우도환, 설현에게서 어떤 점을 봤나?
양세종은 좋은 사람이다. 퍼 주는 사람이다. 연기에서 내가 퍼주면 상대가 내 걸 채워준다. 그럼 같이 갈 수 있다. 우도환은 선명하다. 스테이플러 같은 느낌이다. 집중해서 생각해 온 걸 탁탁 집는다. 설현은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 설현이 연기한 희재가 능동적이라 매력적이었다. 한 끝 차이다. '내가 널 위해 희생할게'와 '내가 널 지켜줄게'는 같은 맥락이지만 능동성에 차이가 있다. 설현에게 그런 시각을 툭 던졌는데, 뭔가 계속 해보려는 시도가 보이더라.

-후배들과 연기 호흡을 해보니 어땠나. 선배들과는 또 다른 느낌일 듯한데.
후배라고 생각을 안 한다. 그냥 동료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순간은 모든 배우가 프로잖나. 그 상황 안에서 저 사람은 어떻게 해석해 왔을지 굉장히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고. 알고 있는 대사라도 어떤 식으로 칠지 서로 약속한 게 아니니까. 후배들이 공부를 많이 해 와서 저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5대5만이 앙상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을 만들기 위해서 6대4, 7대3도 될 수 있다. 그 반대도 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갈등과 긴장을 주고, 신을 윤활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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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현장의 생동감이 장혁을 쉼 없이 연기하게 만드는 원동력일까?
인생의 반 이상을 현장에 있었던 거 같다. 익숙함도 있지만, 장르적으로도 그렇고 캐릭터도 그렇고 항상 다른 입장으로 현장에 가게 된다. 똑같은 사람들이 가서 다른 사람이 돼 만난다. 현장이 끝난 뒤 사적으로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그게 참 좋더라. 그런 느낌이 계속 현장으로 이끌지 않나 싶다.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만나지 못해 공백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작품을 잘 만나는 거 같다.
제가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그렇다. 하하. 부산에서 올라온 뒤 2~3년을 회사에서 살았다. 맨날 가다 보니 사무실이 편해졌다. 데뷔 때부터 있던 곳이라 다 아는 사람들이고, 자연스럽게 연습 공간도 생겼다. 소속 배우가 나 말고도 많으니까 사무실 가면 얼마나 많은 작품이 있겠나. 그걸 계속 보다 보면 시각이 넓어진다. 또 아무리 바빠도 작품이 들어오면 하루 이틀 안에는 무조건 챙겨 본다.

-열일 하는 만큼 시청자 눈에 익숙해지잖나. 이미지 변신에 대한 고민도 하나.
매번 이미지 변신을 한다고 생각하고 연기 한다. 그때 그때 내가 아는 만큼 던지는 거고,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준으로 던지는 거다. 어떤 작품도 허투루 임한 적은 없다.

-혹시 다른 작품에서 또 이방원 역할이 들어온다면?
아직은 모르겠다. '순수의 시대'를 끝낸 후에는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이젠 이방원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 또 보여 줄 수 있을까 싶어서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왕이 된 후 이방원의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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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연말 계획은?
내년도 작품(OCN 드라마 '본대로 말하라')을 하는 거다.(웃음) 12월 초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여행이나 휴식 등 재충전의 시간은 필요치 않나?
현장 가서 재충전 하려한다. 하하. 색다르잖나, 다른 현장에 가는 거니까. 난 일이 즐겁다. 행복하고 기분 좋은 것만 즐거움은 아니다. 짜증 나고 화나고 답답한 부분도 있지만 현장에 있을 때 내 하루가 굵어지는 느낌이다. 현장에서 때론 벽을 만나면 답답하면서도 그걸 풀어 가는 과정이 즐겁다.

-언제부터 그렇게 현장을 즐길 수 있게 됐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물론 아니다. 벽이 없었으면 하는 시간도 있었고, 부딪히면 아프다는 느낌도 있었다. 복싱을 오래하고 있는데, 때리려면 먼저 맞아봐야 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면 어느 순간 시합조차도 재밌어진다. 연기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나름대로 헤쳐나가면서 재미를 느끼게 된 거 같다.

-차기작에서는 천재 프로파일러 오현재 역할을 맡았다. 어떤 캐릭터가 될지 궁금하다.
'보이스1' 연출한 김홍선 감독이 제안을 주셨다. 대본을 보니, 사건을 풀어 가는 과정도 괜찮고 캐릭터도 재미있었다. 이번 이방원과는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이방원이 호랑이 느낌이라면 오현재는 매같다. 목표를 정하고 빙빙 돌다가 기회를 포착했을 때 활강해서 잡아채는 인물이다.

-요즘 유튜브나 SNS 등 연기 외적으로도 대중과 소통하는 연예인이 늘고 있는데?
저도 SNS는 하고 있지만 적극적이진 않다. 제 나름의 시간은 있어야 될 거 같아서. 보여 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저만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나만의 시간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
회사(소속사)에 출근한다.(웃음) 출근 후에 복식장 가서 연습하고, 집에 가서 애들 보고, 애들 자면 맥주 한 캔 먹으면서 영화 한편 보고, 아침에 막내 데려다 주고. 첫째가 축구를 하는데 시합 있으면 따라다니면서 보고. 그게 일상이다.

-모범적인 아버지의 일상 같다.
모범적인 건 아니다. 하하. 제 아버지가 건설업을 하셔서 어린 시절 해외에 오래 나가 계셨다. 1년에 아버지를 뵙는 시간이 길면 한달이었고, 한국에 오셔서도 지방 현장을 다니시느라 바빴다. 당시 아버지들이 대부분이 그랬다. 아버지의 부재를 느꼈었기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아이들은 조금만 자라면 부모보다 친구가 우선이 되잖나. 그럴 날이 머지 않았기에 지금의 일상이 행복이다.

-아직도 '열정개척 장혁'인가?
'화산고' 촬영 때 현장 의자에 '열정', '정글쥬스' 때 '열정개척'이라고 썼었다.(웃음) 그때 마음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땐 그렇게 표시하고 싶었나보다. 열정 밖에 없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어떻게 앞으로 갈 것이고 뒤에 잘 남길 인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해 던진다'는 마음은 똑같다.

-지금 의자에 문구를 새긴다면 어떤 말을 쓸까?
글쎄... 그냥 '즐겁게', 라고 하고 싶다.

YTN Star 최보란 기자 (ran613@ytnplus.co.kr)
[사진제공 = 싸이더스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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