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수첩] '82년생 김지영',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은 이유

[Y수첩] '82년생 김지영',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은 이유

2019.10.24. 오후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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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수첩] '82년생 김지영',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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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와 논란 속에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 제작 봄바람영화사)이 지난 23일 개봉했다. 개봉과 동시에 13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지만, 영화를 향한 날 선 시선이 여전히 매섭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소설과 영화는 1982년에 태어나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엄마, 그리고 직장 동료인 김지영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로 공감을 안겼다. 소설 속 김지영은 보편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그는 여자라서 겪는,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을 지켜봤고 노출됐다.

꼭 82년생만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자라난 여성이라면 지영이 보고 경험한 일들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이는 소설이 출간 2년 만에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하며 폭발력을 과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 도서'로 낙인찍히며 남녀 갈등의 중심에 섰다. 여성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며 '남성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약으로 이어진 것.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연예인들이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히고 악플이 달리는 기이한 일도 벌어졌다.

[Y수첩] '82년생 김지영',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은 이유

영화는 제작 발표와 함께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는 낮은 평점을 받으며 평점 테러를 당했다. 영화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주연으로 나선 정유미는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개봉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23일 개봉과 동시에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 평점란에는 86년생 남성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이 게재됐다. 50년생, 60년생 여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82년생 여자만 힘들다고 하냐는 의견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는 영화를 잘못 이해하고 해석한 결과다. '82년생 김지영'은 82년생 여자만 괴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젠더 갈등과 무관하게 김지영의 삶을 통한 먹먹한 울림과 함께 위로를 안기기 충분하다.

이현경 영화평론가는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하나의 이야기로 보면 되는데 (어떤 세대의)대표성을 띤 것으로 생각하고 보려고 하니까 오해가 생기고 (남녀간의)대립 구도가 형성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현 상황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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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행복할 때도 있다"던 김지영(정유미)이지만 이내 "어딘가 갇혀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또 그런 자신이 "낙오했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영화는 늘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상황을 넘겼던 김지영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생각을 직접 내뱉으면서 작은 희망을 보여준다. 그 과정서 보편적인 김지영을 위로하고 또 앞으로 나아간다.

무엇보다 남자를 '악역'으로 설정하며 모든 책임을 떠밀지 않는다. 소설 속 말과 행동에 괴리감이 느껴졌던 남편 대현은 영화에서는 진정으로 지영이의 고통을 공감하고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사회 관습이나 시스템을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이는 영화를 보고 나서 판단해도 전혀 늦지 않은 이유다.

[Y수첩] '82년생 김지영',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은 이유

이 평론가는 "페미니즘은 누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여성 문제나 페미니즘이 발전했으니까 이런 논쟁이 나온다는 점에서 크게 보면 긍정적이지만 발전이 필요하다"면서 "누가 희생자고 누가 더 피해를 받고 차별을 받았다는 등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결 구도가 영화의 화제성을 낳긴 하지만 갈등만 불러일으킬 뿐이지 본질적인 문제도 아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전혀 아니다"라면서 "'82년생 김지영'을 하나의 서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대표성을 띠는 것처럼 이야기를 소비하는 태도가 바뀌면 이런 불필요한 논쟁도 수그러들지 않을까 한다"라고 덧붙였다.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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