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 임선애 감독, 노인이자 여성을 위하여 (인터뷰)

'69세' 임선애 감독, 노인이자 여성을 위하여 (인터뷰)

2019.10.16. 오전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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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임선애 감독, 노인이자 여성을 위하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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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전히 연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주변에서 두 배로 축하해줬어요. 결국 해냈다고요. '존버'가 이긴 거죠.(웃음)"

지난 12일 폐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하 부국제)에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되고 KNN관객상을 받은 영화 '69세'(감독 임선애)를 연출한 임선애 감독의 말이다. '69세'는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2002년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2004년('나쁘지 않아')과 2007년('그거에 대하여') 단편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임 감독은 '왕의 남자'(2005) '여자, 정혜'(2005)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4) '남한산성'(2017) '사바하'(2019) 등 상업영화 스토리보드 작가로 더 유명하다.

"23살에 영화를 시작해 이제 42살이 됐다"며 웃은 그는 "천천히, 차근차근 먼 길을 돌아왔다고 얘기하고 있다. 연출하고 싶어서 영화를 했는데, 개미 걸음으로 걸어왔다"라고 미소 지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스크립터로 시작했어요. 일한다는 생각보다 배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것도 재밌고 영화의 한 부분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시나리오 분석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니까 어느 순간 시나리오를 쓰고 싶더라고요. 누가 등 떠민 게 아니라 제 안에서 호기심이 생긴 거예요.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걸로 만족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 연출을 해야겠더라고요."

'육아맘'으로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결혼하고 임신하고 애를 키우면서 포기할 생각도 있었다"던 그지만 그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집중했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69세'가 세상에 나왔다.

'69세' 임선애 감독, 노인이자 여성을 위하여 (인터뷰)

'69세'는 성폭력 문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인 여성의 인권과 우리 사회가 노년의 삶에 갖는 편견과 시선을 다루는 영화다. 간호조무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69세 여성 효정(예수정)이 이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겪는 수모와 아픔이 섬세하지만,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연출로 그려졌다. '69세'는 그간 영화계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 노인의 성범죄에 대한 담론을 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한 달의 촬영 과정을 거쳤던 영화의 시작은 우연히 검색하다가 본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관련 칼럼이었다.

"우리 사회가 노인과 여성을 분리해서 보는데, 그들을 무성적 존재로 보는 편견을 가해자가 이용한다는 내용이었죠. 수치스러워하고 신고를 안 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가해자의 타깃이 된다는 내용을 보고 '악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내용을 몇 번 보다 보니 '나도 예비 피해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부분에서 안전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실은 나이를 떠나서 일어나는 범죄였던 거죠."

이창동 감독의 시나리오 수업을 들을 때 '이야기는 만난다'는 말을 꺼낸 임 감독은 "성폭력이 소재인 영화를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결국 한번은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이 소재를 만났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라며 "노년의 삶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함께 말하고자 했다"라고 강조했다.

"노인 여성의 성폭력에 대한 영화는 많이 없어요. 다만 성폭력 하나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영화에 인간 존엄에 대한 주제 의식이 깔려 있어서 조금 더 넓은 주제의 영화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69세' 임선애 감독, 노인이자 여성을 위하여 (인터뷰)

영화를 함께 본 기주봉은 세 번이나 눈물을 훔쳤다고. 임 감독은 "선생님이 영화 속 주인공의 나이인데, 관객으로 영화를 본 것 같더라"면서 "나이가 든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 몸이 병들고 약하다는 이유로 무시 받는 게 서글프게 다가온 거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임 감독은 특별히 '짝코' '만다라' 등을 쓴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예수정이 "100세 시대에 60대면 할 게 많다. 분리수거하지 말고 노인 스스로 자각했으면 한다"는 말을 극 속에 녹여보라는 송 작가의 말에 임 감독은 젊은 친구의 편견과 편협한 생각으로 가득 찬 대사로 이를 재탄생시켰다. 그는 "송길한 선생님이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많이 해줬다. 나이는 노년이지만 청년 같은 분"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제 첫 작품을 해냈다. 임 감독은 여자 감독으로서 또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 감독으로서 현장을 더욱 누빌 것을 예고했다. "여자 스태프는 현장에 있었지만 저처럼 결혼하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는 스태프는 거의 없었다"라고 돌이킨 그는 "이렇게 버텨야지 저처럼 아이 낳고도 영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부국제, 69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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