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메이커①] 일상으로 시대를 경험...'벌새' 김보라 감독의 장인 정신

[Y메이커①] 일상으로 시대를 경험...'벌새' 김보라 감독의 장인 정신

2019.09.05.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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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①] 일상으로 시대를 경험...'벌새' 김보라 감독의 장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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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는 신뢰와 정통의 보도 전문 채널 YTN의 차별화 된 엔터뉴스 YTN STAR가 연재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메이커스를 취재한 인터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이때 창의적인 콘텐츠의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요를 창출하는 메이커스의 활약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주인공은 [1994년도 은희] 메이커, 영화 '벌새'를 연출한 김보라 감독입니다.


"영화 안에 빛과 어둠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성인인 제가 삶을 긍정하는 시선과 중2 때 굉장히 우울했던 시선이 같이 담겨 있기에 우울하면서도 밝고 희망적이에요. 의도했던 바가 나와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김보라 감독)

1초에 최대 90번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벌새' 속 은희(박지후)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좌절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중2, 은희의 세밀한 감정은 유난히 더웠고,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고,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1994년도의 세계와 만나 거대한 파동을 안긴다. 영화는 은희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을 통해 1994년도의 온기를 담고, 더 나아가 행복하고 좋다가 슬프고 절망적인 '삶 그 자체'를 느끼게 한다.

[Y메이커①] 일상으로 시대를 경험...'벌새' 김보라 감독의 장인 정신

◇ '벌새'가 탄생하기까지

'벌새'는 김보라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으로 시작했다. 그가 동국대학교를 거쳐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영화과 재학 당시였던 2007년도, 2008년도에 유난히 중학교 시절의 꿈을 많이 꿨단다. 어떤 기억들과 트라우마,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됐던 말 등 그 당시 기억의 조각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2012년도 트리트먼트, 2013년도 초고, 2017년도 촬영, 2018년도 편집, 2019년도 개봉까지 이어졌다. "보라는 30대를 '벌새'에 다 바쳤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벌새'를 준비하는 동안 김보라 감독은 시간 강사 일을 했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오자마자 강의를 했다. 수업을 들었던 학생 중에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친구도 있다"면서 "'벌새' 연출부에도 가르쳤던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세밀한 소품부터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과정을 꼼꼼하게 밟아갔는데 굉장히 열심히 함께했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벌새'는 김보라 감독 본인에서 출발하지만, 보편적인 정서와 맞닿는다. 사랑받고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고 본질이 통하는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서사를 건드렸기 때문. 그것을 위해 김 감독은 치밀할 정도로 구체적인 은희의 일상을 직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 몇 년에 걸쳐 수정 작업을 거쳤다. 이는 개인의 서사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공동의 서사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Y메이커①] 일상으로 시대를 경험...'벌새' 김보라 감독의 장인 정신

◇ 장인 정신을 생각하다

"아주 구체적인 개인을 그리고자 결정했어요. 대학원 수업 때 교수님께서 '클리셰를 피하는 방법은 뭘까?'라는 질문을 했는데 '구체적이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전 할머니의 '구술사'를 좋아하는데, 들어보면 내용이 굉장히 구체적이에요. 거기서 오는 고귀함 같은 것들이 있어요. 인간의 원형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거죠.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 안에 독특함과 고결함이 깃들여 있잖아요. '벌새'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원형적 감정을 건드리려고 했어요. 그래서 은희의 일상에 최대한 집중하자고 했죠. 그 구체성이 보편적인 걸 건드릴 거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김보라 감독은 집요했다. 유학 시절 만났던 다국적의 친구들은 물론 60대 교수님에게까지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받으며 그들이 어디서 공감하고 어떤 캐릭터가 불필요한지 수정을 해나가며 데이터를 쌓아갔다. 이 같은 과정을 겪으며 김보라 감독은 '장인 정신'을 생각했다.

"영화판에서 살아남으려면 굉장히 잘해야 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작가로서 저는 장인정신을 중시했어요. 장인을 생각하면 하나의 기술을 연마하면서 집요하게 무언가를 만들잖아요. 그런 면에서 '벌새'는 장인의 마음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남들의 인정보다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Y메이커①] 일상으로 시대를 경험...'벌새' 김보라 감독의 장인 정신

◇ "'벌새'는 한국 사회의 성장 영화”

김보라 감독은 유년 시절을 "삶의 무늬를 생성하는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은희가 자신의 삶에 무늬를 만들어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흔히 '중2병'이라며 중2의 불안한 공포를 희화화해요. 그 시기엔 몸이 변하고 혼란스럽죠. 그 시기의 감정을 제대로 보지 않고 미해결과제로 남기면 평생 가지고 가는 거 같아요. 그때의 절망을 제대로 직면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붙이지 못한 편지가 찾아오는 느낌을 받아요. 촬영을 끝내고 집에서 기진맥진해서 잠을 잤는데 중학교 동창회가 펼쳐졌어요. 친구들이 저를 따뜻하게 맞아줬죠. 중학교 꿈을 꾼 뒤 처음으로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어요. 제 인생의 어떤 '챕터'의 변화가 왔음을 느꼈죠. 그 시절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고 질투나 불안을 느끼죠. 그게 어른이 됐다고 없어지지 않아요. 숨길 수 있을 뿐이죠. 건강해지려면 억눌렀던 감정과 직면하고 내면의 아이를 만나야 해요. '벌새' 작업은 제 유년 시절 미해결 과제를 끝내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은희의 일상은 성수대교 붕괴라는 시대의 아픔과 맞물린다. '벌새'는 "은희의 성장 영화임과 동시에 90년대 한국 사회의 성장 영화"라던 김 감독은 "개인이 집, 학교에서 맺는 관계가 사회의 질서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리 붕괴까지 되는 연관성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다리의 붕괴는 경주마처럼 달리던 한국 사회에 질문하게 된 계기였다. 이후 한국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성찰을 가져왔고 개인도 나라도 조금씩 진보하게 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과거의 잔재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까?'라는 질문들을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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