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메이커] 재난과 코미디의 균형...'엑시트' 감독이 클리셰를 깨는 법

[Y메이커] 재난과 코미디의 균형...'엑시트' 감독이 클리셰를 깨는 법

2019.08.01. 오전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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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 재난과 코미디의 균형...'엑시트' 감독이 클리셰를 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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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는 신뢰와 정통의 보도 전문 채널 YTN의 차별화 된 엔터뉴스 YTN STAR가 연재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메이커스를 취재한 인터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이때 창의적인 콘텐츠의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요를 창출하는 메이커스의 활약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주인공은 [클리셰 깨기] 메이커, '엑시트'를 연출한 이상근 감독입니다.


"오징어도 계속 짜다 보면 물이 나온다고 해요. 절박한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어요. 생존을 위해 인간은 못 할 게 없죠." (이상근 감독)

영화 '엑시트'(감독 이상근, 제작 외유내강/필름케이)가 지난달 31일 개봉해 첫날에만 무려 49만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신파나 민폐 캐릭터가 난무하는 기존 재난극의 클리셰(흔히 쓰이는 소재나 이야기의 흐름)를 깨부수고 유쾌한 재난극을 표방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청춘들이 유독가스라는 재난을 만났다.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이지만 재난 앞에서 무기력하게만 있지는 않다. '무쓸모'로만 여겨졌던 클라이밍 동아리 활동은 생존을 결정짓는 단 하나의 능력이 됐다. 맨손으로 건물 외벽을 오르고 빌딩 숲을 내지르는 이들의 모습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Y메이커] 재난과 코미디의 균형...'엑시트' 감독이 클리셰를 깨는 법

◇ '엑시트'가 탄생하기까지

"재난 영화에서 기대하는 구성이나 캐릭터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것에서 탈피했을 때 걱정도 됐지만, 일반적인 재난 영화의 형식을 가져가고 싶지는 않았죠. 익숙하면서도 뜻밖의 구성이 무엇일지 생각했어요.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다만 재난과 코미디라는 장르가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억지스럽지 않게 밸런스 조절을 열심히 했어요."

'엑시트'는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과 대학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가 원인 모를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심을 탈출해야 하는 비상 상황을 그린 재난탈출액션을 그렸다. 이상근 감독은 2012년 택시를 타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독가스 이야기에서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창작하시는 분들 순간적으로 혹은 작은 일에서 영감을 얻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우연한 기회에 모티브를 얻었어요. 택시에서 라디오를 들었는데 유독가스에 관해 이야기하더라고요. 유독가스가 종류도 무게도 다르고 어떤 건 땅에 깔리는 데 어떤 것은 위로 올라간다고 설명하더라고요. 그때 '만약 유독가스가 밑에 깔렸다면 위에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을 겪을까?' '익숙했던 공간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어떤 재난을 겪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일반적인 재난 상황을 따라기보다 창작자로서 현실 세계를 결부 시켜 이야기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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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유독가스를 앞이 안 보이는 청춘들의 모습으로 표현하며 신선함을 더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 시대 청춘들의 응원도 읽을 수 있다. 이 감독은 "상황에 대한 모티브를 얻고 생각한 키(key)이미지가 있었다"면서 "어렸을 때 쫓아다니던 방역차가 있는데, 주변이 하얗게 변한 상태에서 양복을 입은 젊은이가 방독면을 쓰고 그곳을 뚫고 나오는 이미지가 생각났다. 재난 영화 형식 안에서 논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용남과 의주의 과거 클라이밍 동아리 활동은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이상근 감독은 '쓸모없어 보였던 재주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면' '인정받지 못했던 능력이 사랑하는 이들과 자신을 구할 수 있는 필살기가 될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클라이밍은 자연에서 행하는 스포츠잖아요. 그걸 도심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목적지를 향해서 올라가는 기본적인 행위와 주인공들이 탈출로 향하는 모습도 비슷했죠. 젊은이들의 행동 자체가 어딘가를 향해 올라가고 또 떨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도 비유가 가능해서 클라이밍이 제격이다 싶었죠. 클라이밍 선수 중에서는 이벤트성으로 빌딩을 오르기도 해요. 충분히 빌딩을 오를 수 있어서 영화에 접목했어요."

용남과 의주는 탈출 과정서 쓰레기봉투를 방화복처럼 만들고 아령, 마네킹, 대걸레 자루 등 주변 소품을 활용한다. 옥상에서 핸드폰 불빛과 이동식 노래방 기계의 마이크로 헬기에 구조 신호를 보내는 모습 또한 흥미롭다. 이 감독은 "쓰임새가 정해져 있는 것들이라도 조금만 다르게 사용하면 재밌게 활용할 수 있다"며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면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것도 재밌었다"고 했다.

[Y메이커] 재난과 코미디의 균형...'엑시트' 감독이 클리셰를 깨는 법

◇ 관객들이 용남과 의주를 응원하길

탈출이라는 단순한 전개 속 개연성이 결여된 몇몇 설정들은 영화의 아쉬운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감독은 "불친절하게 보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선택과 집중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뺄 부분은 과감하게 뺐어요. 젊은이들이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하는가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어요. 현실적으로 와 닿지 못하거나 개연성이나 논리성이 부족한 부분은 빠른 리듬의 편집으로 휘몰아쳐서 다른 생각을 못 하게 만들자고 생각했죠.(웃음) 러닝타임도 개봉하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짧게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이들이 용남과 의주를 응원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재난 극복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던 이 감독은 "완벽한 모습의 영웅이라면 캐릭터에 쉽게 몰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타심이 있어도 허술한 지점이 있어야 뜻밖의 재미를 주지 않을까 했다. 그런 캐릭터를 보면서 관객들이 자신도 모르게 응원을 하고 싶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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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의 순간을 잡기까지

1978년생인 이상근 감독은 '엑시트'가 입봉작이다. 성균관대 영상학과에서 만든 단편영화를 교수님이 칭찬해줬다. 이 감독은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편영화를 찍었고 여러 영화의 연출부를 지냈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2012년부터 택시에서 그의 머리를 스쳐간 '엑시트'를 썼다. 이후 과거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형열차를 타라'로 인연을 맺었던 류승완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갔다. 류승완 감독의 제작사인 외유내강과 같이 작업하면서 영화의 외연이 확장됐다. 이 감독은 "마이너한 감정들을 대중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게 도움을 받았다"면서 "외유내강을 만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엄청나게 큰 영화가 됐고 데뷔까지 하게 됐다"고 미소 지었다.

"저한테는 모든 게 다 새로운 경험이에요.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죠. 영화감독을 꿈꿔왔기에 데뷔를 했다는 것 자체에 대한 기분 좋음이 있어요. 또 꾸준하게 노력한 저 자신에 대한 성취감도 생기고요. 다만 이 즐거움에 취하려고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Y메이커] 재난과 코미디의 균형...'엑시트' 감독이 클리셰를 깨는 법

대학생 때 영화감독을 꿈꿨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감독은 "황당할 정도"라고 미소 지었다.

"'인터스텔라'에서 미래의 쿠퍼가 과거의 쿠퍼를 보면서 '안 돼'라고 외치잖아요. 그걸 보는데 저도 그러고 싶더라고요.(웃음) 이 정도로 고난의 과정일지 몰랐어요. 배를 곯는 건 아니었어요. 집에 잘 붙어서 빈대처럼 살았는데 친구들은 뭔가를 이뤄내고 있었죠. 저 혼자 뒤처지는 거 같고 신기루를 쫓는 건 아닐까,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해서 주변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죠."

그런데도 이 감독은 계속해서 이 길을 걸었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만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지하에도 가보고 기어오르기도 했다"면서 "미명이 떠오르길 기다렸지만, 가만히 있다고 찾아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해야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길을 향해 정진해야 비슷해지기라도 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Y메이커] 재난과 코미디의 균형...'엑시트' 감독이 클리셰를 깨는 법

"'되긴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이 저를 버티게 해줬어요. 제가 그 당시 제 마음을 허구로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는데 언젠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면 괴로워지기도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자판을 열심히 두드렸습니다.(웃음)"

차기작은 미정이지만 "오리지널 창작물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고백한 이 감독은 "익숙함 속 전개되는 뜻밖의 상황들을 풀어내고 싶다. 재밌는 작업을 하고 싶다. 무엇보다 영화감독을 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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