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메이커①] "'기생충' 속 박사장집 몇 평?"...미술감독이 답하다

[Y메이커①] "'기생충' 속 박사장집 몇 평?"...미술감독이 답하다

2019.06.16.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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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①] "'기생충' 속 박사장집 몇 평?"...미술감독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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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72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 저보고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집을 골랐냐'고 묻길래 모두 세트라고 답하니 엄청나게 놀라더라고요."(영화 '기생충' 기자회견 중 봉준호 감독)

'기생충'에서 집은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때론 배우들 옆에서 살아 숨 쉬고 유연하게 모습을 바꿔 이들이 미처 채우지 못한 빈틈을 메운다. 덕분에 '기생충'의 이하준 미술감독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허투루 스크린에 내보인 게 없다.

차기작 '서복'(감독 이용주) 촬영으로 지방에 있는 이 감독을 서면으로 만났다. '독전' '관상' '옥자' '뷰티 인사이드' 등 다수 작품의 영화 미술을 도맡으며 관객에게 보는 재미를 안긴 장본인이다. 그가 글을 통해 풀어놓은 이야기는 영화만큼이나 구체적이고 상세했다. 눈앞에서 그리는 듯한 묘사는 세계 밖에 있는 사람들마저 기이하고 정교한 '기생충'의 울타리 안으로 초대하기 충분했다.

[Y메이커①] "'기생충' 속 박사장집 몇 평?"...미술감독이 답하다

◇ "'기생충'은 계단과의 사투였다"
"영화미술 하면서 이렇게 많은 계단을 만들어보긴 처음인 것 같아요.(웃음)"

'기생충'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소품을 꼽자면 단연 계단일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계급 간의 차이는 '계단'이라는 공간을 통해 시각적으로 명확해진다. 봉준호 감독은 촬영 기간 내내 "위에서 아래로 계속 내려가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한다. 미술팀의 목표도 명확했다. 부잣집에서 반지하집, 사이사이를 잇는 서로 다른 크기의 계단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영화를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알아챘겠지만 '기생충'의 계단은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다. 이 감독은 "영화를 자세히 보면 각 공간과 위치에 따라 계단의 높이와 넓이가 조금씩 다르다"며 "부잣집 계단은 우아하게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 있도록 높이가 낮고 넓은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가파르고 높다"고 말했다.

이 밖에 중점을 둔 건 배우들의 동선. '기생충'의 모든 이미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한다. 전작 '설국열차'가 꼬리칸에서 머리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표적으로 부잣집에서 반지하집로 가기 위해 기택네 식구들이 계속 내려갈 때도 그렇고요. 가만보면 동선이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해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닌 게 헌팅부터 카메라 앵글, 그 밖의 상황을 동선에 맞게 설계해야 했죠. 세팅이나 세트를 지을 때조차 이 방향을 염두에 둬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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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장 집 만들며 조경 노하우 어마어마하게 쌓여"
놀랍게도 극 중 박동익(이선균) 사장의 집은 전북 전주에 만든 세트다. 얼마나 정교한지 심사위원장 이냐리투 감독조차 착각하게 했다. 정작 이 감독은 "이 집에서 살라고 하면 못 산다"며 "오로지 촬영을 위한 집"이라고 했다.

"대지 600평 정도에 1층만 200평이거든요. 일단 거실이 무척 커요. 또 공간적으로 중요한 정원이 한눈에 보여야 해 큰 통유리를 만들었습니다. 유리는 카메라 화면 비율에 맞게 또 크기를 맞췄고요."

극 중 "정원이 참 좋네요"라는 기우의 감탄사처럼 정원은 미술팀의 피땀 눈물이 담긴 결과물이다. 미술팀이 박사장 집을 실제 공간이 아닌 세트로 만든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거실의 통유리로 한눈에 볼 수 있기에 나무들의 생김새도 꼼꼼히 살폈다. 한 그루를 심을 때마다 방향을 체크하고. 위치 조정도 필수였다.

"보통 좋은 정원에 가면 비싸고 멋지게 틀어진 소나무가 있기 마련인데 감독님이 싫어했어요.(웃음) 수많은 레퍼런스를 보고 좋은 정원 중 몇 곳은 직접 가보기도 했는데 거기서 오래된 이 향나무를 봤죠. 겸손하면서도 무게 있고 동글동글한 모양이 이 집의 이미지와 참 상반돼 보여 선택했습니다."

작품 속 정원에 비가 세차게 비가 쏟아지는 장면 때문에 배수 공사도 필수였다. 축구장처럼 배수가 잘 될 수 있도록 바닥에 배수관을 깔고 그 위에 잔디를 심었다.

"촬영할 때가 태풍도 오고, 날도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어요. 잔디가 죽으면 또다시 작업하고 힘들게 촬영을 맞췄습니다. 덕분에 공부를 엄청 많이 해서 조경에 대한 노하우가 어마어마하게 쌓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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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 한탄하며 생활했던 반지하 자취방, 기택 집의 모델"
개발 직전의 동네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기택네 반지하촌도 미술팀이 손수 만든 세트다. 일산에 위치한 이 세트의 경우 길이만 50m에 이른다. 무척이나 덥고 습한 날씨 탓에 타일은 붙이면 또 떨어지고 칠은 벗겨져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비 덕분에 이 동네에 세월의 흔적이 덧입혀졌다"며 웃었다.

마치 실제 사람이 사는 것만 같은 디테일의 비법이 뭘까. 미술팀을 이를 위해 건물만 20동, 40가구 가까이 되는 집에 스토리를 만들었다.

"'동네 우유집', '해병대를 나와서 자부심이 엄청난 전파상', '근교에서 떡볶이장사를 하는 집' '동네의 근심을 해결해주는 무당집', '유투브하는 동네 백수집'까지.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연출팀이 인물 설정을 할 때도 도움이 되고. 영화에 네러티브가 많이 생겨서 좋았어요."

하나 더. 변기가 가장 위에 있는 기택네 집 화장실은 실제 이 감독이 살았던 반지하 자취방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나리오도 그랬고 대학 다닐 때 선배와 잠시 머물던 반지하 자취방이 딱 그러했거든요. 그때를 기억하며 구상을 했습니다. 곰팡이 화장실 등등 현실을 한탄하며 생활했던 곳인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제가 그걸 그리고 있더라고요?(웃음)"

비단 시각적인 측면만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인 냄새까지 구현하기 위해 애썼다.

"진짜 냄새나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음식물 쓰레기까지 소품팀이 만들었어요. 실제 촬영 때 파리와 모기가 윙윙거리기도 했죠. 반지하집의 기름때는 가스레인지 주변에서 삼겹살을 구워 만든 결과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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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감독이 꼽은 베스트,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
이 감독이 생각하는 최고의 장면은 뭘까.

"기택네가 부잣집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다가 큰일을 당하고 체육관에 오잖아요. 수많은 인원으로 가득 차 있죠. 거의 모든 것을 모아 놓은 듯한 밀집도와 팽창감을 주려고 소품만 5톤, 트럭 5대가 넘게 촬영장에 왔었어요. 이 장면만 보면 저는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관객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장면을 묻자, 주저 없이 오프닝 장면을 꼽았다. 영화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여섯 번을 듣고 바로 마주할 수 있는 이 장면에선 창문 밖으로 자동차와 동네 주민들도 지나가고 햇살 한 줌이 양말 4쌍이 사이 좋게 걸린 반지하를 비춘다.

"이 장면이 반지하집에서 해가 들어오는 몇 안 되는 장면인데요. 직접 시간을 계산하고 맞춰 찍은 장면이라 더욱더 생생해요. 공기의 질감까지 표현된 장면이라 생각해 정말 좋아합니다. 나중에 비슷한 장면들이 나오지만, 분위기는 완전 다르거든요. 꼭 놓치지 마세요."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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