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고아성이 유관순 이름 지우고 '항거' 시나리오 읽은 이유

[Y터뷰] 고아성이 유관순 이름 지우고 '항거' 시나리오 읽은 이유

2019.02.24.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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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고아성이 유관순 이름 지우고 '항거' 시나리오 읽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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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유관순이 스크린에 살아 돌아온다.

배우 고아성(28)이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조민호 감독, 제작 (주)디씨지플러스 조르바필름, 이하 '항거')를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유관순의 이야기를 전한다.

'항거'는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세평도 안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 속,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역사 속 위인 유관순이 아닌, 17살 소녀 유관순의 심리 변화와 감정을 흑백 화면으로 담백하게 담아냈다.

고아성의 유관순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를 '철의 여인'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의 죽음에 좌절하고, 살고 싶은 마음에 흔들리면서도 일제에 끝까지 항거한 유관순의 모습은 '나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안긴다. 위인의 이야기가 아닌, 후회하느니 실천하겠다 다짐한 소녀의 이야기여서 관객의 공감을 극대화 한다.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유관순을 연기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떨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 시사회와 인터뷰에서 그녀가 흘린 눈물로도 충분히 그 고충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가깝고도 새로운 유관순을 표현해내 고아성.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유관순을 연기했는지 들어봤다.

[Y터뷰] 고아성이 유관순 이름 지우고 '항거' 시나리오 읽은 이유

-유관순이란 인물을 연기한 소감이 어땠나?
매 작품마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정말 많아요. 그래도 이번 영화는 끝났을 때 '무사히 찍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배우들이 한 마음으로 찍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유관순을 모두가 알지만, 가까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잖아요. 저 또한 감히 상상해 보지 못했는데 그런 벽을 넘어서는게 제 임무였고, 그래야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이 쉽진 않았어요.

-그래도 결국 벽을 넘어 섰나?
그 동안 한 번도 감독님들한테 힘들다고 한 적이 없는데요. 이번에는 감독님께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힘들다'고 토로를 했어요. 그때 감독님이 '유관순이 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넘어어섰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때부터 더 촬영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실존인물을 연기한 것은 처음 이었는데, 어떻게 캐릭터에 접근했는지?
맨 처음 작품을 준비할 때 시나리오를 거듭해서 읽는데요. 한 번은 역할 이름 석자를 지우고 읽어 본 적이 있어요. 유관순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부담을 떨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더라고요. 처음 8호실 감옥에 들어갔을 때 낯선 상황에 적응이 채 되기도 전에 많은 일들이 생기잖아요. 오히려 유관순이란 이름을 지우고 보니까 오롯이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됐어요.

-유관순은 어떤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리더'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나리오 앞에 감독님이 짧게 쓰신 서문 같은 게 있는데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주변인들에게 '나 잘하고 있냐'고 많이 묻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리더에 대한 방향성 같은 게 생겼어요. 자기 신념만을 고수하기 보다는, 후회하기도 하고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영화에 담으신거 같아요.

-지금 유관순이 옆에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나?
지금의 한국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해요. 독립 후 100년 후의 현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Y터뷰] 고아성이 유관순 이름 지우고 '항거' 시나리오 읽은 이유

-시사회와 인터뷰 중 눈물을 보였는데.
촬영을 마친지 얼마 안 돼서... 11월 말에 촬영이 끝나거든요. 정말 생생해요. 그래서 제가 연기하면서 짚었던 감정들이 순간 순간 건드려지는거 같아요. 관순은 경성 3.1만세 운동과 4.1 아우내 운동의 끝이 어떤지 알잖아요. 탄압으로 참혹하게 끝이 났을 때 정말 힘들었을거고, 감옥에서 다시 1주년 만세운동을 할 때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다칠 걸 알기에 되게 무거웠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의지가 강하게 표출할지 언정, 속마음은 그랬을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떠올리면 울컥하게 돼요.

-유관순이라는 역할적 부담 뿐 아니라, 극을 이끌어가는 부담도 있었을거 같은데.
오히려 함께 뭉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정체성과 맞다고 생각했고, 혼자 이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어요.

-옥사 세트장은 어떤 느낌이었나?
카메라 세팅이나 조명 등 촬영 여건상 세트를 그렇게까지 좁게 안 만드는데 이번 작품을 고증을 위해 정말 좁게 만들었어요. 흑백일 경우 더 넓게 보일수도 있어서 오히려 실제보다 2~3cm 정도 좁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스태프들이 많이 힘드셨을 거 같아요. 감독님이 동선이나 이런 부분에서도 배려를 많이 해 주셔서 연기할 때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대부분의 장면이 흑백으로 표현됐다.
최종적으로 흑백이었지만 컬러로 완벽히 찍은 상태에서 변환해야 했어요. 그래서 멍분장을 할 때도 실제 파란색을 썼고, 컬러 영화를 찍을 때랑 똑같이 지켰어요. 고문 장면 같은 게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걱정 했는데, 흑백으로 보니까 순화된 느낌이어서 괜찮았어요.

-애드리브가 나온 장면도 있었나?
면회 장면이 생각나는데요. 촬영을 이야기 순서대로 진행해서, 점점 마음이 쌓이면 나중에 좋은 의견이 나올거 같았어요. 감독님이 힌트를 주셨는데 '밖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안에 있는 사람이 되려 말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관순이 밖에 나가면 뭘 할건지부터 사소하게 얘기를 하잖아요. 배우들이 같이 만든 대사였어요.

-밝은 내용은 아닌데, 현장 분위기는?
또래 배우들이 많아 의외로 즐겁고 재미있게 찍었어요. 장난도 많이 치고요. 촬영 전에 감독님과 회의를 과정에서 들었는데, 증언에 의하면 8호실 여성들이 되게 장난이 많았대요. 극 중에서도 서로 많이 의지하고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라며 개굴개굴 소리를 내잖아요. 그런 증언을 바탕으로 대본을 쓰신거 같아요.

[Y터뷰] 고아성이 유관순 이름 지우고 '항거' 시나리오 읽은 이유

-이렇게 많은 여배우들과 호흡은 새로운 경험이었겠다.
처음엔 그런 생각을 못 했는데 '생경스럽지 않아?' 그런 말이 나왔어요. 그러고보니 그렇더라고요. 고교시절 여자반이었는데, 그때 느꼈던 사소한 경험들이 많이 생각 났어요. 단순히 성별을 떠나 많은 공통점을 지닌 그룹에서, 외부의 어떤 자극이 올 때 딱히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공기가 있잖아요. 이번 현장에서도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아요.

-어떤 일에 '항거'했던 경험이 있는지?
꼭 얘기를 해야할 때는 하는 편인데요. 주로 편지를 많이 쓴 거 같아요. (항거의 대상은?) 부모님한테 그런 적도 있고, 선생님한테도 있고요. 하하. 말보다 글로 많이 표현하는 편이에요.

-영화 속 유관순이 '자유'에 대해 말하는데, 고아성이 생각하는 자유?
촬영을 마치고 고흐 전시회에 갔었는데, 고흐도 비슷한 말을 했더라고요. '내가 추구하는 어떤 것을 위해서 내 생명을 다 써도 좋다.' 방금까지 연기했던 인물과 상통하는 면도 있었고, 그게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가 추구하는 것에 다 쏟을 수 있는 것. 제게는 그게 연기인거죠.

-배우로서 지켜나가고 싶은 가치는?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항상 털실 여러 개를 보고 그렸대요. 그림 속 붓의 결 같은데서 특유의 느낌이 있잖아요. 저도 배우로서 그런 기댈 곳을 찾고 싶달까요. 배우로서 나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면 좋을지?
한 인물을 중점적으로 따라가는 영화지만, 결국 8호실 수인들의 이야기가 다 담겨 있는거 같아요. 저 또한 잘 몰랐던 부분이었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알게 됐어요.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의 진심까지 같이 봐셨으면 좋겠어요.

YTN Star 최보란 기자 (ran613@ytnplus.co.kr)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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