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 썰매 金...'아이언맨' 윤성빈

아시아 최초 썰매 金...'아이언맨' 윤성빈

2018.03.07. 오후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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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 썰매 金...'아이언맨' 윤성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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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빈 /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앵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빛난 별 중 한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켈레톤 금메달 리스트 윤성빈 선수가 오늘 뉴스인의 초대 손님입니다.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축하드립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많이 바쁘죠, 요즘에?

[인터뷰]
아무래도 많이들 찾아주셔서 조금은 바빠요.

[앵커]
주로 어떤 일들을 요즘 하시나요?

[인터뷰]
아무래도 올림픽 끝난 직후에는 여러 가지 인터뷰가 가장 많았고 지금은 그래도 인터뷰 같은 경우에 거의 끝났어요.

[앵커]
인터뷰하는 건 즐겁나요, 아니면 부담되나요?

[인터뷰]
이제는 또 제가 원래도 부담이 없었고 전혀 끝난 이후라 그럴 이유는 또 전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앵커]
지금 보기에도 거의 전혀 긴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즐거운 것 같은데요?

[인터뷰]
인터뷰야 워낙 계속 하다 보니까 특별하게 다른 생각이 드는 건 없습니다.

[앵커]
오늘도 편안하게 그냥 얘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네.

[앵커]
패럴림픽 성화 봉송하셨다면서요?

[인터뷰]
네, 얼마 전에 하고 왔습니다.

[앵커]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인터뷰]
어쨌든 평창올림픽은 이제 끝이 났고 또 다음 패럴림픽이 시작되는데 항상 문제였던 게 올림픽에서는 항상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지만 패럴림픽에서는 관심이 많이 죽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어쨌든 제가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앵커]
한번 대회 기간 동안 가면 또 많은 분들이 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좋은 모습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인터뷰]
저도 기회되고 가능하면 직접 가서 경기 관람도 하고 싶고 하는 마음입니다.

[앵커]
동계올림픽 종목 중에는 본인 것 말고는 다른 종목은 어떤 게 제일, 만약에 가보고 싶다, 한 군데?

[인터뷰]
사실 올림픽 기간 때도 다른 종목을 많이 보지는 못했어요. TV 중계로만 보고 직관으로는 거의 못 봤고. 그런데 지금이라도 보고 싶다면 스키 종목 같은 경우 보고 싶더라고요. 여러 가지 세부 종목들도 하다 보니까 되게 보고 싶었어요.

[앵커]
지금 우리가 익히 아는 조금 전 화면에서 봤었던 아이언맨 헬멧인데요. 어떻게 만든건가요?

[인터뷰]
이건 제가 따로 외국에서 직접 디자인을 주문해서 이렇게 디자인만 따로 한 겁니다.

[앵커]
윤성빈 선수만을 위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헬멧이군요?

[인터뷰]
굳이 따지고 보자면 그렇죠.

[앵커]
그런데 왜 언제부터 이 아이언맨을 선택하고 이걸 주문했을까요?

[인터뷰]
처음 쓴 게 그래도 꽤 오래됐어요. 꽤 오래됐는데 2015년도부터 제가 이걸 쓰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저희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이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뭔가 제가 이 헬멧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도 알려지지 않았고 그랬는데 이번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 보니까 많이들 관심을 가져주시더라고요. 그런 것도 있고 그게 가장 어쨌든 기분이 좋았고 또 아이언맨 자체가 제가 워낙 평소에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이기도 하고 또 워낙 처음 나왔을 때가 어릴 때였는데 어릴 때 좀 다른 히어로물 영화와는 좀 다르게 저한테 다가와서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아서 이렇게 하게 되었어요.

[앵커]
딱 꽂혔군요, 그 아이언맨 캐릭터가.

[인터뷰]
네.

[앵커]
어떤 점이 그렇게 와닿았을까요?

[인터뷰]
일단 누가 봐도 시선을 사로잡는 그런 뭔가 아이언맨 슈트라든지 이런 것들은 어쨌든 다른 히어로들과는 처음 시도된 그런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최첨단 여러 가지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되게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앵커]
윤성빈 선수 본인도 좀 시선을 좀 즐기고 남들이 쳐다봐주면 힘이 나고 그런 성격인가요?

[인터뷰]
저는 응원을 해 주시면 저는 그게 경기력이 나타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쨌든 저한테는 정말 큰 힘이 돼요. 그런 응원들이.

[앵커]
응원이 사람들의 시선과 이런 환호가 부담되는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에너지를 더 끌어올리는군요. 별명이 아이언맨인데 오늘 이렇게 만나 보니까 굉장히 뭐랄까요. 부드럽고 성격도 얼굴도 굉장히 조금 여성스러운 것 같은, 선도 곱고 성격은 어떤가요?

[인터뷰]
평소에 좀 말이 많이 없다 보니까 처음 만나시는 분들 같은 경우에는 조금 오해를 사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어요. 너무 과묵하다보니까 자기를 싫어하나라는 생각을 가지시는 분들이 간혹가다가 있거든요. 절대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처음에 낯을 좀 많이 가리는 편이다 보니까 처음 본 분들하고는 이렇게 대화를 막 편하게 섞기가 좀 힘든 부분이 있어요.

[앵커]
그렇지만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다?

[인터뷰]
그건 다른 분들이 판단해 주셔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겠습니다.

[앵커]
웃음이 이렇게 눈웃음을 많이 웃고 같이 이야기를 해 보니까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금메달 따는 순간에는 제일 먼저 누구 생각이 나던가요?

[인터뷰]
너무 많죠.

[앵커]
웬 한숨을...

[인터뷰]
너무 많기 때문에 다 설명드릴 수 없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쨌든 가족이 있고 그리고 여기까지 저희가 다같이 함께 해 온 우리 국가대표팀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분들도 있고 또 저희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많이 지원해 주셨던 후원사분들도 생각이 나고 많은 분들이 생각이 났죠.

[앵커]
만으로 24살이고 고3 때 입문을 했지 않습니까. 그러면 불과 몇 년 동안인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세계 정상에 빠른 속도로, 가파른 속도로 올라갔을까, 이게 천부적인 건가 아니면 정말 연습을 많이 한 것인가 뭔가요, 대체?

[인터뷰]
저도 그 이유는 사실 제가 그렇게 해 왔지만 저도 그 이유를 어떻게 확실하게 말씀을 드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어쨌든 저희는 우리 팀 선수들, 팀 감독님, 코치님들 다 같이 이루어져서 여태까지 이렇게 해 왔고 그런 훈련들이나 그런 것들이 정말 헛되지 않고 정말 다 영양가 있게 잘 해 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해왔기 때문에 지금이 가능하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노력은 내가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했다.

[인터뷰]
그렇죠. 우리 팀 자체가 다 같이 뭔가, 다른 팀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팀 같은 경우에는 정말 가족처럼 지내왔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점이 힘들고 어떤 점이 좋은지 그런 것들을 완벽하게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런데 고3 때 시작하고서 처음 한 번 저걸 타본 다음에 두 달 있다가 대학생들과 경기를 했는데 거기에서 1등을 했고 우승을 하면서 국가대표가 되었단 말이에요. 처음 해본 거죠? 그러니까 전에 비슷한 걸 해 봤던 것도 아니죠?

[인터뷰]
그 전에는 그냥 인문계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앵커]
체고 입시를 봤는데 안 됐고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고 고3인데 무엇을 해야 할지 장래희망들이 불투명한 상태였다고요?

[인터뷰]
뭔가 저는 그때 당시에 대학이라는 게 저한테 정말 필요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냥 일반적인 그런 학생이었는데 그러게요, 저도 왜 그렇게 잘됐는지는 저도 의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러 가지 운도 잘 따라주었고 그래서 됐다고 저는 생각을 하겠습니다.

[앵커]
그 당시에 윤성빈 선수를 본 지도자들의 인상이 성적도 애매하고 인생에 대해서 뭘 해야 될지도 좀 애매해 보이는 그래서 마치 자신들의 과거를 보는 것 같아서 좀 얘는 키워야겠다라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데 그때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이 맞는 건가요?

[인터뷰]
저는 고등학생 당시에 정말 어디를 둘러봐도 있는 그런 학생이었어요. 그런 학생. 정말 친구들과, 친구들을 정말 좋아했어요. 친구를 정말 좋아하는 학생이었는데 그래서 친구들과 놀고 그런 것들을 너무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또 그렇다고 뭔가를 하고 싶다 이런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고 그런데 때마침 스켈레톤 종목이 저한테 찾아왔기 때문에 바로 뭔가 고민하지 않고 접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앵커]
스켈레톤을 사랑하나요?

[인터뷰]
사랑이요? 사랑이라기보다는 어쨌든 제 인생에 있어서 뭐라고 해야 되죠, 인생의 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인생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이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제 인생이라고 볼 수 있죠. 스켈레톤.

[앵커]
처음에 무서워서 시속 100km이고 체감은 시속 400km라고 들었는데 무서워서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울먹였다는데 맞습니까?

[인터뷰]
아닙니다. 잘못된 제보이고 제가 그렇게 나약하지 않고 울먹거리고 그런 건 없었고 정말 그런데...

[앵커]
전화는 했고?

[인터뷰]
전화는 해서 힘들다고는 했어요. 힘들다고는 했는데 울먹거리지는 않았고 힘들다고는 했어요. 왜냐하면 이 종목 자체가 처음 접하는 사람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종목이 아니에요. 절대.

[앵커]
보기만도 무서운데.

[인터뷰]
저도 사람인지라 그때는 또 워낙 어렸고 그래서 조금 견뎌야 될 부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생각해요.

[앵커]
저도 볼 때마다 궁금한데 어떻게, 정말 무섭지 않나, 더더군다나 머리부터 나가니까 그 공포가 굉장히 심하지 않을까, 저걸 어떻게 극복할까가 항상 의문이었거든요.

[인터뷰]
일단 지금 현재는 저는 선수이다보니까 그런 것들은 없지만...

[앵커]
전혀 안 무섭나요, 지금은?

[인터뷰]
그럼요. 저는 무서우면 할 수가 없어요. 무서우면 할 수가 없고. 저희는 특히나 경기 내용에서 속도를 점점 더 빨라지게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무서워하면 절대 안 되고. 체감 속도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제 이 종목이 많이 알려지고 하다 보니까 체감속도가 400km다, 이런 것도 그때 막 알았거든요. 그렇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그런데 머리가 앞으로 가 있는 상태에서 타고 내려간다고 머리가 절대 부딪히지는 않아요.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고 다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이 썰매 종목이 세 가지 종류가 있잖아요.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안전한 종목이 스켈레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보시는 바와는 다르게 전혀 문제없습니다.

[앵커]
봅슬레이는 그래도 장비가 몸을 감싸주고 하는데 그런데 왜 스켈레톤이 제일 안전한 거죠?

[인터뷰]
봅슬레이 같은 경우에는 크고 뭔가 더 무겁고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전복했을 때 같은 경우에는 안에 타고 있어도 위험한 요소가 저는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저희는 최악의 경우가 뒤집어지는 경우거든요. 뒤집어져도, 저도 뒤집어져 봤기 때문에 등 조금 얼음에 닿아서 시원한 정도?

[앵커]
부상의 최대 위험성은 등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고속도로도 처음에는 백 몇십 킬로미터로 속도를 많이 내면, 최대 제한속도까지 가면 처음에는 굉장히 빠른 것 같은데 그게 계속 가다보면 도로에 붙어 있는 껌도 보이고 그러거든요. 저 속도로 가면서도 주위가 천천히 보이고 사람들도 보이고 그러나요?

[인터뷰]
말씀하신 것처럼 속도에 적응이 되고 계속하다 보면 시야나 이런 것들이 넓어지거든요. 그래서 지나가다가 코스 바깥에서 보고 있는 사람 얼굴까지도 보이고 누가 누구인지가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되거든요.

[앵커]
누가 박수치고 있는지도 보이고?

[인터뷰]
사람들이 많이 계시면 힘들겠지만 몇 분 안 계시면 대충 보이기는 해요.

[앵커]
여자친구가 있으면 여자친구 얼굴도 보이고 그러겠네요.

[인터뷰]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확실히 구별이 가고 어떻게 생겼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앵커]
처음에는 이게 우리나라가 스켈레톤이 이걸 여기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아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을 것이고 처음에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는 애국가가 준비가 안 돼서 시상식 자체가 늦어지기도 하고 그랬다면서요?

[인터뷰]
그렇죠. 국제대회에서 애국가가 울린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런, 거기에서도 전혀 예상을 못 하고 있었고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그때 막 닥치고 나서야 애국가를 찾고 하다보니까 여러 번 지연된 적도 있었고 애국가가 1절에서 끝이 나야 하는데 2절까지 가고 3절까지 간 적도 있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었죠.

[앵커]
그때 2016년이었는데 그때 애국가를 처음 들었을 때 나를 통해서 애국가가 울렸을 때 그때 느낌은 어땠나요?

[인터뷰]
일단 한국이 아닌 타지 외국에서 저로 인해 이렇게 애국가가 울린다는 것 자체가 정말 마음에 크게 뭔가 와닿았고 그리고 외국 선수들한테 애국가를 인식시켜줄 수 있는 뭔가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제가 잘하지 못했을 때는 다른 국가의 노래를 들으면 계속 듣다 보니까 저도 알거든요, 알게 되거든요, 저도 모르게. 그런 것처럼 외국 선수들이 들으면 애국가가 나오는구나라는 걸 인식시켜줄 수 있는...

[앵커]
라트비아 국가 알겠군요?

[인터뷰]
알고 있죠.

[앵커]
윤성빈에게 두쿠르스란?

[인터뷰]
최대 경쟁자이자 우상이었고 또 지금도 역시도 배울 점이 많다라고 생각을 하고 아직도 제가 그 선수 전성기를 따라가려면 아직도 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저도 더 배워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선수는 제가 은퇴할 때까지도 계속 제 우상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이번에 4등 메달 못 따고 혼자 앉아있는 모습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라는 기자회견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좀 마음이 찡했는데 만약에 옆에 있어서 얘기해줄 수 있다면, 두쿠르스한테. 무슨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나요?

[인터뷰]
따로 식당에서 보고 이야기를 했어요. 뭔가 미안한 마음이 있다 보니까 미안하다고 마음을 잘 이야기를 했는데 워낙에 경험도 많은 선수이고 여러 가지 상황도 많이 겪어봤던 선수이기 때문에 오히려 저를 이 순간을 잘 즐기라고 오히려 저한테 그렇게 격려를 해 주는 것을 보고 역시 저도 앞으로 배워야 할 게 많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또 하지만 그때 상황이 한 번 더 닥친다고 하면 뭔가 더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좀 더 챙기려고 했을 것 같아요.

[앵커]
뭐라도 좀 해 주고 싶고... 한국음식 대접한다면 무엇을 해 주고 싶나요, 두쿠르스에게.

[인터뷰]
한국음식을 그래도 꽤 먹는 걸로 전 알고 있거든요. 불고기 같은 거 좋아한다고, 좋아하는지 모르겠는데 알고는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나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거 많잖아요. 따로 기회가 된다면.

[앵커]
요즘에 하루 8끼씩 먹는다는 게 굉장히 화제였지 않습니까. 체중 늘리려고. 요즘은 그냥 세 끼 드시는 거죠?

[인터뷰]
요즘은 먹고 싶은 거 먹고.

[앵커]
여덟 끼 먹으면서 구역질 참으면서 먹었다면서요?

[인터뷰]
이제 먹고 한끼한끼를 많이 먹었어요. 많이 먹다 보니까 다 소화도 채 되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밀어넣으려고 하니까 아무래도 많이 속도 안 좋고 계속 뭔가 올라오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까 그때는 되게 힘들었죠.

[앵커]
사람이 사실 먹는다는 게 굉장히 즐거움이지 않습니까? 일상의 즐거움인데 먹는 게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 되었을 때 그걸 무엇을 생각하면서 견디고 참을 수 있었나요.

[인터뷰]
그때는 정말 제가 잘하고 싶다는 갈망 이런 것들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제가 잘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고 이것만 견디면 된다는 생각을 하다보니까 또 어떻게 해서든 되더라고요, 하니까 되더라고요.

[앵커]
어머니 생각도 하고요. 그때 어려울 때마다?

[인터뷰]
그때 먹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앵커]
아까 여러 사람 금메달 따고 생각났다고 했는데 어머니 얼굴이 당연히 떠올랐겠죠.

[인터뷰]
네, 당연하죠.

[앵커]
어머니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인터뷰]
뭐라고 저한테 말씀하시기보다는 많이 좋아하셨어요. 너무 많이 좋아하시고 저보다도 오히려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앵커]
어머니한테 감정표현을 잘하나요?

[인터뷰]
아니요. 잘... 집에서 되게 무뚝뚝한 아들이고 하다 보니까 뭔가 감정표현 같은 걸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앵커]
대부분 아들들이 많죠. 많은 아들들이. 미안하죠, 그런데. 죄송하죠?

[인터뷰]
그래도 가끔은 정말 가끔은 하기는 하니까...

[앵커]
할 때는 뭐라고, 어머니한테 뭐라고 감정표현?

[인터뷰]
감정표현이요? 이런 소리 한번 해달라고 엄마가 사실 부탁을 하시는데 그러면 해드리고 또 제가 스스로 먼저 하고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앵커]
사랑해요 이런 거?

[인터뷰]
네.

[앵커]
그러면 잘 못하니까, 오늘 한번...

[인터뷰]
요즘 너무 많이 했어요. 요구가 많았어요. 요즘에 너무 많이 해가지고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앵커]
여기에서는 안 하겠다.

[인터뷰]
지나쳤다라고 생각을 해요.

[앵커]
알겠습니다. 사랑한다라는 말 하고 싶은 사람 지금 어머님 말고 또 다른 사람 없고요?

[인터뷰]
다른 분들은 이런 말을 하면 오히려 오글거린다고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아끼겠습니다.

[앵커]
물어봐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저희가 참겠습니다. 별로 원치 않는 것 같아서. 오늘 슬라이딩센터, 알펜시아. 지금 예산이 배정이 안 돼서 어쩌면 폐쇄될 수 있다. 그리고 스켈레톤이랑 봅슬레인 상비군이 해산한다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러면 그다음 올림픽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거?

[인터뷰]
일단 너무 이건 저희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어쨌든 이 올림픽이 끝이 났지만 경기장을 지었는데 이렇게 끝나자마자 폐쇄시킨다는 것은 너무 아깝고 저희가 항상 이야기를 했던 말이 이번이 끝이 아닌 시작으로 항상 말씀을 드렸는데 끝이 아닌 시작이 되려면 어쨌든 경기장의 시설을 잘 이용을 해서 다른 선수들을 발굴해서 훈련을 해야 된단 말이죠. 그런데 인재 발굴도 시작하기 전에 인재 발굴을 했다라고 해도 훈련할 시설이 다시 없어지면 그건 저희가 저 이후의 선수들도 그렇고 앞으로 하고 싶어 하는 선수들도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너무 지금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당장 슬라이딩센터 없어지면 윤성빈 선수도 해외에 나가서 훈련을 해야 되는 건가요?

[인터뷰]
이제 시즌 전에 저희가 항상 올림픽 준비를 할 때 같은 경우에 시즌 전에 저희가 전지훈련에서 연습을 해서 경기력이나 주행 감각을 올린 다음에 시합에 임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시합에 큰 영향을 끼치죠. 주행감각을 익히고 시합을 하다보니까 많이 영향을 끼치는데 그런 것들이 없고 조금 또 다시 한국에서 훈련하는 게 아니라 외국에 더 먼저 나가서 외국에서 훈련을 해야 되는 경우, 뭐 그런 일들이 있죠.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윤성빈 선수 굉장히 많은 분들이 보고 싶어하셨었고 또 얘기를 듣고 싶어하셨던 손님을 모셔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요. 선수 윤성빈의 목표는 이제 많은 분들이 아시고 인간 윤성빈은 나는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그런 것이 있는지 그걸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저는 모두가 저를 바라봤을 때 어떤 편안한 걸 중요시 하거든요. 그래서 모든 분들이 편안하게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시게끔 선수 생활이 끝난 이후에는 그런 위주로 저는 편안하게 살려고 노력할 생각이라서 누가 봐도 편안하게 잘 살고 있구나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많이 웃고 얼굴도 편한데 아까 첫 인사하는 사람들이 차갑다라고 느낀다고 하니까 더 많이 웃으시고 그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깜빡 잊어버렸는데 금메달 갖고 나오셨죠?

[인터뷰]
네.

[앵커]
금메달 한번 보여드리고 끝내야죠. 영광스러운 금메달 시청자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떨어질까봐 저는 조마조마한데, 뒷면도 한번 보여주시죠.

[인터뷰]
메달 뒷면이요?

[앵커]
네. 이렇게 큽니다. 제가 금메달 만져서 영광입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겠습니까? 그동안 윤성빈 선수 고생많으셨고 국민들께 기쁨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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