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년에 쓴 흥부전 발견..."흥부 고향은 평양"

1833년에 쓴 흥부전 발견..."흥부 고향은 평양"

2017.06.27. 오후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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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재미있는 소식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흥부전 한글 필사본, 손으로 쓴 겁니다.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흥부와 놀부의 고향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주로 남도라는 필사본이 많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 평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연흥부로 알고 있었는데 성씨가 장씨다. 그러니까 장흥부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연구를 한 김동욱 서울대 국문과 소속 박사입니다. 김동욱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김동욱입니다.

[앵커]
흥보만보록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먼저 설명을 해 주시죠.

[인터뷰]
먼저 이 자료는 송준호 전 연세대 교수가 가지고 계신 자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 필사기를 보면 1833년 무렵에 필사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흥부전과 흥부전 이외의 모든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판소리 작품을 통틀어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필사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어떤 점들이 지금까지 알려졌었던 필사본, 지금까지 발견된 점이 다릅니까?

[인터뷰]
아까 잠깐 말씀하신 것처럼 먼저 배경이 지금까지는 흥부전이 대개 전라, 경상, 호남지역. 특히 남원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추정되어왔는데요. 이 흥보만보록은 평양 서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흥부와 놀부의 성이 아예 없거나 또는 박 씨, 그러니까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니까 박 씨로 후대에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고 제비 연 써서 제비 연씨, 연흥보, 박흥보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번에 발견된 것은 장씨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덕수 장씨로 흥보가 덕수장씨의 시조가 되어 있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그리고 내용으로 보면 기존의 흥부전들은 대개 보면 놀부가 집안의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동생 흥보를 무일푼 상태로 내쫓는악독한 형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이 흥보만보록은 흥보와 놀보가 가난한 집이었다가 비교적 좀 잘사는 부잣집의 데릴사위가 되었는데 나중에 친부모가 어려워지니까 흥보가 자기 친부모한테 돌아가서 친부모를 부양하면서 놀보 형한테 도와달라고 하니까 놀부가 나는 처갓집 덕분에 잘먹고 잘살게 되었는데 왜 친부모를 봉양해야 되느냐, 너를 도와줘야 되느냐라고 내쫓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처, 부모 봉양은 지극히 합니다. 무조건적인 악인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앵커]
제비 얘기 같은 것은 다 박씨라든가 그런 얘기는 그대로 나오는 건가요?

[인터뷰]
네, 그대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흥보가 그렇게 어렵게 형으로부터 도움을 못 받다가 제비다리를 고쳐줘서 나중에 박으로 부자가 되고 그다음에 놀보가 소문을 듣고 제비 다리를 부러뜨렸다가 고쳐주고 그 박에서 나온 여러 가지 사람들로부터 망하는 내용은 같습니다.

[앵커]
지금 책 표지에 보니까 한자로 박응교전이라고 나오는데 이건 뭐죠? 왜 제목이 다르죠?

[인터뷰]
박응교전이라는 것은 박태보라는 인물을 대상으로 한 전인데 이 가요가 제목은 박응교전이라고 되어 있어서 전반부분은 박태보전이 실려 있고요. 후반부부터 흥보만보록이라는 제목으로 흥보만보록 흥부전의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앵커]
박사님,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연흥부 이렇게 알고 있었고 지역도 그렇고 그게 교재 같은 데도 그렇게 쓰여 있었는데 그걸 다 역사를 바꿔야 되는 겁니까? 아니면 이게 버전이 여러 버전이 있으니까 그중에 하나로 볼 수 있는 서로 다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봐야 됩니까?

[인터뷰]
일단 이 본으로서는 가치는 인정해야겠지만 최초의 모습이 뭐였냐는 질문을 던지게 되면 이 자료가 상당히 부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니까 최초의 모습이 뭐냐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자료 중에 가장 이른 자료가 그나마 최초의 것과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흥보만보록은 서도지방, 그러니까 평양과 황해도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렇다는 점에서 지금 흥보의 고향마을이 남원으로 되어 있고 흥부전의 발상지도 호남, 남원지역이다. 그리고 판소리라는 장르의 발상지도 지금 호남지역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통설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된 것 같습니까? 왜 그런데 처음에 원래 이렇게 정통이라면 그게 왜 나중에 성도 연이 되고 제비 연자 그렇게 되고 지역도 바뀌고 그건 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추정하십니까?

[인터뷰]
그건 구비문학의 특성상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변개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초기에는 아마 흥부전의 고향이 평양이고 흥부와 놀부가 덕수 장씨라고 했는데 덕수 장씨가 황해도 개풍군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마 이게 서도지방에서 유래가 된 것 같은데 그런데 나중에 판소리의 주도권이 호남지역으로 넘어오거든요.

그러면서 나중에 흥부전의 배경이 자연스럽게 남원지역으로 바뀌게 된 것은 아닌가. 일단 이렇게 추정을 해보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저희가 보여드리는 화면이 그 옆 왼쪽이 박사님이었고 그 옆이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원래 이걸 갖고 계셨다는 교수님, 연대 교수님이요?

[인터뷰]
지금도 갖고 계십니다. 연세대 국문과에서 퇴임하신 송준호 명예교수님입니다.

[앵커]
박사님은 이걸 어떻게 알고서 접근해서 연구하시게 됐습니까?

[인터뷰]
송준호 선생님께서 은진 송씨, 그러니까 송시열의 후손 집안이신데요. 송준호 선생님께서는 한문학을 전공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 아마 사진을 보시다보면 한글로 쓰여져 있는데 좀 읽기가 쉽지가 않지 않습니까. 흘려써가지고.

그래서 송준호 선생님께서도 이걸 국문학 전공이기는 하지만 읽지를 못하시고 그냥 제목은 박응교전으로 되어 있으니까 박응교전으로 알고 오랫동안 갖고 계시다가 비교적 최근에 넘겨 보다 보니까 중간 부분에 흥보만보록으로 되어 있어서 아, 이게 이상하다.

왜 박응교전에 흥보만보로 되어 있을까 해서 여기저기 문의를 하시다가 지도교수인 정병설 교수님과 연락이 닿았고 그래서 저하고 정병설 교수님이 함께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지금 책을 보니까 한글로 써있지만 무슨 내용인지 보통 사람들, 저 같은 사람이 봐서는 모르겠거든요, 전혀 내용을.

[인터뷰]
그래도 잘 집중해서 읽으시면 보이기도 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김동욱 박사님, 고생 많으셨고요.

앞으로 잘 연구해 주셔서 정확하게 좀 더 내용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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