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대선 빅데이터] 역대 대선 대세론 vs 돌풍, 대선 승패 좌우하는 경선

[김형준의 대선 빅데이터] 역대 대선 대세론 vs 돌풍, 대선 승패 좌우하는 경선

2017.02.24. 오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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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 명지대 교수 / 이동우, YTN 보도국 선임기자

[앵커]
올해 대선은 본선 못지 않게 예선, 특히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김형준의 대선 빅데이터. 김형준 YTN 객원 해설위원, 명지대 교수입니다. 그리고 이동우 YTN 선임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대선 후보 경선을 오늘은 살펴볼 텐데요. 이 부분을 주목해야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터뷰]
왜냐하면 대통령 선거의 시작은 경선이라는 그런 등식이 성립이 됐었던 것이 2002년도 노풍이 불었을 때 아닙니까.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지지가 2000년 1월달에는 4%가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2002년도에는 새천년민주당의 새로운 경선 방식을 통해서 16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돌풍을 일으켰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노무현 후보가 승리의 원동력이 됐고 2007년도 당시 한나라당의 경선은 딱 10년 전인데요.

이명박이냐, 박근혜냐. 완전히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아주 초박빙의 선거를 치렀었는데 그것도 결국 2007년도 8월 20일에 있었던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결정이 됐었고요. 2012년도 당시에도 야당이었었죠.

손학규 그리고 문재인, 이 두 후보 간의 경선이 굉장히 초미의 관심을 끌었었는데 그것이 대한민국 선거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본선 못지 않게 경선도 굉장히 중요한 함의를 갖는. 그것이 어떤 면에서 보면 선거운동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성을 띠고 있습니다.

[앵커]
올해도 예선이 본선만큼 치열해질 가능성이 꽤 있는 거죠?

[기자]
그렇죠. 특히 더불어민주당 같은 경우에는 지금 사실상 문재인, 안희정 두 후보의 경쟁이 2강 경쟁이 치열한데. 결국 현재 각 정당지지도라든지 지금 현재 여러 가지 민심으로 봤을 때 더불어민주당 경선 결과가 결국 대선 본선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 그런 예측이 많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상당히 관심을 끌고 있고요.

현재까지 한 80만 명 이상이 완전국민경선, 선거인단으로 가입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보기에는 200만 명 이상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결과 그리고 경선 과정이 상당히 관심을 끄는 그런 상황인 것이죠.

[앵커]
그러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2002년, 2007년, 2012년. 주목받았었던 경선들, 하나씩 자세하게 분석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002년으로 가 보겠습니다.

[인터뷰]
2002년도 당시에 집권당은 새천년민주당이었었는데요. 2002년 1월에 아주 굉장히 특이한 경선룰이 책정이 됩니다. 그게 이른바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처음으로 국민경선제라는 게 도입이 됐었어요.

과거에는 당원들이 모여서 체육관에서 하루에 선거를 치렀었는데 2002년 1월에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경선은 최초로 국민 50%, 당원 50%, 2만 5000명, 2만 5000명으로 했었고요.

더 나아가서 16개 시도를 순회해서 경선을 실시하는 최초의 경선이었었습니다. 그래서 제주로 시작해서 울산, 광주, 대전 이렇게 이어지는 16번의 경선이 마치 드라마의 16부작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많은 관심을 끌었었는데요.

당시에 선거인단이 3만 7000명 정도 됐었는데요. 왜냐하면 원래는 5만 명이었지만 투표율이 58%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작은 숫자였지만 의미 있는 것은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라고 하는 아주 굉장히 독특하고 특이한 미국식의 오픈프라이머리는 아니지만 역시 결국은 새로운 룰이 만들어 짐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이 돌풍을 일으켰었던 그런 경선이었었습니다.

[앵커]
엄청나게 흥행에 성공했었던 경선이었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굉장히 흥행했었었죠. 당시에 1월달에 지지도를 보면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보다 앞섰었거든요.

그런데 굉장히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16부작, 예를 들어서 경선을 한다고 하다 보니까 노무현 후보의 지지가 점점점점 올라가다가 굉장히 핵심적이었었던 것은 결국은 3월 당시 2002년도 3월 13일날 여론조사 결과가 하나 나옵니다.

저 부분인데요. 저것은 이인제, 노무현 후보가 결국은 박빙이었었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인제 후보나 노무현 후보나 과연 이회창 후보랑 싸웠을 때 누구한테 이길 것이냐에 대한 부분들이 있었어요.

이것이 3월 13일날 당시 SBS, 문화일보가 여론조사를 했는데 노무현 후보로 나와도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있다라는 처음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서 3월 16일, 저거거든요.

저게 2002년도 3월 13일날 SBS와 문화일보가 조사한 건데 이회창 40. 6, 노무현 41. 7. 저런 여론조사가 나오고 난 후에 3월 16일에 그 유명한 광주경선이 실시가 됩니다.

광주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이전에 제주에서 한화갑 후보가 1등을 했었고 울산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겼지만 광주는 전통적으로 호남이 강세 아니겠습니까?

호남에서의 유력한 후보들이 강세였었는데 호남에 있는 유권자가 영남 후보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그래서 광주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약 100표 정도로 이겼지만 저것이 굉장한 상징성을 가진 것이었죠.

노무현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었던 것이 바로 3월 16일 광주에서 있었던 경선을 시작으로 불기 시작을 했는데요. 물론 이후에 당시 순회를 하다 보니까 대전하고 충남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많았지만 그 이후의 경선에서는 압도적으로 노무현 바람이 불면서 결국은 이인제 후보가 사퇴를 하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는 기적을 만들어낸 경선이었다고 봅니다.

[앵커]
저때 이동우 기자께서도 그렇고 저도 현장에서 취재할 때였으니까 생각이 다 새록새록 나는데요. 지금하고 한번 비교를 해 보면 저때는 동교동계에서 노무현 후보를 배후에서 알게 모르게 지원해 주면서 바람이 부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지금 문재인, 안희정과 비교를 하면 어떤 함의를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기자]
일단 어쨌든 우리 국민들은 드라마를 상당히 좋아한다. 드라마틱한 대역전극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좋아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현재 문재인 후보가 어쨌든 대세론을 이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안희정 충남지사 같은 경우는 현재 뒤쫓고 있는 이런 형국인데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안희정 지사가 상당히 추격하고 있는 양상이어서 상당히 이런 부분이 어떻게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을지 그런 부분이 상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결국 지금은 아직 탄핵이 인용됐거나 기각됐거나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그 결과가 나온 뒤에 상당한 아무래도 변동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지켜봐야 되는 것이고요.

바로 2002년 그 당시 대선 경선도 그 당시에는 이인제 대세론이었습니다마는 어쨌든 그 당시에 노무현 후보 측에서는 영남 후보가 나와야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이인제 후보는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했었는데 그런 부분이 상당 부분 주효했던 것이고 지금 앵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동교동계에서 알게 모르게 노무현 후보를 지원했던, 그런 부분도 상당 부분 주효했던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인터뷰]
당시 처음에는 이인제 후보는 권노갑 고문의 도움을 받아서 굉장히 상승세를 탔었는데요. 이인제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아까 정체성 얘기를 했는데 적통 문제에 있어서 이인제 후보는 과거 97년에 신한국당 후보로 나왔다가 새천년민주당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이 문제가 굉장히 적통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가 됐었고. 또 하나는 당시 노무현 후보가 얘기했었던 것은 변화와 개혁이었어요. 그런데 이인제 후보가 아주 결정적으로 실수를 한 이유가 뭐냐 하면 너무 자기가 대세이다 보니까 남북 문제와 관련돼서 김대중 대통령과 조금 다른 시각을 보이기 시작을 했어요.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으로 하여금 친동교동계에서 이인제보다는 노무현 후보가 우리의 적통이다라고 하면서 다시 한 번 새롭게 정립이 되면서 이인제 대세론이 꺾이는 그런 결과를 가져왔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2002년과 2017년이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고 묘하게 교차돼 있습니다.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지 보겠습니다. 최종 결과죠.

[인터뷰]
결국은 노무현 후보가 72.2%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는데요. 대세가 굳혀지니까 중간에 이인제 후보가 사퇴를 하게 됐고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 정동영 후보가 끝까지 노무현 후보와 같이 경선을 펼쳤어요.

이것이 두 사람 사이에서 상당히 나름대로 관계를 좋게 했었고. 정몽준 후보랑 단일화를 하면서 마지막 유세 때 정몽준 후보를 앞에다 두고 우리한테는 정동영과 추미애가 있다고 할 정도로 노무현 후보가 고마웠었던 부분은 끝까지 레이스를 같이 해 줬었다는 것.

다만 이인제 후보는 저렇게 해서 레이스를 하다 중간에 사퇴를 하고 또 결국은 탈당을 해서 나가게 되는 그런 식의 행태를 보임으로써 상당한 비난을 받았었고 그것이 오히려 노무현 후보가 표를 가져가게 하는 요인이 됐었던 거라고 저는 봅니다.

[앵커]
2007년 대선에서의 경선, 그때도 본선만큼 치열했던, 어쩌면 본선보다 더 흥미진진했던 경선입니다.

[인터뷰]
이때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2007년도 8월 20일에 경선이 있었었는데요. 당시 한나라당이죠. 한나라당의 경선은 독특한 방식의 룰을 정했었습니다.

과거에는 같은 국민참여경선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여론조사를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적용했었던 최초의 과정이 됐었었죠. 국민 50%, 당원 50%인데요.

여기 보시면 대선경선 최초 여론조사를 반영하는데 대의원 20%, 책임당원 30% 해서 당원들이 50% 지만 일반국민선거인단 모집을 30을 하고 여론조사를 20%을 반영을 해서 선거인단이 전부 다 23만 명 정도가 됐었습니다. 투표율이 70.8%니까 굉장히 높았었었던.

다시 얘기해서 이 경선에서 승리한 사람이 본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그런 부분 때문에. 또 하나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결국은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 간의 차이가 겨우 1. 5%밖에 차이가 안 났는데 당원 선거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졌지만 여론조사에서 이겼습니다.

지금 후보 지지도를 보면 2006년도 6월달까지만 해도 박근혜 후보가 이겼었어요. 그런데 2006년 10월달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면서 안보 변수가 나오고 안보 위기 관리 능력이 누가 뛰어나느냐라는 것을 가지고 논쟁이 붙었는데 이명박 후보한테 많은 분들이 지지를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나서 단 한 번도 저 그래프를 보면 여론조사선상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이기지를 못했습니다. 저것이 결국은 마지막 2007년 7월달에 이명박 후보가 37.2% 그리고 박근혜 후보가 27. 6, 약 10%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았었습니까?

이것이 실제 2007년 8월 20일 경선에서 여론조사에서 승리함으로써 겨우 박빙의 그런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었던 그런 경선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기자]
화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은 그때까지의 여론조사 결과고요. 당내 그 당시 경선을 했던 결과를 보면 이명박 후보가 49.6%를 득표하고요. 박근혜 후보가 48.1%를 득표를 하게 되는데 현장 투표에서는 오히려 박근혜 후보가 조금 더 앞섰었습니다.

[앵커]
꽤 많이 앞섰네요.

[기자]
현장 투표에서는 0.3%포인트 차이로.

[앵커]
정말 박빙이었군요.

[기자]
박근혜 후보가 오히려 앞섰었습니다마는 여론조사에서 보시면 51.6% 대 42.7%. 그러니까 약 한 9%포인트 정도 차이가 났던 거죠.

그러니까 결국 저것 때문에 여론조사가 반영이 되다 보니까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한테 당시에 지게 된 것이고 경선에서 승리를 여세를 몰아서 이명박 후보가 당시 압도적 표차로 그 당시 정동영 후보에게 이기는 그런 결과를 낳았던 것이죠.

[인터뷰]
저 결과를 가지고 굉장히 많은 디베이트가 있었었는데요. 결국 당원 투표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이겼거든요. 과연 이긴 거냐.

왜냐하면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 후보로 나오기 전에 2004년부터 2년 3개월 동안 당 대표도 했었고 지방선거 압승을 이뤘기 때문에 아마 당원투표에서 훨씬 표차를 많이 벌여놨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식으로 조금 이겼지만 큰 틀 속에서 보면 이명박 후보가 선방한 것이다라는 부분들이 있었고요.

또 하나는 저 경선이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은 1. 5%라는 차이는 굉장히 큰 차이가 아니라 박빙 아니겠습니까? 박근혜 후보가 결국은 아름다운 패배를 인정을 하면서 경선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거든요.

그러면서 박근혜 후보한테 줬었던 아주 강렬한 이미지가 뭐냐 하면 원칙과 신뢰라고 하는, 약속을 지킨다라고 하는 그런 이미지가 굉장히 깊이 많은 국민들에게 각인이 됐었고 그것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자산으로 작동했었던 그런 경선으로 기억이 됩니다.

[기자]
그러니까 저기서 함의를 주는 건 저 당시에 계속 당시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를 오랫동안 했습니다마는 그렇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계속 이명박 후보가 쭉 앞서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그런 민심이 당심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쳐서 당심에서도 압도적으로 박근혜 후보가 이길 줄 알았지만 결국 기껏해야 0. 3%포인트 정도 이기는 정도로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결국 여론조사가 그러니까 민심이 당심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것이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경선을 보면 결국 민심에서 확실히 앞서는 후보가 결국 완전국민경선 하에서 당심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풀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지금 딱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2007년도 당시 야당 상황과 굉장히 흡사하지 않습니까? 지금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층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지지가 확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결국은 다른 계층에서, 중도보수층에서 안희정 지사의 지지가 조금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결국은 당내 경선에서 봤을 때 지지층 면에서 봤을 때 조금조금씩 변화가 오고 있고 여론에서 흐름을 타고 있는, 여론에서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에 결국은 당원이 아니라 조금 전에 우리 이 기자님 말씀하신 것처럼 민심의 흐름 속에서의 안 지사가 어떻게 다시 한 번 끌고 올라가느냐.

지난 주 22%, 한국갤럽 조사에서 나왔지만 관심이 오늘 과연 25%을 넘을 거냐, 안 넘을 거냐가 초미의 관심사였었는데 나중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거기까지는 아직까지는 못 올라갔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20% 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민심에서 좋은 방향으로 안 지사의 나름대로 저력이 있는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면 2012년 대선 경선. 당시 민주통합당, 당시의 야당 경선으로 가보겠습니다.

[인터뷰]
당시는 손학규 전 대표가 결국 압승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거든요.

[앵커]
다 된 줄 알았죠, 후보가.

[인터뷰]
그렇죠. 그리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정치에 입문이 굉장히 짧았고 밀려서 나갔었다는 분이 있었을 정도로 손학규 전 대표가 새로운 정당, 민주통합당을 만들면서 모든 것을 다 수용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초대 당대표가 됐고 그리고 2012년에 경선 룰을 만들 때 워낙 자신이 있으니까 모든 룰을 다 허용을 했는데 이 당시 2012년 경선룰, 가장 핵심적인 정말 완전국민참여경선제, 누구든지 원하면 다 참여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줬다는 데 의미가 있었고요.

또 하나는 처음으로 모바일 투표가 2007년도에 당시 통합신당에서 있었지만 또다시 모바일 인터넷 현장투표 모두 1인 1표를 인정을 했었고 그리고 결선투표제가 도입이 됐다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선거인단이 약 108만 명 정도였었는데요. 모바일 91만 명.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는 게 저 모바일이 91만 명이라는 것 속에서 결국 손학규 후보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모바일에서 강점을 갖고 있었던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었던 부분이거든요.

투표율이 57%였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국민의당이 경선룰을 하면서 손학규 전 대표가 모바일만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2012년 경선에서의 아픈 추억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앵커]
그래서 그때 신조어로 모발심이라고 해서, 모바일 민심이다 했었고 친노 진영의 조직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 다음에는 경선에서 불패신화를 계속 만들었고. 그래서 친노에 대해서 트라우마 같은 게 생긴 비노 진영의 그때의 시작이자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덧붙이실 말씀.

[기자]
그래서 이 당시에 아까 보셨다시피 91만 명이나 모바일로 투표를 한 것이거든요. 현장에 왔던 사람은 16만 명 정도 됐던 것이고.

그 당시 결과를 보면 물론 문재인 당시 후보가 57% 정도를 득표하면서 1차에서 그냥 후보로 확정이 됐죠, 결선투표 없이.

이번에도 문재인 후보는 결선투표 없이 1차에서, 더불어민주당 경선 1차에서 압승을 거두겠다는 그런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현재까지 아까 말씀드렸듯이 지금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80만 명 정도 가입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200만 명이 훨씬 넘게 되면 이번에는 200만 명이 넘는다면.

[앵커]
이때의 두 배인 거죠?

[기자]
그렇죠. 그 당시에 108만 명이 신청을 해서 61만 명 정도가 득표를 했고 그렇게 되면 57% 정도가 참여를 했던 것인데 이번 같은 경우는 20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럴 경우에는 민주당 경선 룰을 보면 똑같습니다.

지난 번과 똑같이 완전국민참여경선이 가능하고 모바일, 인터넷, 현장투표 모두 1인 1표로 인정이 되고 결선투표제가 도입되고.
[앵커]
그때도 결선투표제가 있었죠?

[인터뷰]
있었습니다.

[기자]
그런데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1차에서 과반을 얻었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가 당시 됐던 것이고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미 이 정도 열기면 100만 명이 넘기 때문에 역선택 논란은 무의미하다.

일부에서는 친박계라든지 아니면 친박연대 이런 데에서 민주당 완전국민경선이니까 들어가서 안희정 지사를 찍자, 이런 얘기도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일부 이에 대해서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까지 지금 고민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데 역선택 논란은 무의미하다. 역선택을 아무리 한다 한들 지금 200만 명 이상이 참여하게 되면 역선택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게 못할 것이다.

[앵커]
예컨대 친박연대 같은 데에서 조직적으로 조직원들 가동하는 것 말고 보수, 중도의 유권자들이 저기에 대거 참여할 가능성에 대해서.

[인터뷰]
저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방식이 어떻게 되어 있냐면 지금부터 시작해서 탄핵 3일 전까지가 1차 모집이 있고 2차 모집을 가지고 지금 설왕설래하고 있지 않습니까? 탄핵 결정이 나고 나서 이것을 일주일로 할 것이냐, 열흘로 할 것이냐를 가지고 논란이 많거든요.

지금까지 민주당의 지지라는 것을 통해서 보면 150만 명 정도가 들어오면 그게 맥시멈일 것이다, 최고인데 이것이 150만 명을 넘어서 200만 명, 300만 명으로 간다고 한다면 이것은 중도, 보수층도 얼마든지 들어가서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은 2차 선거인단 모집에서 흐름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냐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질 거라고 봐요.

특히 탄핵 결과가 어떻게 인용이 되냐, 기각이 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능성은 충분히 저는 있다고 보고요.

또 하나는 지금 3인이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두세 사람이 일방적으로 과거 2007년도에는 문재인 후보가 전국에서 다 이겼기 때문에 결선투표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결선투표가 분명히 가능한 거거든요.

그래서 어떤 형태든 간에 선거인단의 규모를 보고 우리가 한 번 더 어떠한 변화의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라고 하는 것인데. 하나 흥미로운 것은 결국 누가 이기냐가 아니라 민주당이 경선 흥행몰이에 지금 성공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자유한국당이라든지 바른정당의 지지가 안 뜨는 이유가 모든 관심이 지금 안희정이 역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쪽에 맞춰지고 있고 결국 역선택이 가능하느냐, 이런 것들이 지금 민주당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앵커]
그러면 오늘 나온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저희가 앞서 한번 소개해 드렸습니다마는 그 결과를 보면서. 지금 과거의 사례들을 토대로 해서 오늘 다시 한 번 예측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시죠. 대선 후보 지지도는 지난 주와 큰 차이가 없었고 어제 리얼미터에서는 안희정 지사가 좀 떨어진 것으로 나왔습니다마는 여기서는 전체적으로 다 1%포인트 정도씩 떨어진,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요.

연령별로 보겠습니다. 40대에서는 문재인 39, 안희정 22로 나타났고요. 50대는 문재인 26, 안희정 31, 황교안 10, 안철수 9. 60대 이상은 문재인 11, 안희정 20, 황교안 20, 안철수 11.

진보라고 응답한 응답자 중에서는 문재인 54, 안희정 14, 황교안 1, 안철수 7. 중도는 문재인 32, 안희정 24, 황교안 4, 안철수 9. 보수는 문재인 14, 안희정 27, 황교안 22, 안철수 7. 다음 호감도까지 보고 가겠습니다.

호감도 조사가 처음 나온 건데요. 이 부분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터뷰]
왜냐하면 후보를 찍을 때 많은 정보를 갖고 찍는 것이 아니라 그 후보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갖고 찍는다는 게 요새 선거 이론의 핵심이거든요.

그래서 자신에게 호감이 가는 사람한테 찍게 되는 것인데. 지금 문재인 후보 같은 경우에는 호감과 비호감이 거의 같은 수준으로 나오고 있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추격세가 좋은 안희정 지사 같은 경우에는 호감도가 비호감보다도 1. 45배 높게 나오고 있거든요.

이런 것들이 특징이고 황교안 권한대행 같은 경우는 너무나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비율이 높은 거예요. 70%이고. 그리고 호감이 간다가 21%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다시 얘기해서 저 조사 결과로 본다면 안 지사의 이러한 지지도의 추이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물론 선의 발언 때문에 이번에 1% 정도 떨어졌지만 상당히 그런 나름대로 선방을 한 것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만큼 호감도를 높이려고 한다면 문재인 전 대표도 이것을 굉장히 주의 깊게 봐야 됩니다.

결국은 호감도가 저런 식으로 해서 안희정 지사로부터 경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앞으로 더욱 더 중요한 그러한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앵커]
이 부국장님.

[기자]
안희정 지사 같은 경우가 특히 이번에 많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을 했습니다. 각종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 쪽에서도 공격을 받고 그랬기 때문에 상당히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겠느냐, 이렇게 예상했습니다마는 의외로 상당히 선방을 했어요.

1%포인트밖에 안 떨어졌고 문재인 전 대표 같은 경우도 역시 1%포인트 떨어졌고. 그것은 아무래도 안희정 지사의 지지가 생각보다 상당히 견고하다, 이렇게 보여지는 것 같고요.

다만 이번에 보면 충청에서 지난 주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충청에서 한 10%포인트 정도 문재인 후보한테 앞섰는데 이번에는 그게 좀 역전이 됐어요.

그리고 아마 지난 주부터 안희정 지사가 50대 이상에서 문재인 전 대표에 앞서는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보수, 중도층에서 상당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인데.

다만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내에서 보면 문재인 전 대표가 한 60% 정도 차지하고 있고요. 안희정 지사는 거기에서 20%밖에 지지를 못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 40%포인트 정도 갭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완전국민경선제를 더불어민주당에서 한다고 했을 때 물론 보수, 중도에서도 상당 부분 투표를 하겠지만 아무래도 더 열성 지지층에서 더 열심히 완전국민경선제 하에서 투표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는 안희정 지사가 상당한 불리한 점을 안고 이번 경선에 돌입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이번 경선이 과연 2002년 모델에 가깝게 진행될 것인지, 아니면 2012년 모델에 가깝게 진행될 것인지 계속해서 주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김형준의 대선 빅데이터. 김형준 교수님, 이동우 기자님 두 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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