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큰스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합천 해인사, 큰스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2021.03.11.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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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큰스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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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www.pixabay.com)

■ 해인사의 위세, 크고 아름다워라

해인사는 큰 절이다.

불자인 지인에게 해인사 이야기를 꺼내니 총림이 어쩌고 삼보가 어쩌고 어려운 이야기를 한다. 대한민국 불교, 그 중에서도 조계종단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찰이라는 이야기인 듯 하다.

불자가 아니기에 그런 어려운 내용은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불자가 아니라도 우리 모두 경주 불국사를 알고 있지 않은가. 합천 해인사도 일반 대중에게 비슷한 유명세를 자랑한다.

어쨌든 해인사는 큰 절이다. 그 위세는 절집을 마주하기 한참 전부터 확인할 수 있다.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가다보면 어느 새 '통행료 내는 곳'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경내지, 즉 '절 땅'입니다"라는 의미다.

조금 더 가면 커다란 주차장이 눈에 띄고, 작은 여관들과 산채비빔밥 따위를 파는 식당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엔 시외버스도 눈에 띈다. 잠깐 들렀다 가는 곳이 아니다. 대구 합천 등 인근 지역으로 향하는 버스의 출발지이며 종착지다.

비빔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올라갈 생각이 아니라면, 그리고 버스가 아닌 자가용 차량을 이용해 방문한다면, 굳이 이 곳에 차를 세울 필요는 없다. 해인사 성보박물관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가면 된다.

걸어서 올라가는 거리 또한 그다지 가까운 편은 아니다. 1km 가까운 길을 걷게 된다. 그다지 험하진 않아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을만하다. 그럼에도 걷는 동안 '크고 아름다운' 해인사의 위세를 한번 더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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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사에 없는 것과 해인사에만 있는 것

오래된 절을 방문한다고 해서 모두 불자일 리도, 교육 목적의 여행자일 리도 없다. 복잡한 공부 같은 건 과감히 생략하고, 그저 고요한 분위기와 풍부한 감성만을 즐기다 가자... 이런 사고방식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알게 되면 여행을 더 맛깔나게 즐길 수 있는 작은 지식 두 개 정도... 알아둬서 나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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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합천군청 제공)

우선 웬만한 절에 다 있는 대웅전이 해인사엔 없다. 대적광전이 대웅전의 역할을 대신한다. 화엄경을 중심사상으로 창건된 해인사는 석가모니불이 아닌 비로자나불을 주불(主佛)로 모시는 절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이 '대웅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은 '대적광전'이다.

석가모니불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이 비로자나불의 특징은 침묵의 부처라는 것. 설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침묵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게 이 비로자나불의 역할이라고 한다.

그런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이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이 보존된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설법을 하지 않는 부처, 비로자나불. 그리고 불교의 가르침을 종합해 집대성한 대장경... 절묘한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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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이 없는 절' 해인사에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의 보관 장소, '장경판전'이 있다. 그리고 장경판전에도 '법보전'이라는 법당이 마련돼 있다. 부처의 가르침 그 자체인 대장경이 보관된 장소에서 염불을 외는 스님, 불공을 드리는 불자들의 모습... 바로 '해인사에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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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은 국보 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최근 내장사 방화사건과 지난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을 보며 생긴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모두가 화재엔 무방비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목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어딘가로 옮기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도 국보 52호의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한 세트'인 것이다.

어느 현대식 건물보다 대장경을 보관하는데 최적이라고 하니 선뜻 이해가 쉽진 않다.

그저,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소방 훈련에 당국과 사찰 측이 전념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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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고 아름다운 사리탑, 성철스님은 좋아하실까

이처럼 팔만대장경으로 대표되는 해인사는 성철큰스님의 사리탑이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님을 모신 곳에 도착을 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부도탑이 아름다우나, 너무 화려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순 있다. 해인사와 스님이 차지하는 불교에서의 위치를 생각하면 오히려 지나치게 소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은 길상사에서 보았던 법정스님의 흔적들과 겹쳐져 하나의 의문으로 모아졌다.

길상사에서 마주친 법정스님의 유품은 단순하고 정갈했다. 한동안 마음을 붙잡힌 기분이었다.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대화록과 3000배를 해야 스님을 만날 수 있었던 일화를 들여다보면, 도스토옙스키 ‘대심문관’의 불교 버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성철스님이 살아계셔 이 부도탑을 본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실제 사리탑을 조성하는 과정에서도 이게 과연 청빈한 스님의 뜻과 맞느냐를 두고 분란이 있었다고 한다.

생전 대쪽 같은 수행을 강조하셨던 스님은 말로써 이해하기에도, 행동으로 따라 하기에도 너무 멀리 있다는 느낌이었다. 열반하신 뒤에도 이런 느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아무튼 이 조형물을 보며 든 생각은 확고하다. 1993년, 이곳 해인사에서 입적하신 스님을 위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름난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해인사 역시 가능한 한 주말을 피해서 방문하는 게 좋겠다. 그래야 사찰 특유의 정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는 게 가능하다. 사람들이 없다면 오르는 길에 보이는 대나무 숲마저 그 느낌이 전혀 다를 것이다.

Travel Tip : 버스터미널 승강장에는 '대구', '진주', '대전' 등의 지명이 표기돼있지만, 2021년 현재 실제 운행 노선은 고령 경유 서대구행과 합천행 2개 노선 뿐이다.

어르신, 어린이, 장애인을 동반한 차량은 신도증이 없어도 일주문 앞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인데 장거리를 걷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버스터미널 인근과 해인사 일주문 앞에 대기 중인 영업용 택시를 이용해도 된다.

트래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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