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2015.11.27. 오전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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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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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바다 절집' 은해사는 6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암자 하나하나가 모두 특색있겠지만 그 중 가장 특별한 암자를 하나 꼽는다면, 개인적으로는 백흥암을 꼽겠다.

비구니 스님들만 모여 수행하는, 말하자면 '금남(禁男)의 장소'라서다.

'은빛 바다 절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은해사. '그런가보다' 할 뿐, 도대체 왜 '은빛 바다'인지 이해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아침잠을 좀 줄이고 부지런을 떨어 해 뜨기 전 은해사를 찾으면 '이래서 은빛 바다구나!'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조금 더 확실히 느끼고 싶으면, 은해사를 지나쳐 위로 계속 걸으면 된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흐릿한 하늘 아래 희미하게 물안개 낀 저수지를 보면 된다.
여기서 살짝 쉬어가도 좋다.
백흥암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으니.

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백흥암은 찾고 싶다고 언제든 찾을 수 있고 보고 싶다고 언제든 볼 수 있는 그런 암자가 아니다.

백흥암의 비구니 스님들은 속세와 통하는 문을 걸어잠근 채 평소 수행에만 정진한다.

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다만, 굳게 닫힌 백흥암의 문도 1년에 단 두 번 활짝 열릴 때가 있으니, 4월 초파일과 7월 백중날이란다.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과 불교의 큰 명절인 7월 보름날 만큼은 문을 활짝 열고 속세 사람을 들여보낸단 얘기다.

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암자로 들어서자마자 감로수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아니, 여길 오시면서 물병을 안 가져오셨단 말이에요? 이 물이 보통 물이 아니에요. 얼마나 좋은 물인데"
"보통 물이 아니라면, 어떤 물인가요?"
"바위 틈에서 바로 흘러나오는 물이니, 석간수(石間水)지요"
"이 물이 그렇게 좋아요?"
"그럼요. 만병통치약이죠"
"혹시 이 물에 얽힌 전설이라든가 그런 게 있나요? 왜 고란사 약수는 먹으면 먹을 수록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잖아요"
"그냥 한 바가지 잡숴 봐요. 말이 필요 없어"

하긴, 아무리 언변이 뛰어난들 진리, 도(道), 깨달음… 이런 걸 어떻게 말로 설명하겠는가.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백흥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를 꼽는다면 추사 김정희의 글씨들이다.

산해숭심(山海崇深)이라고 적힌 현판 옆에는 추사의 약관이 찍혀 있다.
직역하면 '산과 바다는 높고 깊다'는 뜻이지만 부처님의 높고 깊은 마음을 비유한 글귀라고 하던가.

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기둥에도 추사의 글씨가 걸려 있다.
아무리 좁은 방이라도 능히 구백만 보살을 받을 수 있고, 3만2000개의 사자좌를 들여놓아도 비좁지 않다는 의미란다.
청빈과 무소유를 강조한 글귀였던가.

영천 백흥암, 비구니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암자

추사의 글씨를 뒤로 하고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그야말로 비밀의 정원이다.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처럼 조용하고 단아한 법흥사도 꽃 피는 사월 초파일 무렵이 되면 화려한 화원으로 변모하리라.

트레블라이프=유상석 ever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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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TIP: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자가용을 이용하든, 은해사 주차장에서부터 걸어올라가야 한다.

대중교통은 하양 또는 영천에서 은해사 행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시간표는 은해사 홈페이지 참고. 자가용의 경우,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은해사를 기준으로 백흥암까지의 거리는 2.5km. 하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고 길이 험하지 않기 때문에 체력에 큰 무리가 올 정도는 아니다. 좋은 공기와 경치를 누리며 천천히 걸어가 보자.

본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백흥암은 석가탄신일과 백중날에만 개방한다는 점을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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