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코로나 감염 우려에 회항한 닥터헬기...심근경색 50대 가장의 죽음

[와이파일]코로나 감염 우려에 회항한 닥터헬기...심근경색 50대 가장의 죽음

2021.01.18. 오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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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코로나 감염 우려에 회항한 닥터헬기...심근경색 50대 가장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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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미안해! 앞으로 술 안 마실게! 약속!
2020년 12월 9일"


냉장고에 붙여놓은 아빠의 쪽지는 지킬 수 없는 마지막 인사가 됐습니다.
20년 넘게 군청 공무원으로 일한 A 씨는 누구보다 성실한 직원이자, 자상한 남편, 아빠였고, 한 가정의 든든한 울타리였습니다. 가끔 직장 동료들과 대포 한잔 기울이는 게 전부였지만, 이마저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술은 안 마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더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와이파일]코로나 감염 우려에 회항한 닥터헬기...심근경색 50대 가장의 죽음


지난해 12월 16일, 강원도 홍천군청에서 점심을 마친 A 씨는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고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곧바로 직접 병원을 찾았고 저혈압 진단을 받았습니다. 응급실로 옮겨졌는데, 의식을 잃었습니다. 급성심근경색이었습니다. 심장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하는 심실세동 증상도 나타나 전기 심장 충격까지 받았습니다. 간신히 심장박동을 되찾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상급 병원으로 이송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내가 병원에 도착했고, 의료진은 원주에서 닥터헬기가 출발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헬기로 이송하면 10분 이내에 원주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이송이 가능한 상황.
아내는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헬기가 다시 원주로 회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춘천에 있는 상급 종합병원에서도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결국, 병원 구급차로 남편을 이송했습니다.
40분을 달려 원주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했지만, 남편은 끝내 다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남편 장례를 마친 뒤 아내는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닥터헬기가 남편을 태우지 않고 돌아간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병원 측은 열이 나거나 호흡기에 문제가 있는 환자는 닥터헬기에 태울 수 없다는 내부 지침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코로나19에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의심증상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절대 태울 수가 없다는 겁니다.

숨진 A 씨는 코로나19 의심증상자도 아니었고, 확진자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급성심근경색, 코로나19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질병이지만, 호흡곤란증세를 동반합니다. 의료진은 당시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며 A 씨의 가족을 위로했습니다.


취재를 시작하며 병원 측에 다시 문의했습니다.
닥터헬기가 회항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병원 측은 전국의 닥터헬기는 모두 국립중앙의료원의 지침을 받는다며, 그 지침에 따랐을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문의했습니다.
그런 지침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일 때 긴급하게 운영을 해야 하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검토를 한 적은 있지만, 닥터헬기를 보유한 병원에 지침을 내린 것은 없다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할 수 없다는 지침은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의료진의 판단이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의료진의 안전입니다. 헬기에 타는 의료진은 원활한 의료 활동과 헬기 운항을 위해 방호복을 착용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나 의심 증상자는 의료진 감염 위험이 있어 이송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저 코로나19로 인해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넘겨야 할까요?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요?


숨진 A 씨의 아내 역시 이런 상황을 걱정합니다.
남편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의료진을 탓하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일년 넘게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애쓰는 의료진이 얼마나 힘들겠냐며, 감사한다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와는 연관이 없는 것이 확인됐다 해도, 발열이나 호흡 곤란 등의 증세가 있다면 안타까운 상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급성심근경색에 호흡곤란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본 것은 너무 지나친 판단이고, 이로 인해 헬기가 돌아가는 일이 생기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원도 홍천에는 종합 상급병원이 없습니다.
상급병원이 있는 춘천까지는 차로 30분, 원주는 40분 이상 걸립니다. 심각한 외상환자나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긴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닥터헬기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홍천뿐이 아닙니다. 화천과 인제, 양구 등 강원도의 모든 군 단위 자치단체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거의 모든 군 단위 자치단체, 도서 산간지역 역시 닥터헬기가 꼭 필요합니다.

날아다니는 응급실, 닥터헬기는 이런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전국에 7대가 배치됐습니다.
지난 2011년 인천 가천대 길병원과 전남 목포한국병원, 2013년 강원도 원주 세브란스 병원, 경북 안동병원, 2016년 충남 단국대 병원, 전북 원광대 병원, 그리고 2018년 아주대병원입니다. 심한 외상이나 심장 또는 뇌혈관 질환 등 1분, 1초를 다투는 환자의 신속한 이송을 책임집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이번처럼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언제 종식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또다시 응급환자를 두고 닥터헬기가 회항하는 일이 없도록, 현명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홍성욱[hsw050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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