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벼를 잡초처럼'...민통선 마을 힘겨운 가을

'잘 익은 벼를 잡초처럼'...민통선 마을 힘겨운 가을

2020.09.29. 오후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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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완연한 가을볕에 추수가 한창인 요즘인데요.

민통선 이북 지역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가을걷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중호우 때 유실된 지뢰 때문인데, 추수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추석을 앞둔 민통선 이북 지역 상황은 어떤지 지 환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오대쌀로 유명한 강원도 철원 평야.

군 당국 협조를 얻어 민간인 통제선 이북으로 들어갔습니다.

잘 익은 황금벌판, 그런데 농민 대신 군부대 공병대원들이 쫙 깔렸습니다.

하천 범람 때 유실된 지뢰를 찾고 있습니다.

지뢰 탐지를 알리는 빨강 파랑 깃발 옆으로 조심스럽게 예초기가 돌아갑니다.

탐지기를 사용하려면 벼를 다 베어내야 합니다.

추수를 앞둔 논에서 지뢰를 탐지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일단 무른 땅이 다 마르고 난 뒤에 예초기로 2~3m 반경을 자르고 탐지하고, 자르고 탐지하는 과정을 계속 거칩니다. 그러다 보니 추수를 앞둔 벼는 수확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해 농사 마치고 거둘 일만 남았는데….

잡초처럼 벼가 베어지는 것을 봐야 하는 농민 억장은 무너집니다.

[최종수 / 강원 철원 지역 농민 : 저 DMZ 논둑이 터진 겁니다. 저 지뢰밭 논둑이. 그리고 하천이 범람했고, 그래서 어떤 게 들어올지 모르는 것이고. 실제 군인들이 탐지하면서 폭발물이 나왔잖아요. 당연히 불안하죠. 저희는.]

이달 말까지 접경지역에서 찾아낸 지뢰만 200발 이상.

믿었던 재해 보험에서도 지뢰 피해는 빠져 있습니다.

[진용화 / 철원 동송농협 조합장 : 지뢰에 대한 것은 날씨 피해가 아니기 때문에 아마 그쪽(보험사)에서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뢰 탐지는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천 평 조금 넘는 논을 살피는데 걸리는 시간만 이틀에서 사흘 정도, 군 장병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 발병 이후 봄부터 시작된 멧돼지 포획과 방역, 여름엔 집중 호우, 가을엔 지뢰 탐지까지 연일 대민 지원입니다.

이웃 마을 사정도 비슷합니다.

한탄강 범람으로 물에 잠겼던 민통선 마을.

앞산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떠내려와 마을 어귀에서 이미 수십 발이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농민은 수확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논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상황에서 일단 지자체 지원 콤바인을 불렀습니다.

가을걷이가 아니라 전쟁터 나가는 기분.

주민들도 이곳을 떠나고 싶습니다.

집단 이주를 추진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돈입니다.

이주할 터를 알아보고 새로 집을 지어야 하는 데 정부 지원 비용은 가구당 1,600만 원에 불과합니다.

[김도국 / 강원 철원군 이길리 주민 : 아 가는 거야 물난리에 아주 지쳤으니까. 딴 데 가서 살고야 싶지. 근데 적당한 돈을 줘서 나가라 해야지. 저 집은 다 내버리고.]

반복되는 침수 피해에 떠내려온 지뢰까지.

접경지 민통선 북쪽 마을은 올해 유난히도 힘겨운 추석을 앞두고 있습니다.

YTN 지환[haji@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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