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도화선' 3·15 의거 재평가해야

'민주화 도화선' 3·15 의거 재평가해야

2020.03.15. 오후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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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한민국 첫 유혈 민주화운동인 3·15의거는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됐습니다.

하지만 4·19 혁명의 한 과정으로 인식되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태인 기자입니다.

[기자]
3.15의거 당시 시위가 가장 격렬했던 옛 마산 서성동.

민주화 깃발을 내걸었던 것을 기념하는 탑이 우뚝 섰습니다.

탑이 세워진 것은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3.15의거와 4·19혁명 정신을 잇겠다던 박정희 정권에 의해섭니다.

[남기문 / 3·15의거 기념사업회 국장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준공식을 했던 곳입니다. 3·15와 4·19 혁명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군사정변을 했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권이 이어지면서 3·15의거는 희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 독재에 맞서 일어선 시민들이 다시 군사정권에 저항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은진 / 경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 (군사정권은) 3·15의거 정신이 계승되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 한 거죠. 말하자면 민의가 그대로 표출되는 것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3·15 의거를 제대로 기억하거나 기념하지 못했죠.]

평가 절하된 3·15의거는 시간이 지나면서 4·19혁명의 한 과정으로 인식됐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한차례 진상조사가 있었을 뿐 역사적 의미는 퇴색했습니다.

3·15의거 당시 숨진 사람은 모두 14명, 다친 사람만 250여 명에 달하고 900여 명이 구금되거나 연행됐습니다.

하지만 공로자는 고작 61명에 머물렀고, 이마저도 '4월 혁명' 관련 공로자로 등록됐습니다.

[김장희 / 3·15의거 기념사업회장 : 3.15가 4.19의 일부에 사건으로 폄하되고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거든요. 3.15가 없었다면 4.19가 없어서 3.15는 시발점으로 독자적인 법적인 인정을 받아야 한다….]

3·15의거는 60주년을 맞으면서 국가기념일 제정 등 적지 않은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의 첫 유혈 민주화운동이었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만큼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YTN 오태인[otaein@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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