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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 증거 방공호...문화재로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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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9-08-15 00:42
앵커

일제 침탈과 강제 노역의 증거가 되는 방공호가 인천 일대에 산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체 방공호가 몇 개나 되는지 그 현황조차 정식으로 조사된 적이 없어서 일제의 탄압을 기억하는 문화재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기정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인천 답동의 '긴 담 모퉁이길'에 위치한 방공호입니다.

일본인 관료와 사업가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조성한 곳입니다.

폭염에도 한기가 느껴지는 내부는 강제 노역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곡괭이질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평소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는 이 방공호는 언덕 건너편 초등학교와 연결돼 있다는 소문만 전해질뿐 아직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구조물은 안전한지 아무런 공식 기록이 없습니다.

[윤효화 / 인천 신흥동 : 이 공간은 제가 알기로는 안에 길이가 80미터 정도가 되는데요, 일본사람들이 포탄이 떨어졌을 때 숨는 용도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인근에도 방공호가 있습니다.

1930년대 일본은 방공법을 제정해 도심지 군사기지 주변에 갱도를 뚫었습니다.

얼마나 더 깊은지는 누군가가 막아놓은 시멘트 벽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흑백사진에서 나타나듯 인천상륙작전 직후에는 미군의 탄약 창고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인천역사자료관에도 석실형 방공호가 있습니다.

일본인 저택이었던 이곳은 해방 후 시 박물관으로 사용됐고, 6.25전쟁 당시엔 포격으로부터 문화재를 임시보호하던 곳이었습니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준비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을 동원해 곳곳에 방공호를 팠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기초 조사를 통해 13곳의 방공호를 확인했지만, 얼마나 더 많은 방공호가 있을지, 그 규모가 어떤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유동현 / 인천시립박물관장 : 분명히 이 방공호는 일본인들 자국민을 위한 방공호였지만 공사는 분명히 우리 조선인들이 했을 겁니다. 교육의 장소로도 좀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일제의 침략과 수탈 등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는 네거티브 문화재 방공호.

원도심 개발로 알게 모르게 하나씩 매몰되거나 사라져가는 기억유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해당 지자체와 관련 기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해 보입니다.

YTN 이기정[leekj@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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