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점] 살기 불편한 혁신도시..."목욕탕 하나 없어요"

[중점] 살기 불편한 혁신도시..."목욕탕 하나 없어요"

2019.02.17. 오전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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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2007년부터 전국 11개 도시를 중심으로 '혁신도시'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혁신 도시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계기로 정부와 기업, 학교 등이 힘을 모아 미래형 지역 도시를 만드는 사업입니다.

저희 YTN 취재팀은 이 혁신도시가 계획만큼 제대로 자리 잡고 있는지 점검했는데요.

곳곳에서 공통적인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취재진이 발견한 혁신도시의 가장 큰 문제는 '살기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터는 옮겨왔지만 생활을 위한 시설과 환경은 만족스럽지 못해 '나 홀로 이주'와 '주말 유령 도시화'를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윤재, 지환 기자가 차례로 보도합니다.

[기자]
경북 김천에 조성된 혁신도시입니다.

번듯한 공공기관 옆은 온통 황톳빛 흙바닥입니다.

깔끔하게 새로 지은 상가에도 임대를 알리는 문구만 가득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파트는 가득 들어섰지만, 은행이나 병원 같은 생활 편의 시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형 상가도 이렇게 1층부터 텅 비어있는 곳이 많습니다.

애초 계획한 만큼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민이 적으니 개발이 더디고 건물 임대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겁니다.

그러다 보니 주민은 옷이나 생필품 사기조차 쉽지 않은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경북 김천 혁신도시 주민 : 누릴 게 없죠. 식당 같은 곳도 생겼다가 망하는 곳도 빨리빨리 생기고…. 병원도 거의 없어요. 소아과 하나 있고, 그냥 의원 같은 게 있고, 큰 종합병원 같은 게 없어요.]

대중교통도 상황이 심각합니다.

자가용이 없으면 문밖 나가기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신소현 / 경북 혁신도시 거주 :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대중교통이 너무 불편하고…. 목욕탕이 없어서 다른 곳으로 나가야 해서 불편합니다.]

주민 만족도가 높을 리 없습니다.

혁신도시란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교통이나 여가활동 등에 대한 만족도는 50점 아래이고, 전반적 만족도 역시 52점에 그쳤습니다.

지자체는 개선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 보지만, 예산의 벽이 높습니다.

[배창태 / 김천시 미래혁신전략과장 : 지자체 예산을 투입하기가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국비가 신속히 지원되고 하면 아무래도 정주 여건이 조기에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은 이 상태로는 지역 성장 거점으로 만든다는 정부 계획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나중규 / 대구경북연구원 미래전략실장 :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상업이나 쇼핑 시설, 동시에 문화공간이 조성돼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보니 가족 단위 이주가 많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 하는 진단도….]

정부는 지난해 10월 '혁신도시 시즌 2'라는 이름으로 종합 발전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무엇보다 살기 좋은 여건을 갖추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YTN 이윤재[lyj1025@ytn.co.kr]입니다.

[기자]
일요일 오전, 혁신도시를 찾았습니다.

문을 연 상가가 거의 없습니다.

거리엔 아예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지금은 정오쯤입니다.

이곳이 강원도 원주 혁신도시에서 가장 상가가 밀집된 지역인데요.

보시다시피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일요일 장사를 하지 않거나, 상가를 포기해 임대 현수막만 나부끼고 있습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임대료 없이 상가를 빌려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새로 지은 빌딩 전체가 텅 빈 곳도 거리에 수두룩합니다.

[원주 혁신도시 주변 상인 : 상가 들어와서 문 열잖아요. 오픈해요. 오픈 손님은 좀 받아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장사 어렵고 수입 안 되고 인건비도 요즘 많이 올라서 감당 못 하고 식구들끼리 하려니까 힘들고 그래서 얼마 안 가서 문 닫고….]

12개 공공기관이 입주한 원주 혁신도시 계획 인구는 3만 명,

하지만 초·중학교 한 곳, 병설 유치원 한 곳을 제외하곤 아직 사립 유치원도 없습니다.

직원들은 여전히 수도권에서 출·퇴근하거나 '나 홀로 이주'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혁신도시 조성 지역 사정은 전국이 매한가지입니다.

가족 전체가 이주하는 건 전체 직원의 절반도 안 됩니다.

배우자 직장이나 자녀 교육, 그리고 순환근무제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사람 없는 빈 도시가 되고 있습니다.

[원주 혁신도시 주변 상인 : 금요일 되면 (공공기관 직원) 70~80% 이상이 다 (서울) 올라가요. 금요일 저녁부터 휑해요. 낮에도 그렇고.]

원치 않던 기러기 아빠, 주말 부부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불만도 큽니다.

[이주 공공기관 직원 : 오히려 본인이 고생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부모님이 자녀를 맡아주신다거나 그랬을 때는 아무래도 여기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연고가 없다 보니까.]

혁신도시 정책이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가슴 아픈 정책'이 되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교통이나 의료, 주거시설이 포함된 종합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여기에 교육 특구 지정이나 세제혜택 등 파격적인 정부 지원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과 인프라 몰아주기 논란, 이에 따른 부동산 투기 등으로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YTN 지환[haji@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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