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화마에 쓰러진 고려인 4세 아이들

[취재N팩트] 화마에 쓰러진 고려인 4세 아이들

2018.10.22. 오후 12:05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온 고려인 가족이 머물던 원룸 건물에서 불이 나 어린 남매가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밖에 나간 사이 불이 나는 바람에 우리말이 서툰 아이들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이 사건 취재한 기자와 함께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종호 기자!

우선 화재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난 불입니까?

[기자]
이번 화재는 토요일인 지난 20일 저녁 7시 40분쯤 났습니다.

경남 김해시 서상동에 있는 원룸 건물에서인데요.

신고를 받고 소방차가 출동해 20분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가연성 소재인 천장 마감재와 외벽 마감재가 순식간에 타면서 인명 피해가 컸습니다.

소방관들이 출동하자마자 2층으로 진입하려 했는데 화염이 심해 2층으로 사다리를 놓고 갈 수밖에 없어 구조 작업이 지체됐습니다.

화재 현장 계단 공간에서 발견된 우즈베키스탄 남매가 숨지고 복도에서 발견된 형제 2명은 중태에 빠졌습니다.

건물에서 대피하거나 구조된 다른 6명도 연기를 마셨는데 모두 경상입니다.

[앵커]
2명이 숨졌고 2명이 중태라고 했는데요.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기자]
원룸 2층 복도에서 발견돼 경남 창원시에 있는 화상 전문 병원으로 옮겨진 우즈베키스탄인 12살 소년 둘은 여전히 중태입니다.

화상이 심각하고 연기를 많이 마셔 의사들은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거로 보고 있습니다.

이 두 소년은 같은 원룸에서 같이 생활하던 이종사촌 형제입니다.

두 소년과 화재 당시 함께 방에 있던 4살 A 군과 올해 15살인 A 군 누나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 구간, 계단참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는데, A 군은 병원 이송 중에 숨졌고 누나는 어제 오후 4시 20분쯤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4명 관계를 자세히 정리하면 A 군과 누나 그리고 12살 소년 한 명이 한가족이고 다른 12살 소년은 이 아이들의 이종사촌입니다.

부모를 포함해 모두 7명이 방이 두 개 딸린 이른바 투룸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앵커]
불이 났을 때 4명이 모두 한집에 있었다고 했는데 모두 복도나 계단참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어른들은 없었습니까?

[기자]
어른 모두 집에 없었습니다.

A 군 부모는 모임이 있어서 나갔고 A 군 이모, 그러니까 A 군 엄마의 언니는 장을 보러 나가면서 집에는 아이들만 남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거로 보이는 불이 났습니다.

아이들 가운데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여서 언제 화재를 인지했고 어떻게 대피하려 했는지는 아이들 목소리가 아니라 정황을 통해서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요.

일단 당시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아 무슨 일이 났는지 늦게 파악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또, 건물 밖에서 불이 났다며 대피하라는 외침이 있었지만, 듣지 못했거나 들었다고 해도 무슨 말인지 몰랐던 거로 보입니다.

실제로 피해자 가족을 아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여성은 평소 아이들은 보니 가장 어린 A 군만 우리말을 몇 마디 따라 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못하는 거로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화재 사실을 알고 1층으로 대피하려 했지만 모두 연기와 화염에 막혀 쓰러졌습니다.

[앵커]
아이들이 화마에 쓰러졌다는 소식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부모가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온 고려인 3세라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4살 A 군 부모는 지난 2016년에 가족들 데리고 입국했고 A 군 이모 가족은 올해 7월에 왔습니다.

부모들은 김해지역 공장에서 일해온 거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자녀가 두 명이나 숨진 A 군 부모는 우리나라에서 장례를 치를 돈도 없고 겨를도 없어 내일 아이들을 화장한 뒤 우즈베키스탄에 돌아가면 거기서 장례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주변에 말했습니다.

숨진 남매 시신은 현재 김해 중앙병원에 안치돼 있습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우즈베키스탄으로 완전히 돌아갈 마음을 먹었는데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은 고국이 가족에게는 기회의 땅이 아니라 절망의 땅이 된 겁니다.

아이들이 다녔던 교회나 우즈베키스탄 출신 지인들이 도움을 주고는 있지만, 외국인 신분이다 보니 법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가족들이 가뜩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힘들게 보내고 있습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왜 불이 났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제 현장감식이 진행됐죠?

[기자]
그렇습니다. 1층 주차장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목격자가 많았고 실제로 불이 퍼진 모습을 살펴도 그렇게 볼 수 있어서 어제 감식은 1층 주차장을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주차장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현관 옆에 있던 화물차 쪽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건데요.

합동 감식에서는 주차장 천장에 과전류가 흘러 불이 시작한 거로 보인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전선에 과전류가 흘러 천장 마감재를 태우면서 불이 시작됐고 건물과 차량으로 번지며 순식간에 연기와 화염이 퍼졌다는 겁니다.

해당 건물은 1층에 기둥만 있는 필로티 구조이고 외벽은 가연성 소재 위에 석고나 시멘트로 마감하는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됐습니다.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어제 현장 주변에서는 주차장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목격자도 만날 수 있었는데 경찰이 조사해 보니 화재와 관련된 정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불에 탄 CCTV 복구해 더 자세하게 화재 원인을 살필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YTN 김종호[hokim@ytn.co.kr]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