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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강진원 앵커, 박상연 앵커
■ 출연 : 박완용 / 럭비 국가대표, 장용흥 / 럭비 국가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5전 5패, 참가국 12개 나라 중 12위.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우리 럭비 대표팀은 꼴찌에 머물렀지만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땀과 투혼 때문이겠죠. 누구보다 큰 응원과 박수를 받은 럭비대표팀 선수 두 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박완용 선수, 장용흥 선수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 앞서 방송하기 전에 여쭤보니까 이렇게 생방송으로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편하게 옆에 있는 물도 드시면서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렸는데 두 분은 먼저 귀국을 하신 거죠?
[박완용]
저희가 7월 28일날 경기를 마치고 29일날 귀국했습니다.
[앵커]
귀국하시고 나서 격리를 하신 겁니까?
[박완용]
저희는 격리 면제 대상자라서...
[앵커]
자택으로 가셔서 가족들과 만나셨습니까? 맛있는 거 많이 해 주셨어요, 가족분들이?
[박완용]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처음으로 삼겹살이나 이런 것도 많이 먹었습니다.
[앵커]
이번 도쿄올림픽이 사실 한국 럭비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였는데 올림픽 무대 밟아보니까 어떻던가요?
[장용흥]
일단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설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저는.
[앵커]
신나는 마음이 있었군요. 박완용 선수는 어떠셨어요?
[박완용]
저희가 98년 만에 올림픽에 진출한 것이기 때문에 선수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이름 가지고 말씀드리기가 그렇기는 한데 지금 박완용 선수 같은 경우는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린 거여서 이름값 하는, 애국하는 완용이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나오더라고요. 어떠셨습니까?
[박완용]
이름보다는 국가대표라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경기나 훈련에서 조금 더 최선을 다해서 임했던 것 같습니다.
[앵커]
장용흥 선수는 현재 일본 1부리그인 톱리그에서 뛰고 계신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뜻깊은 대회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떠셨나요?
[장용흥]
네, 일본에서 하는 대회인 만큼 모두에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앵커]
좀 더 눈에 익은, 마주치던 선수들이 많던가요?
[장용흥]
저희 팀 소속 2명도 일본 대표팀에 있는데 마지막에 일본이랑 시합하면서 같이 뛰었습니다.
[앵커]
같이 얘기 나누셨나요?
[장용흥]
네, 많이 나눴는데 기분이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앵커]
어떻게 이상하셨어요?
[장용흥]
오늘 수고했고 빨리 일본 와서 놀자고...
[앵커]
일단 이번 대회 우리 대표팀 성적만 놓고 보면 5전 5패의 최하위를 기록을 하기는 했습니다. 세계 벽을 느꼈다고 봐야 될까요? 어떻습니까?
[박완용]
일단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합을 했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한데 저희가 또 경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것을 통해서 저희가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한다고 하면 세계의 벽은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박수를 받았잖아요.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박완용]
저희가 올림픽을 도전했다는 것 자체에서 많은 분들이 응원을 많이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앵커]
요즘 SNS나 인터넷 기사나 이런 데 보면 댓글들이 많이 달리지 않습니까? 거기에 응원하는 글들도 많던데 거기서 기억나는 댓글이 있을까요?
[박완용]
팀코리아를 응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런 얘기도 있고 힘내세요. 응원하겠습니다. 항상 그런 얘기를, 저희도 경기 전에 그걸 보고 나가서 더 힘을 얻고 했습니다.
[앵커]
댓글을 보고 경기에 나가셨나요?
[장용흥]
네, 보고 나가면 힘이 돼서 보고 나갔던 것 같아요.
[앵커]
지금 첫 상대가 뉴질랜드였지 않습니까? 뉴질랜드가 시청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축구로 치면 브라질, 스페인, 독일 같은 강팀인 거죠?
[장용흥]
네, 최강국이죠.
[앵커]
지금 보니까 뉴질랜드 같은 경우에 영연방 국가이지 않습니까? 이게 럭비가 있고 미식축구가 있고 또 축구가 있고 어떻게 보면 축구라는 하나의 종목에서 파생돼 나온 건데 전통적으로 영연방 국가들이 럭비가 강한 겁니까?
[박완용]
아무래도 영국 쪽에서 럭비가 시초가 됐기 때문에 영연방 국가에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앵커]
럭비와 미식축구, 그러니까 미국에서 하는 미식축구와 차이가 있습니까? 어떤 게 가장 큰 차이입니까?
[박완용]
일단 볼부터 다르고요. 그리고 미식축구는 앞으로 패스를 할 수 있는데 저희 럭비 같은 경우는 뒤로나 옆으로밖에 패스할 수 없습니다.
[앵커]
저희가 그렇게 미식축구 말씀을 드린 게 이번에 올림픽에서 트라이라는 걸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트라이가 쉽게 와 닿지 않아서 찾아보니까 미식축구로 치면 터치다운 같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건지 설명을 해 주시죠. 어떤 의미가 있는지? 트라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장용흥]
이번 올림픽 첫 득점이기도 하고...
[앵커]
지금 화면 보시는 것처럼 공을 잡고 어떻게 보면.
[박완용]
미식축구 같은 경우는 공이 입구 안에 들어가면 득점이 인정되지만 저희는 트라이라고 인골라인 뒤쪽에 공을 찍어야 그게 득점으로 인정됩니다.
[앵커]
지금 저희가 보내드린 장면이 장용흥 선수가 패스를 건넸고 트라이에 성공한 그 장면인 거죠?
[앵커]
이건 예선 때 장면입니까?
[장용흥]
맞습니다.
[앵커]
이 당시에 기분이 어떠셨나요?
[장용흥]
일단 너무 멍했습니다. 저희가 올림픽에 출전을 확정 짓는 순간이라서 너무 기쁘기도 했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앵커]
저 당시에 감독님은 어떤 말씀을 해 주시던가요?
[박완용]
저때는 다 너무 기뻐서 얘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너무 잘했고 수고했다는 얘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앵커]
지금 보시는 것처럼 트라이를 시도하는 과정, 그러니까 저렇게 공을 잡고 골대까지 뛰어가야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쉽지 않은 게 상대 선수들이 체격 조건이 좋고 이런 걸 다 뚫고 지나가야 되는 거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른 거죠. 점수도 가장 높다고 하더라고요.
[장용흥]
트라이를 하면 5점인데 홍콩 같은 경우에는 귀화 선수들이 많다 보니까 피지컬에서 밀렸는데 저희가 노력해서 트라이까지 연결된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화면을 통해 보시는 것처럼 이 럭비라는 운동이 과격하지 않습니까? 신체적으로 많이 부딪치고 그리고 팀원들의 여러 도움, 협업이 중요한 것 같은데 그게 또 럭비 정신이라면서요?
[박완용]
저희 럭비 득점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개인기가 아닌 서로 같은 팀원들의 희생과 협력이 있어야 득점을 해서 나간다는 뜻입니다.
[앵커]
저희가 일반적으로 스크럼을 짠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게 또 럭비에서 나온 용어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건가요? 스크럼, 함께 동료들과 다른 선수들이 그 기싸움을 하는 걸 얘기하는 겁니까?
[장용흥]
3:3으로 볼을 중간에 놓고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상황을 스크럼이라고 합니다.
[앵커]
동료들끼리 어떻게 보면 몸이 하나가 돼서, 그게 또 럭비 정신이라는 말씀이신 거죠? 협력을 강조해 주셨는데 원팀을 중요시하고 이 원팀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 이런 것까지 해 봤다, 이런 게 있을까요?
[박완용]
유소년 선수들처럼 훈련이나 식사나 그다음에 사우나 같은 데도 다 같이 한 번에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이 식사하고 그렇게 같이 서로에 대해서 조금 더 이 사람의 특징이나 성격을 좀 더 파악할 수 있게끔 많이 했습니다.
[앵커]
다같이 움직였군요. 혹시 훈련할 때 이럴 때 벌금 제도 같은 게 있었다고 하던데 그건 뭔가요?
[박완용]
일단 체중 조절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야식 같은 걸 금지하고 시간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시간 1분에 1000원, 그리고 많게는 10분에 1만 원 정도 이렇게 해서 그런 제도로 했었습니다.
[앵커]
박 선수의 인터뷰를 들어오기 전에 찾아보니까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표현이 있더라고요. 그 이유가 있습니까?
[박완용]
같은 장소에서 경기는 할 수 있지만 같은 멤버와 같은 시간에 또 다른 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한 경기, 한 경기가 되게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장 선수에게도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었습니까?
[장용흥]
저는 다시 만들고 싶어요, 그런 기회를.
[앵커]
3년 뒤에 파리에서 만들 시간이라는.
[장용흥]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앵커]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믿고요. 박완용 선수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동안이어서 놀랐는데 올해가 만 37세 맞습니까? 이번 올림픽을 위해서 2세 계획도 미루고 준비하셨다고요?
[박완용]
첫 출전이고 큰 무대니까 아내가 배려를 많이 해 줬습니다. 경기랑 훈련에 열심히 임하라고 그렇게 배려해 준 것 같습니다.
[앵커]
이번 올림픽을 거치면서 그동안 우리의 스포츠를 바라보는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라는 인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결과를 중시했는데 지금은 그 과정, 그리고 선수들의 노력, 투혼을 중시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그걸 실감하십니까?
[장용흥]
TV에서 저희 경기를 진행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변화가 됐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꼴찌라는 그런 단어도 작은 변화에서부터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 단어가 마음에 드세요, 아름다운 꼴찌?
[장용흥]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저희가 준비한 과정들을 생각해 주신 것 같아서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앵커]
아름다운 꼴찌라고는 하지만 세계에서 12위인 거잖아요. 세계 12위 나라의 선수들인 거고요. 국내 럭비 현실이 많이 열악하다고 들었는데 어떻습니까?
[박완용]
실업팀은 3개가 있고요. 지금 한국전력, 포스코, 현대글로비스 이렇게 세 팀이 있고 등록 선수는 900명 정도 이렇게 있습니다.
[앵커]
이게 이렇게 들으면 잘 와 닿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박완용]
가까운 일본 같은 경우에는 10만 명 정도가 선수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앵커]
실제로 장 선수는 일본에서 뛰고 계시지 않습니까? 일본의 럭비 환경은 어떻습니까?
[장용흥]
그라운드나 선수 수도 많다 보니까 경기 수나 실력 차이가 조금 나는 것 같습니다.
[앵커]
또 학교, 그러니까 유소년부터 많은 럭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층 자체가 상대적으로 두껍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겁니까?
[앵커]
그만큼 훈련 환경도 좋지 않다고 봐야 하나요?
[박완용]
일본 같은 경우는 전용구장이 워낙 많이 있기는 한데 저희 한국 같은 경우는 전용구장이 거의 3개 정도밖에 없는데 이번같이 코로나 팬데믹 같은 게 왔을 경우에 축구 같은 경우에 파주 경기장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훈련을 할 수 있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훈련 장소가 마땅히 없어서 진천선수촌 외에는 훈련할 수 없는 장소가 따로 없습니다.
[앵커]
앞서 장 선수가 3년 뒤 파리에서 다시 만날 시간을 기대해도 된다, 이런 취지로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나라 럭비 환경 자체도 개선을 해야 될 것 같아요. 현장에서 선수로서 봤을 때는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장용흥]
일단 저는 많은 선수들이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팀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현재 지금 실업팀 포함해서 유소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저변 자체가 얕다는 말씀인 거죠?
[박완용]
저변 확대가 제일 절실할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또 보니까 올림픽에서는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평상시에는 무궁화를 단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떤 말입니까?
[박완용]
평상시에는 저희가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경우에만 국기를 달고 있고요. 그다음에 평상시에는 국가를 상징하는 마크 앰블럼을 달고 있습니다.
[앵커]
그 앰블럼 보면 왼쪽에 무궁화가 있고 오른쪽에 호랑이가 있는 그 앰블럼 말씀하시는 건가요? 거기에 보면 코리아 럭비 신스 1923년,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걸 달고 있으면 자부심도 커질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박완용]
이번에 올림픽에서는 자기의 이름을 등번호로 달 수 있어서 앰블럼도 그렇지만 자기 이름을 달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이 더 뭉클한 것도 있고 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올림픽 때는 태극기를 달고 평상시에는 무궁화와 호랑이를 달고. 결국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들을 달고 계신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만큼 어떻게 보면 럭비라는 운동 자체가 팀원들과의 팀워크, 협업을 강조하면서 그 정신의 연장선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장용흥]
네.
[앵커]
알겠습니다. 사실 이번에 올림픽 1년 미뤄진 거잖아요. 처음에 1년 연기 결정이 났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박완용]
저희가 진짜 어렵게 출전권을 땄는데 그게 사라질까 봐 마음이 약간 무거웠다고 할까...
[앵커]
아예 취소 얘기도 많이 나왔으니까요.
[장용흥]
취소될 수도 있는 불안감이 있으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앵커]
지금 두 분 다 생방송이 처음 이어서 이렇게 긴장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물 한 잔씩 목을 축이시죠. 앞서 도쿄올림픽은 어제 끝났지만 그 전에 미리 귀국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가족분들과 여러 이야기들 또 나누셨을 테고 앞서 삼겹살 얘기도 했지만 응원해 주신 가족분들 그리고 우리 국민분들에게 또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실 것 같아요.
[장용흥]
일단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저희 많은 응원을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한국 럭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금부터라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완용]
저도 럭비팀을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드리고요. 저희 같은 경우 국내 럭비리그가 또 시작을 하니까 이렇게 끝났지만 국내 럭비리그도 많은 관심과 응원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TV에서 뵀던 두 분을 또 이렇게 실제로 뵈니까 더 든든하고 우리 한국 럭비가 앞으로 더 승승장구하리라는 기대감을 또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럭비대표팀의 박완용 선수, 장용흥 선수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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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박완용 / 럭비 국가대표, 장용흥 / 럭비 국가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5전 5패, 참가국 12개 나라 중 12위.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우리 럭비 대표팀은 꼴찌에 머물렀지만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땀과 투혼 때문이겠죠. 누구보다 큰 응원과 박수를 받은 럭비대표팀 선수 두 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박완용 선수, 장용흥 선수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 앞서 방송하기 전에 여쭤보니까 이렇게 생방송으로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편하게 옆에 있는 물도 드시면서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렸는데 두 분은 먼저 귀국을 하신 거죠?
[박완용]
저희가 7월 28일날 경기를 마치고 29일날 귀국했습니다.
[앵커]
귀국하시고 나서 격리를 하신 겁니까?
[박완용]
저희는 격리 면제 대상자라서...
[앵커]
자택으로 가셔서 가족들과 만나셨습니까? 맛있는 거 많이 해 주셨어요, 가족분들이?
[박완용]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처음으로 삼겹살이나 이런 것도 많이 먹었습니다.
[앵커]
이번 도쿄올림픽이 사실 한국 럭비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였는데 올림픽 무대 밟아보니까 어떻던가요?
[장용흥]
일단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설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저는.
[앵커]
신나는 마음이 있었군요. 박완용 선수는 어떠셨어요?
[박완용]
저희가 98년 만에 올림픽에 진출한 것이기 때문에 선수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이름 가지고 말씀드리기가 그렇기는 한데 지금 박완용 선수 같은 경우는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린 거여서 이름값 하는, 애국하는 완용이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나오더라고요. 어떠셨습니까?
[박완용]
이름보다는 국가대표라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경기나 훈련에서 조금 더 최선을 다해서 임했던 것 같습니다.
[앵커]
장용흥 선수는 현재 일본 1부리그인 톱리그에서 뛰고 계신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뜻깊은 대회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떠셨나요?
[장용흥]
네, 일본에서 하는 대회인 만큼 모두에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앵커]
좀 더 눈에 익은, 마주치던 선수들이 많던가요?
[장용흥]
저희 팀 소속 2명도 일본 대표팀에 있는데 마지막에 일본이랑 시합하면서 같이 뛰었습니다.
[앵커]
같이 얘기 나누셨나요?
[장용흥]
네, 많이 나눴는데 기분이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앵커]
어떻게 이상하셨어요?
[장용흥]
오늘 수고했고 빨리 일본 와서 놀자고...
[앵커]
일단 이번 대회 우리 대표팀 성적만 놓고 보면 5전 5패의 최하위를 기록을 하기는 했습니다. 세계 벽을 느꼈다고 봐야 될까요? 어떻습니까?
[박완용]
일단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합을 했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한데 저희가 또 경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것을 통해서 저희가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한다고 하면 세계의 벽은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박수를 받았잖아요.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박완용]
저희가 올림픽을 도전했다는 것 자체에서 많은 분들이 응원을 많이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앵커]
요즘 SNS나 인터넷 기사나 이런 데 보면 댓글들이 많이 달리지 않습니까? 거기에 응원하는 글들도 많던데 거기서 기억나는 댓글이 있을까요?
[박완용]
팀코리아를 응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런 얘기도 있고 힘내세요. 응원하겠습니다. 항상 그런 얘기를, 저희도 경기 전에 그걸 보고 나가서 더 힘을 얻고 했습니다.
[앵커]
댓글을 보고 경기에 나가셨나요?
[장용흥]
네, 보고 나가면 힘이 돼서 보고 나갔던 것 같아요.
[앵커]
지금 첫 상대가 뉴질랜드였지 않습니까? 뉴질랜드가 시청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축구로 치면 브라질, 스페인, 독일 같은 강팀인 거죠?
[장용흥]
네, 최강국이죠.
[앵커]
지금 보니까 뉴질랜드 같은 경우에 영연방 국가이지 않습니까? 이게 럭비가 있고 미식축구가 있고 또 축구가 있고 어떻게 보면 축구라는 하나의 종목에서 파생돼 나온 건데 전통적으로 영연방 국가들이 럭비가 강한 겁니까?
[박완용]
아무래도 영국 쪽에서 럭비가 시초가 됐기 때문에 영연방 국가에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앵커]
럭비와 미식축구, 그러니까 미국에서 하는 미식축구와 차이가 있습니까? 어떤 게 가장 큰 차이입니까?
[박완용]
일단 볼부터 다르고요. 그리고 미식축구는 앞으로 패스를 할 수 있는데 저희 럭비 같은 경우는 뒤로나 옆으로밖에 패스할 수 없습니다.
[앵커]
저희가 그렇게 미식축구 말씀을 드린 게 이번에 올림픽에서 트라이라는 걸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트라이가 쉽게 와 닿지 않아서 찾아보니까 미식축구로 치면 터치다운 같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건지 설명을 해 주시죠. 어떤 의미가 있는지? 트라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장용흥]
이번 올림픽 첫 득점이기도 하고...
[앵커]
지금 화면 보시는 것처럼 공을 잡고 어떻게 보면.
[박완용]
미식축구 같은 경우는 공이 입구 안에 들어가면 득점이 인정되지만 저희는 트라이라고 인골라인 뒤쪽에 공을 찍어야 그게 득점으로 인정됩니다.
[앵커]
지금 저희가 보내드린 장면이 장용흥 선수가 패스를 건넸고 트라이에 성공한 그 장면인 거죠?
[앵커]
이건 예선 때 장면입니까?
[장용흥]
맞습니다.
[앵커]
이 당시에 기분이 어떠셨나요?
[장용흥]
일단 너무 멍했습니다. 저희가 올림픽에 출전을 확정 짓는 순간이라서 너무 기쁘기도 했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앵커]
저 당시에 감독님은 어떤 말씀을 해 주시던가요?
[박완용]
저때는 다 너무 기뻐서 얘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너무 잘했고 수고했다는 얘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앵커]
지금 보시는 것처럼 트라이를 시도하는 과정, 그러니까 저렇게 공을 잡고 골대까지 뛰어가야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쉽지 않은 게 상대 선수들이 체격 조건이 좋고 이런 걸 다 뚫고 지나가야 되는 거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른 거죠. 점수도 가장 높다고 하더라고요.
[장용흥]
트라이를 하면 5점인데 홍콩 같은 경우에는 귀화 선수들이 많다 보니까 피지컬에서 밀렸는데 저희가 노력해서 트라이까지 연결된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화면을 통해 보시는 것처럼 이 럭비라는 운동이 과격하지 않습니까? 신체적으로 많이 부딪치고 그리고 팀원들의 여러 도움, 협업이 중요한 것 같은데 그게 또 럭비 정신이라면서요?
[박완용]
저희 럭비 득점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개인기가 아닌 서로 같은 팀원들의 희생과 협력이 있어야 득점을 해서 나간다는 뜻입니다.
[앵커]
저희가 일반적으로 스크럼을 짠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게 또 럭비에서 나온 용어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건가요? 스크럼, 함께 동료들과 다른 선수들이 그 기싸움을 하는 걸 얘기하는 겁니까?
[장용흥]
3:3으로 볼을 중간에 놓고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상황을 스크럼이라고 합니다.
[앵커]
동료들끼리 어떻게 보면 몸이 하나가 돼서, 그게 또 럭비 정신이라는 말씀이신 거죠? 협력을 강조해 주셨는데 원팀을 중요시하고 이 원팀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 이런 것까지 해 봤다, 이런 게 있을까요?
[박완용]
유소년 선수들처럼 훈련이나 식사나 그다음에 사우나 같은 데도 다 같이 한 번에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이 식사하고 그렇게 같이 서로에 대해서 조금 더 이 사람의 특징이나 성격을 좀 더 파악할 수 있게끔 많이 했습니다.
[앵커]
다같이 움직였군요. 혹시 훈련할 때 이럴 때 벌금 제도 같은 게 있었다고 하던데 그건 뭔가요?
[박완용]
일단 체중 조절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야식 같은 걸 금지하고 시간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시간 1분에 1000원, 그리고 많게는 10분에 1만 원 정도 이렇게 해서 그런 제도로 했었습니다.
[앵커]
박 선수의 인터뷰를 들어오기 전에 찾아보니까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표현이 있더라고요. 그 이유가 있습니까?
[박완용]
같은 장소에서 경기는 할 수 있지만 같은 멤버와 같은 시간에 또 다른 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한 경기, 한 경기가 되게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장 선수에게도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었습니까?
[장용흥]
저는 다시 만들고 싶어요, 그런 기회를.
[앵커]
3년 뒤에 파리에서 만들 시간이라는.
[장용흥]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앵커]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믿고요. 박완용 선수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동안이어서 놀랐는데 올해가 만 37세 맞습니까? 이번 올림픽을 위해서 2세 계획도 미루고 준비하셨다고요?
[박완용]
첫 출전이고 큰 무대니까 아내가 배려를 많이 해 줬습니다. 경기랑 훈련에 열심히 임하라고 그렇게 배려해 준 것 같습니다.
[앵커]
이번 올림픽을 거치면서 그동안 우리의 스포츠를 바라보는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라는 인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결과를 중시했는데 지금은 그 과정, 그리고 선수들의 노력, 투혼을 중시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그걸 실감하십니까?
[장용흥]
TV에서 저희 경기를 진행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변화가 됐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꼴찌라는 그런 단어도 작은 변화에서부터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 단어가 마음에 드세요, 아름다운 꼴찌?
[장용흥]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저희가 준비한 과정들을 생각해 주신 것 같아서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앵커]
아름다운 꼴찌라고는 하지만 세계에서 12위인 거잖아요. 세계 12위 나라의 선수들인 거고요. 국내 럭비 현실이 많이 열악하다고 들었는데 어떻습니까?
[박완용]
실업팀은 3개가 있고요. 지금 한국전력, 포스코, 현대글로비스 이렇게 세 팀이 있고 등록 선수는 900명 정도 이렇게 있습니다.
[앵커]
이게 이렇게 들으면 잘 와 닿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박완용]
가까운 일본 같은 경우에는 10만 명 정도가 선수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앵커]
실제로 장 선수는 일본에서 뛰고 계시지 않습니까? 일본의 럭비 환경은 어떻습니까?
[장용흥]
그라운드나 선수 수도 많다 보니까 경기 수나 실력 차이가 조금 나는 것 같습니다.
[앵커]
또 학교, 그러니까 유소년부터 많은 럭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층 자체가 상대적으로 두껍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겁니까?
[앵커]
그만큼 훈련 환경도 좋지 않다고 봐야 하나요?
[박완용]
일본 같은 경우는 전용구장이 워낙 많이 있기는 한데 저희 한국 같은 경우는 전용구장이 거의 3개 정도밖에 없는데 이번같이 코로나 팬데믹 같은 게 왔을 경우에 축구 같은 경우에 파주 경기장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훈련을 할 수 있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훈련 장소가 마땅히 없어서 진천선수촌 외에는 훈련할 수 없는 장소가 따로 없습니다.
[앵커]
앞서 장 선수가 3년 뒤 파리에서 다시 만날 시간을 기대해도 된다, 이런 취지로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나라 럭비 환경 자체도 개선을 해야 될 것 같아요. 현장에서 선수로서 봤을 때는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장용흥]
일단 저는 많은 선수들이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팀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현재 지금 실업팀 포함해서 유소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저변 자체가 얕다는 말씀인 거죠?
[박완용]
저변 확대가 제일 절실할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또 보니까 올림픽에서는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평상시에는 무궁화를 단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떤 말입니까?
[박완용]
평상시에는 저희가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경우에만 국기를 달고 있고요. 그다음에 평상시에는 국가를 상징하는 마크 앰블럼을 달고 있습니다.
[앵커]
그 앰블럼 보면 왼쪽에 무궁화가 있고 오른쪽에 호랑이가 있는 그 앰블럼 말씀하시는 건가요? 거기에 보면 코리아 럭비 신스 1923년,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걸 달고 있으면 자부심도 커질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박완용]
이번에 올림픽에서는 자기의 이름을 등번호로 달 수 있어서 앰블럼도 그렇지만 자기 이름을 달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이 더 뭉클한 것도 있고 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올림픽 때는 태극기를 달고 평상시에는 무궁화와 호랑이를 달고. 결국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들을 달고 계신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만큼 어떻게 보면 럭비라는 운동 자체가 팀원들과의 팀워크, 협업을 강조하면서 그 정신의 연장선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장용흥]
네.
[앵커]
알겠습니다. 사실 이번에 올림픽 1년 미뤄진 거잖아요. 처음에 1년 연기 결정이 났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박완용]
저희가 진짜 어렵게 출전권을 땄는데 그게 사라질까 봐 마음이 약간 무거웠다고 할까...
[앵커]
아예 취소 얘기도 많이 나왔으니까요.
[장용흥]
취소될 수도 있는 불안감이 있으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앵커]
지금 두 분 다 생방송이 처음 이어서 이렇게 긴장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물 한 잔씩 목을 축이시죠. 앞서 도쿄올림픽은 어제 끝났지만 그 전에 미리 귀국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가족분들과 여러 이야기들 또 나누셨을 테고 앞서 삼겹살 얘기도 했지만 응원해 주신 가족분들 그리고 우리 국민분들에게 또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실 것 같아요.
[장용흥]
일단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저희 많은 응원을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한국 럭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금부터라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완용]
저도 럭비팀을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드리고요. 저희 같은 경우 국내 럭비리그가 또 시작을 하니까 이렇게 끝났지만 국내 럭비리그도 많은 관심과 응원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TV에서 뵀던 두 분을 또 이렇게 실제로 뵈니까 더 든든하고 우리 한국 럭비가 앞으로 더 승승장구하리라는 기대감을 또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럭비대표팀의 박완용 선수, 장용흥 선수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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