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대한민국 스포츠 공장'에서는

[人터view] '대한민국 스포츠 공장'에서는

2020.07.18. 오전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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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체육계 인권 문제가 다시 불거졌습니다.

전문가들은 공장처럼 메달만 찍어내는 현재의 시스템으론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사람, 공간, 시선을 전하는 YTN 인터뷰.

오늘은 엘리트 체육의 현주소를 되짚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살펴봤습니다.

[정용철 / 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 : 공장에서 기계가 오작동을 하면 지금까지는 그 공장의 공정을 멈추고 어떻게 잘못됐나를 찾아봤다면 이제부터는 찍어내는 공장 자체가 오히려 문제의 출발점이 아닐까 찾아봐야 될 거 같고요.]

[여준형 / 前 쇼트트랙 국가대표·젊은빙상인연대 대표 : 저희는 운동하는 기계, 메달 따는 기계처럼 키워진 것 같아요. 지도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을 했고 '내 말 들으면 메달을 딸 수 있다. 내 말 들으면 잘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운동을 해왔습니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그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데 선수들 누구나 승자가 되길 원한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고된 훈련을 참는다.

하지만 그동안 선수들이 참은 건 훈련만이 아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운동선수 인권실태조사에서 초·중·고등학생 선수 57,557명 중 34.2%인 19,687명이 언어적, 신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대학생 선수 4,924명 중 73.1%인 3,600명이, 실업 선수 1,251명 중 60.7%인 759명이, 장애인 선수 1,554명 중 52.2%인 811명이 폭력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준형 / 前 쇼트트랙 국가대표·젊은빙상인연대 대표 : 제가 선수 시절에도 피해를 받은 선수가 어디 가서 얘기할 곳을 못 찾는 것을 봤고 이런 걸 외부에서보다는 현장에서 변화해야 하고 그럼 현장을 제일 잘 아는 저희들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 젊은빙상인연대를 만들게 됐습니다.]

메달 따는 기계로 여겨졌던 선수들이 자신이 겪은 불합리함에 저항하며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여준형 / 前 쇼트트랙 국가대표·젊은빙상인연대 대표 : 빙상인연대를 찾아오시는 피해자 학부모님들 선수들이 꼭 이런 얘기를 물어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맞으면서 해야 하는지 꼭 이렇게 해서 메달을 따는 게 맞는 건지.]

이런 질문에 사회 각계각층에선 엘리트 체육 시스템 개선,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 체육 단체 구조 개편 등의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체육계 권력층은 엘리트 체육 죽이기라며 반발했다.

[정용철 / 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 : 국가대표, 올림픽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신성한 것이고 이것을 흠집을 내거나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종의 심리적인 관성이나 어떤 습관들이 있는 것 같고요. 오랫동안 엘리트 스포츠 가치체계에 살아온 사람일수록 이것들을 바꿔내고 다른 가치들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나.]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체육계가 변화를 거부하는 동안 '스포츠 공장'은 '오작동'을 반복했고 결국 한 청춘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이런 지경에 체육계 수장은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이기흥 / 대한체육회장 (2019년 1월 대한체육회 이사회) :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기흥 / 대한체육회장 (2019년 2월 진천 선수촌 훈련 개시식) : 많은 선수와 지도자 여러분께도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기흥 / 대한체육회장 (2020년 7월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 : 체육계의 대표로서 사과의 말씀을 또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대로라면 이 나라 스포츠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2016년 66,634명이었던 전국 초·중·고 운동부 선수는 2020년 현재 11% 줄어 59,252명이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문을 닫은 초·중·고 운동부는 전국에 총 392곳이다.

[정용철 / 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 : 엘리트 스포츠는 앞으로 한 10년 내에 우리가 만약에 아무것도 안 한다면 저절로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저는 보고 있어요. 지금 이 시점에서 체육계가 할 일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게 아니라 한 선수가 생명을 버릴 정도로 강력한 메시지를 준 것에 응답을 해서 우리나라 체육계 시스템을 공장식 시스템에서 영구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을 포기하며 남긴 故 최숙현 선수의 마지막 호소에 더 늦기 전에 답해야 한다.


버트너/ 홍성노[seong0426@ytn.co.kr], 박재상[pjs0219@ytn.co.kr], 홍성욱, 박유동, 이지희

도움/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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