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 산책] 한지로 담은 동심, 자연 그리고 고향 - 문홍규 화백

[아틀리에 산책] 한지로 담은 동심, 자연 그리고 고향 - 문홍규 화백

2021.10.12. 오후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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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산책] 한지로 담은 동심, 자연 그리고 고향 - 문홍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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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가 포근하게 감싸 안은 곳, 푸른 숲 내음이 가득한 양평의 한 작업실에서 문홍규 화백을 만났다. 화업 40년을 걸어온 작가의 그림에 대한 애정과 집념이 작업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은 두 가지 기법을 개발했는데... 종이죽으로 도자기 같은 질감을 만들어냈고, 하나는 판자에 형태를 파서...”

문 화백은 종이와 붓, 먹으로만 그렸던 전통 한국화로는 입체감이나 다양한 색채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장르를 넘어서야 참신하고 독창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국화의 기존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재료와 색감을 사용했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한지죽을 덧발라 작품의 깊은 질감과 입체감을 표현했고, 석채와 분채의 사용으로 선명한 색채를 담았다. 또한 고향, 동심, 자연을 소재로 따뜻하고 아련한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한국 문화와 한국적 이미지를 품격있게 담아낸다.

문 화백은 일과 그림을 병행하면서도 매일같이 새벽에 눈을 떠 작업을 시작하는 습관으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76세의 나이에도 온 마음을 바쳐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서양 구분된 옛 기법으로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동양화기법 + 서양화기법 + 판화기법 + 조각기법 + a(알파)가 총망라되어야 23세기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생각은 시공을 넘나드는 자유가 있어야 진정한 창작을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 - 작가 노트 중
문홍규 작가는 한려대학 미술학과 출신으로 대한민국 한국화대전 대상, 루브르 최우수 작가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하고 (사)한국미술협회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 중에 있다. 문홍규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 갤러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다음은 문홍규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캔버스 위의 한지를 덧붙인 스타일이 인상적입니다. 한지를 사용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비교적 자유롭게 공부해서인지 장르, 형식의 제약을 넘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 봤습니다. 전통 한국화는 바탕에 색칠만 하는 형식들이 많은데, 서양 그림처럼 바탕의 질감을 깊게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작품을 한국적이면서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하루는 손자들이 놀러 와서 종이죽으로 뭘 만드는 걸 봤습니다. 운인지 복인지, 그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종이죽을 캔버스에 바르면 한국적이면서, 질감도 부드럽고 색 흡수력이 좋을 것 같아서 시도해 봤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재료를 찾아 한지를 구했고, 한지 종이에 아교를 섞은 물감을 몇 겹을 올려 작업을 하니까 이것이 종이 느낌을 넘어서 판자처럼 두꺼워져 입체감, 질감의 깊이를 잘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지에는 흡수력이 좋아 석채, 분채의 색이 선명하게 표현됩니다. 한지의 수명은 천 년 이상이고, 조개가루나 흙에서 나오는 분채, 돌가루를 사용하는 석채도 변색이 되지 않습니다. 작품을 후대에 오래 남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Q. 그림의 소재들이 친근해 보입니다.

그림의 소재는 주로 어린 시절 회상입니다. 그 시절 다들 힘들고 배고픈 시절이었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니 다 아름다운 기억뿐입니다. 소몰이 가서 바위에 드러누워 책 읽고,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보고, 그걸 보며 시도 짓고 했어요. 그 시절 기억이 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많습니다.
<어린시절 황토밭추억> 작품은 시골 황토밭에서 뒹굴면서 자치기, 연날리기, 스케이트 타기 하던 모습, 밤하늘의 별, 새 울고 꽃 피는 뒷 산길, 하늘을 날던 천사, 여름밤의 옛이야기 등의 상상을 담았습니다. 저는 시상이 떠오르면 그림의 착상도 함께 떠오르는데요. 여전히 시를 지으며 영감을 캔버스에 옮기곤 합니다.

Q. 군 장교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으신데요. 언제부터 그림에 대한 흥미를 발견하셨나요?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면 학교 선생님도, 가족들도 제 그림을 참 좋아했습니다. 방학이 되면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으니 그 시간을 너무 기다렸죠.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은 늘 가득했지만, 시골에서 그림을 배울 형편이 안 됐습니다.
실업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했지만, 많이 방황했어요. 무턱대고 당시 상황에서 탈피하겠다는 심정으로 장교로 입문했는데, 그나마 그곳에서 희망을 조금씩 싹 틔웠습니다.

군 생활하면서 퇴근만 하면 그 지역의 유명한 선생님을 찾아다녔습니다. 군대 건빵을 사들고, 그림을 가르쳐달라 부탁했죠. 그때는 그림을 배우면 돈을 내야 한다 그런 것도 몰랐어요. 무조건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니까 선생님도 좋아했어요. 계급이 높아지면서 개인 시간이 조금 생겼을 때 군대 사무실 옆 조그만 작업실을 만들어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당시에 문인화를 한창 그렸는데, 붓하고 먹만 있으면 되니 종이를 쌓아놓고 그렸습니다. 병사들이 그림을 한 장만 달라 하고 가져가기도 했죠.

Q.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셨다고요.

군대 상관의 제안으로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당시 육군대학에서 성적도 좋았고 군인으로서 전망이 좋았지만, 먼저 군대를 나간 상관이 제주도에 와서 같이 일을 해보자, 그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 홀딱 넘어가 모든 걸 포기하고 나갔죠. 그때부터 제주 살이를 22년 했습니다. 그 시절 변시지, 이왈종, 최형량이라는 유명한 작가를 많이 만났습니다. 최형량 작가에게는 문인화를 체계적으로 배웠어요. 문인화, 한국화는 운필이라는 게 있어요. 간단히 말해서 점을 찍고 획을 긋는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운필법을 배워 지금 그림을 그릴 때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런데 10년 정도를 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문인화는 주로 화선지에 먹으로 그리는, 사군자나 소나무 등 그릴 수 있는 것이 한정돼 있는데, 마치 제가 숙련공이 된 것 같았어요.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서 그때부터 한국화로 서서히 전환했습니다.

Q. 늦은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새로운 도전을 하셨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예순을 넘기면 더 이상 도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있었어요. 예순이 되기 전에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결심을 하니 막상 가족, 친구들의 만류가 심해 벗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회사에서 봉급 나오고 안정된 자리를 뿌리치고 간다니 심정은 이해되죠. 그러나 더 이상 저에게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식구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당시 저는 제주도에서 22년 그림을 그렸으니 어느 정도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에 오니 수많은 유명 작가의 그림에 눈이 휘둥그레져 “역시 서울이야”를 수없이 중얼거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상경하자마자 인사동에 작업실을 얻어 미술대학 입학, 국가 미술대전 출품, 전시회 등을 준비하며 한겨울에도 난로 없이 땀을 흘리며 작업했어요. 힘들다는 생각 보다 당시 에너지가 엄청났습니다. 좌충우돌 열심히 했죠.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전시 작품 중 <편지>라는 작품이 가장 애착이 가요. 작품의 작은 종이들을 일일이 하나씩 작업해 붙였어요. 종이 하나하나에 세상 사람들의 사연을 하나씩 새겨 넣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사연들을 하나씩 기록했다고 보면 됩니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 각자의 사연을 상상하며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고, 전체적으로 고요한 분위기가 드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Q. 40년간 화업을 이어오시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금 많이 느끼는데요. 제가 특별히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요. 친구들 중에는 기업의 회장이나 장군 출신도 있지만 지금 제 나이가 되니 전부 나를 부러워해요. 지금 할 일이 없으니 예전에 회장이면 뭐하고 장군이면 뭐 하나요.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고, 그림을 할 수 있는 마음의 보람, 성취감이 저의 건강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Q.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꿈은 야무지죠. 지금도 대학원에 가서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배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데, 며칠 척척 그리고 다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두고두고 보며 보완을 합니다. 저는 후대에 남길 그림이라 생각하며, 후대에 누군가 알아주면 고맙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합니다. 지금도 놀면 안 된다, 화두를 항상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의 화두, 내가 지금 어떤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머릿속에 항상 넣고 있어야 텔레비전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에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길을 걷다가도 영감이 떠오를 수 있으니까요.

지난 프랑스 루브르 특별전에 한국의 종을 그린 작품 등을 출품했는데요. 한국의 종의 우수성과 우아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국적인 소재를 활용해 한국적인 정서를 작품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한국적인 미, 한국의 정서를 표현해 한국화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YTN 커뮤니케이션팀 김양혜 (kimyh121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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